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아줌마가 된 나는 맞벌이는 엄두도 못 냈다. 예민한 아이는 둘째 치고, 친정부모님은 50대 초반 노후대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나이셨고. 시부모님은 저 멀리 계시니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아이 키우는데만 모든 에너지를 쏟았었다. 다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거나 전업주부로 살게 되면서 나에게 늘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하루 종일 애만 봐? 일하고 싶지 않아? 난 미치겠던데.
친구들도 아이돌보는 일이 이토록 지루하고 답답하고 미칠 노릇인지는 몰랐단다. 그러면서 너는 육아가 체질이라고들 한다.
나는 아기들을 정말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어 다니기 전,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는 아기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애 좋아한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나는 그저 어쩌다 잠깐 마주치는 아기들을 안아주고, 눈 마주치며 웃는 것만 좋아할 뿐이었다. 육아의 현실을 접하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힘들었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곧 어린이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둘째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서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도 없던 차에 갑자기 입소하게 됐다. 21개월 때였다. 어린이집에 입소하는 평균 연령이 아닐까 한다. 둘째는 18개월에 입소했는데, 반에서 제일 생일이 늦은 아이였지만 크게 걱정은 없었다. 말도 곧잘 알아듣고, 소근육, 대근육 발달도 빠른 편이라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죄책 감 없이 쉽게 원에 보냈다.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도 '그래 이번에도 어린이집 갈 때까지만 잘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꿀맛 같았던 잠깐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매일 견뎠다. 아이를 낳고, 예전처럼 다시 사랑하는 동네 동지들과 밤마실을 나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코인 노래방에서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고, 동이 틀 때쯤 들어와 두세 시간 눈을 붙이고, 아침을 차리는 극한체험을 금방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너무 오래 머물러있다.
아이는 이제 만 14개월이 되었다. 내년 3월이면 보낼 수 있을까 했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해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생활을 계속하려니, 초점을 잃고 허공만 보게 된다.
늦둥이는 밤 10시쯤에 잠들어서 새벽 6시. 알람을 어디다 장착한 건지.. 6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 앉는다. 쪽쪽이를 물리고 애착 인형을 한참 만지다가 본격적으로 온 집안을 쑤시러 출동한다.
7시가 넘어 어슬렁어슬렁 큰 아이들이 나온다. 그때부터 늦둥이를 뽀로로에게 맡기고, 아침밥을 차리고, 7시 반이 넘어 큰 아이들 식사시간이 시작된다. 그동안 아이들 입을 옷과 물통을 챙겨놓고, 늦둥이를 쫓아다닌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고 옷을 입을 때쯤 늦둥이의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이번엔 핑크퐁이다. 두 아이는 식사시간 동안 미디어에 노출시킨 적이 없었다. 식당에 가서도 식사가 끝난 후에야 영상 시청이 가능했다. 아이의 밥 말고도 챙 길일이 많기에 내가 덜 지치는 쪽을 선택했다. 밥 먹이는 도중에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학교 갈 채비가 잘 되었는지 봐주면 8시 반쯤 두 녀석은 이제 제 갈길 간다. 남은 이유식을 마저 먹이고, 앉아있는 김에 치즈 한 장도 먹이고, 나도 일어나기 싫어서 과자 하나 더 주다 보면 9시가 된다. 이렇게 썼는데도 아직 9시다. 식사를 마친 늦둥이는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만지고 던지며 한 시간을 보낸다. 배고파서 지친 나는 율동동요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남긴 밥과 간단히 배를 채울 것들을 쑤셔놓고, 또 먼산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분유를 타서 셋째를 배부르게 만든다. 부디 2시간을 꽉 채워서 자달라고. 30분쯤 지나면 셋째가 잠드는 동시에 드디어 커피타임이다. 드라마 재방을 틀어놓고 모카골드 믹스 한 봉지와 카페라테 한 봉지를 몽땅 넣어 커피를 탄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피 거품을 보며, 한숨을 한번 쉰다. 이 커피를 마시려고, 밥을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