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요.

금방 사랑에 빠지구요.

by 에토프

들키지 말아야 할 것 까지 들켜버린 것 같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이 빨개졌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잊으려고 소개팅도 해보고, 우르르 몰려나가 미팅도 했지만 즐거움은 그때뿐이고, 신호가 딱 들어맞은 적은 없어서 우울했던 참이었다. 나는 그냥 한번 나가서 시간이나 때우고 오려했다.


그에게 쪽지를 보냈다.


동욱 씨 안녕하세요. 한 학기를 같은 교실에서 수업받았는데 기억이 안 날 만큼 존재감이 없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대요? 저는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된 건지, 안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와 식사를 하고 싶으실까요?...


당신과 식사를 하고 싶다는 건지, 당신과 식사를 해주겠다는 건지, 수락인지 거절인지 모를 이상한 쪽지를 보냈다. 덥석 좋아요 밥 먹어요 라고 보내기엔 자존심도 없는 여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괜찮은 척 하기엔 나 좀 울고 있을게요 라고 공개적으로 떠들어놔서 나는 나 같은 쪽지를 보내고 , 그를 더 알아보려고 그의 이름을 클릭했다.



사진첩에 들어가 쭉 내려본다.

농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저녁노을이 보인다. 레고 조립이 취미인가 보다. 꽤 비싸 보이는 레고들이 많았다. 일기장은 비어있었고, 그의 bgm을 눌러보니, 꽤 많은 곡들이 나와 겹쳤다. 이별하기 전에 내가 듣던 그런 곡들. 방명록을 들여다봤다. 열에 아홉은 남자다. 간간히 선배라 부르는 여자들 몇몇 빼고는, 이 자식, 저 자식이라 부르는 남자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단어들은 한 번도 쓰지 않고, 참 예쁘게 댓글을 달아놨다. 매섭게 질문을 하던 내가 봐온 이동욱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돌아와 누웠다.

농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나 보다. 키도 전 남자 친구에 비하면 월등히 크고, 피부도 하얗고, 옷도 참 깔끔하게 잘 입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니.

오늘은 헤어지고 나서 전 남자 친구 생각을 제일 적게 했나 보다. 어쩌면 내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나와 전 남자 친구가 딱 붙어 수업을 듣고, 웃고 떠드는 것을 다 봤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연락해오는 것이 어딘가 찜찜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축구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어도, 후반전은 다 본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 골키퍼가 있어서 오지 못했던 것뿐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그와 여러 번 눈을 마주쳤다. 내 옆자리에 떡하니 남자 친구가 있어서 그 신호를 내가 놓치고 있었나 보다.


나에 대한 관심이 고마웠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짝사랑을 해보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 눈에는 제일 멋있었던 선배가 있었다. 나는 말 한마디 못 꺼냈고, 나와 어울려 놀던 친구에게 마음이 있던 선배는 그 친구와 3월에 1호 cc가 되었다. 그때의 내 마음이 동욱씨에게서 보였다.


나는 그 사람과 밥을 먹기로 했다.

아직 답장도 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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