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첫사랑은 기억 속으로만..

기억 속의 그네

by 함수규 Mar 07. 2025


누구나 첫사랑의 추억은 아름답다. 하지만 어떤 아름다움은 흐릿한 파스텔톤 같고,


어떤 것은 날카로운 유리 파편 같다.


내 첫사랑은 그 둘의 경계 어딘가에 있었다.


기억 속의 그네


얼마 전 와이프와 딸아이랑 여의도 더현대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었다.


올림픽 대로를 타다가 63 빌딩에서 빠져 들어가다 보면 아주 오래된 여의도 시범 아파트라는 곳을


지나게 된다.


아마 내 나이만큼 오래된 것 같아 찾아보니 1971년 준공된 아파트였다.


아파트 외관을 보니 그 레트로함에 놀라고 부동산 시세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아파트 후문쯤을 지날 때 즈음 낮이익은 놀이터가 보였다.


문득 기억이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그 옛날 대학시절 여자 친구와 집에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싫어 서성이던 놀이터였다.


여기에 그녀의 이름을 쓰는 건 위험하니 그녀로 표현하려 한다.


그녀는 나보다 2살 많은 사실 대학 사진 동아리 선배였다.


부잣집딸 같은 외모에 철없던 모습이 오히려 귀여운 그런 선배였었다.


첨에는 공예과라 동아리 모임 때만 종종 보곤 하던 선배였다.



가평 차사고 



사진 동아리에서 매년 가을 아마 10월 정도 되면 단체 사진전을 크게 하곤 했다.


서클생활 중 가장 큰 행사이자 중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92년 그즈음에 마침 나는 면허를 취득했었다. 좋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열망에


겁도 없이 이모부께 차를 빌려 가평으로 출사를 떠났다.


같이 간 멤버는 그녀와 우리 과 절친들 2명 총 4명이 가을 가평으로 촬영을 가게 되었다.


면허딴지는 얼마 안돼도 몰래 무면허 운전 경험이 제법 있는 나는


파워핸들도 아닌 포니 2를 끌고 가평 이리저리 잘 다니면서 촬영을 했었다.


그러나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심한 커브길에서 속력을 줄이지 못해 중앙선을 넘어


정면에서 오는 트럭과 충돌을 하는 큰 ㅇ사고를 당했다.


정말 다행히도 폐차까지 하는 차에 비해 다들 큰 인명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사고 10분 전 조수석으로 자리를 바꾼 그녀는 벨트가 끊어지며 정면 유리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게 됐었다.


사고처리 후 며칠 동안 걱정이 돼서 괜찮다는 그녀를 억지로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다 보니 서로 감정이 생긴 듯하다.


그 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우리는 연인사이가 되었던 거 같다.


그러나... 그녀는 졸업반이고 회사생활을 하고 나는 이제 막 군대를 가야 되는 시기였다.


입대라는 날짜가 정해지자 우리는 매일 만났다. 저녁이 되면 그녀가 살던 여의도 시범아파트


놀이터 한구석에서 헤어지지 못하고 아쉬했었다.


나는 잠실 쪽에 살다 보니 막차가 11시 15분에 끊기기도 했다.


담날 새벽 아침 첫차를 타고 그녀에게 가서 만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입대를 하게 되고 처음 1년 정도는 시간만 되면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곤 했다.


운명을 갈라놓은 팔미도



그러나 전역을 1년 정도 남겨둔 시점 나는 팔미도라는 무인도 레이다 기지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무인도 특성상 외박은 나갈 수가 없고 휴가도 10개월 정도 후에나 가능한 상황이었다.


군사시설이라보니 공중전화도 없어서 기지장 개인방에 있는 한대를 40명의 인원이


시간을 쪼개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풋풋건 모든 통화내용은 기지장이 옆에서 듣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점점 통화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끔 전화를 걸면 회사 생활에 바빠 못 받기도 하고,,


당시는 93년 도라 삐삐. 무선전화기는 보급이 아주 적은 시절이었다.


헤어질 때는 미리 다음 약속을 하고 무작정 그 장소에 가서 기다리게 되는 시절이었다.


강남역 뉴욕제과. 타워레코드, 종로 3가 파고다 학원 등 만남의 장소들이 유명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가끔 꽃을 들고 무한정 기다리다 꽃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힘없이 돌아가는


남자들의 축 처진 뒷모습을 종종 보기도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녀는 졸업반이었고, 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망의 휴가를 맞아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그녀 목소리가 불안함을 엄습해 오긴 했지만..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정말 3일 전부터 무엇을 할지 시간단위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매일 만나던 아파트 상가 2층에 부대찌개 집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조금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모님께 우리 만남을 들키게 되었다며, 아직 전역도 안 한


미래가 불투명한 어린 나를 기다리는 일은 어리석다면서 대학원진학준비를 하라고 하셨다면서..


앞으로는 만나기가 어려울 거 같다는 사실상 이별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하늘이 정말 무너지는 좌절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악수하고 헤어지자면서 일어섰다.


상가 복도 중간에서 헤어짐에 악수를 하고 서로 반대편 통로로 나오는데 혹시나 돌아볼까 돌아봐도


그녀는 그냥 시야에서 멀어졌다.



일주일간의 그녀와의 계획은 휴지조각이 되고 나니.. 갑자기 군인이라는 신분에 대한


억울함이 몰려온다.


때마침 하늘이 한바탕 쏟아질 거 같은 어두운 색으로 변하더니... 정말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리어카에선 당시 최고의 댄스그룹 ref의 이별공식이란 노래가 나오던 중인데..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 속에 살고 있나" 가사가 정말... 나를 위해 쓴 듯..


정말 이 가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같다



10분간 물에 빠진 쥐꼴이 돼서 대학 동창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밤새 술이나 먹자고 연락을 했다.


얼마 후 도착한 친구는 묻지 않아도 알 거 같다는 얼굴로 저녁까지 같이 술자리를 해주었다.


늦은 저녁이 되자 친구는 미안하다고 내일 새벽 알바를 해야 한다면서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나름 잘사는 집 아들인데 웬 알바.. 하면서 나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원래 독산동 큰집에 살던 친구는 경기도 의왕이라는 낯설고 꽤먼 동네에서 내려 공장 비닐하우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연을 들어보니 집안 사업이 망해서 어려운 상황이 되어 알바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담날 새벽 신문 배달 알바를 하는 친구와 함께 술이 덜 깬 채로 새벽 신문을 배달하고


동네 목욕탕 안에서 이런저런 진실된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거 같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깟 여자친구와 헤어진 일로 힘들어하는 내가 철없이 한심해 보였을 거 같아


창피하기도 한다.


첫사랑의 기억의 끝자락


그렇게 인생의 첫 힘든 고비에서 나름, 현명하게? 상처를 덮을 수 있었던 거 같다.


첫사랑은 깨지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기억은 가슴을 할퀴지만, 결국에는 부드럽게 흐려지는 법이다.


그리고, 언젠가 여의도를 지나칠 때 문득 떠오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향수, 그리고 유로저널의 흔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