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딱 중간쯤에서 보는 미래는
인생에 딱 중간쯤에서 보는 미래는 어떨까?
문득, 인생을 딱 중간쯤 살아온 지금, 미래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어릴 적, 나는 어떤 미래를 꿈꾸며 자랐을까?
세상은 내가 예상한 만큼 변했을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을까?
어떤 부분은 내가 어렴풋이 그렸던 대로 흘러갔고,
어떤 부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뒤집혀 있었다.
그보다도 문제는, 요즘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신사동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잡히질 않았다.
겨우 늦게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올라타니, 친구가 말했다.
“왜 미리 어플로 안 불렀어?”
다들 그렇게 택시를 부른 지 오래됐다고 했다.
나는 잠시, 그 말뜻을 되새겼다.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친구들은,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까?
그들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한때는 공무원이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며 몰려들더니,
불과 몇 년 사이에 인기가 뚝 떨어졌다.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급여와 연금을 엑셀로 계산해 보니, 총액이 별로라서.
공무원이란 직업이 단순히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걸 보니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데이터로 측정되는 시대다.
이커머스의 회원 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 유튜브의 구독자 수.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기회들이 있다.
어린이날, 에버랜드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도
어쩌다 한 자리 남은 롤러코스터에 운 좋게 올라타는 것처럼.
그마저도 요즘은 티맵이 ‘현재 몇 대의 차량이 이동 중’인지까지 알려준다.
예측 불가능했던 것들마저 점점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도, 남들의 시선도 결국엔 한계가 있다.
미래를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해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늘 미래를 그려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좋은 것”보다는 “안전한 것”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안전이 곧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데이터야 어떻든, 남들의 시선이야 어떻든,
내가 좋아하고,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내 직업, 내 인생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먼 미래를 그려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닿을 곳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