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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국민학교 밴드부

반장. 바통을 이어받다

by 함수규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생의 부친상으로 전라도 광주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미국 가기 전까진 일 년 1,2번 정도는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다.


부친상을 당한 친구가 항상 우리 모임을 졸업 후 수십 년 동안 주도해서 끌고 왔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선 온 후로는 웬일인지 연락도 안되고 정기적인 모임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해하던 중이었다.




왜?



연락이 되던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하니 한 친구랑 사이가 불편해져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사이가 틀어진 친구에게 물어보니 5,6년 전 조금 불편한 상황에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자세하게는 물어볼 순 없지만 우리 나이에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는 환경이 되거나.


하던 일이 잘 안 풀릴 경우 모임에 나가는 거를 조금 꺼려지게 느끼는 친구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에 우리 상황이면 그렇게


섭섭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걱정과 달리 반가운 얼굴 그대로여서 보기가 좋았다.


거리가 있어선지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은 우리 4,5명이 다였다, 한자리에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그동안의 어색한 감정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반장. 바통을 이어받다





가만히 샹각해보니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이면 벌써 45년 지기인 것이다.


올해부턴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정기 모임을 다시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번엔 내가 바통을 이어받지!



돌아보니 내가 반장이었기도 하고...


내친김에 연락처들을 다 받아서 카톡방을 만들고 일일이 초대들을 해봤다.


금세 10명이 넘는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모임을 추가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 중고등학교 모임, 대학교 모임, 사진 동아리 모임… 합치면 여섯 개가 넘는다.


모임들이 모여 나를 만든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시간, 관계, 그리고 기억들의 유기적인 연결이었다.


어쩌면 살아 있는 한 권의 역사책 같은 것.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까?





요즘엔, 이렇게 상갓집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 또 만나게 될까.


그때도 오늘처럼, 무심하게 서로를 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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