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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왕

자전거, 페달의 리듬

by 함수규


나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캠핑, 자전거, 피아노, 색소폰, 와인, 커피, 위스키, 요리 등 그저 나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 모든 취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내 삶에서 취미는 단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의 기쁨과 여유가 되어준 동반자였다.



30대부터 통장 잔고와는 상관없이,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내게 취미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자전거로 땀을 흘리며 긴 여정을 마쳤을 때,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길 때마다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같다.



문득 들여다보면 어떤 패턴이 없는 무작위 카테고리의 취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상황에 맞게 변화되었던 게 한눈에 보인다









캠핑과 아버지의 추억





캠핑 같은 경우는 딸까진 아빠들의 의무 같은 주말 이벤트의 일환이었었는데,


하고 보니 나랑도 잘 맞는 것 같고 해서 꽤 오랫동안 했었던 거 같다.


지금도 가끔은 퇴촌에 세워놓은 트레일러에서 자면서 캠핑의 감성을 느끼곤 한다.



돌아보니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근교 유원지 같은 곳에서


삼각형 군용 텐트에서 캠핑하던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이어져 온 거 같다.


딸이 중학생이 된 후 사실 캠핑은 접었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뉴저지에 살 때 회사 동료들을 꼬셔서 같이 다니게 되면서부터이다.


다시 하나씩 장비를 사고 주말마다 캠핑장을 예약하고 캠핑의 꽃인 불멍.


장작불 앞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마시는 싱글 몰트 한 잔은 천국이 있다면 이곳일 것이다.






자전거, 페달의 리듬





자전거는 2012년 정도 일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패션 사진가로서 좀처럼 성장세가 주춤 되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한국은 인맥관계에서 나오는 비즈니스 결과들 이라보니 나는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을 선택하다 보니


일도 점점 줄어가고 후배들이 한창 무섭게 올라오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경제적인 부담과 심적인 피로감이 높을 때였다.



어느 날 자전거로 미국 횡단을 하는 여행자의 블로그를 보게 되면서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게 되었다.


주말을 이용해 제주도 일주를 해보자!


더 이상 타지 않는 딸아이를 태우던 자전거 유모차를 팔아서 제주도 가는 배를 예약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세월호였던 거 같다) 제주항에서 하산 후,


2박 3일 동안 제주도를 일주하는 일정이었다.


첫날 무리한 욕심으로 중문까지 코스의 40프로를 달렸다. 그러나 그 피로감으로 남은 코스를 완주하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는 국토종주를 2번 했다. 또한 라이더들의 버킷리스트인 그란폰도 뉴욕 대회에도 참가했다.


어떻게 보면 자전거는 인생과 비슷하다. 너무 빨라도 페이스가 망가지고 너무 느리면 뒤처지고, 페달질을 멈추면


넘어지게 되는,,


그렇게 시작한 자전거는 지금까지도 좋은 취미이자 앞으로도 평생 할 취미이자 동반자가 될 것이다.


제주도 일주, 국토 종주를 두 번 마친 후, 나는 이제 자전거가 나의 일상적인 동반자가 되었음을 느낀다.


자전거는 인생과 닮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야만 하는 법.


그 리듬이야말로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와인과 인생의 깊이





나의 아버지께 받은 가장 큰 유전자는 술을 좋아하고 빨리 회복하는 간일 것이다.


어릴 적 기억으론 아버지는 저녁식사 때마다 2홉 소주를 드셨었다.


그러다 나이가 드시면서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하셨고, 저녁에 좋아하시는 꼬리곰탕에


막걸리 한 병을 알루미늄 다리 달린 쟁반에 들고 오실 때는 세상 행복하신 얼굴이셨다.


슬프게도 지금은 건강 때문에 못 드신다. 아니 드시면 안 된다.




나도 20,30대는 주종 없이 많이 마시고 술 대적에 이기는 것이 멋진 건 줄 알고


간을 쉴세 없이 혹사시킨 적이 많았다.


30대 초반 담배를 끊으면서 술을 나에게 하나 남은 팔과 같은 느낌이 이었다.


이 친구랑 죽을 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전에 내가 아는 와인은 마주앙이라는 생일날 형식상같이 사는 싸구려 와인이 전부였다


지구상에는 몇천 원짜리부터 1000만 원 이상까지 수많은 와인들이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이고 왜, 어떠한 이유에서 구분이 되고 사람들은 마시면 존재하지 않는


술 한 병에 그 가치를 지불하는가? 등등



전혀 관계성 없어 보이는 유럽의 역사와 종교, 기후, 지리, 마케팅 등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와인이라는 술에 밸류와 상징성 등을 만들게 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와인 공부는 아주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2년 여를 와인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입맛을 못 따라가는 수입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이쯤 졸업을 해야 했었다. 요즘은 데일리 3, 4만 원/ 좋은 안주 5, 6만 원 / 와인을 아는 손님, 여유 있을 때 가끔 10만 원짜리 1,2병 구매 패턴이 이렇다.


그런데 가장 풋풋건 제일 아끼던 와인은 꼭 배가 고파서 생라면 또는 조미 김이랑 마시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 영화 중에 사이드 웨이





중년의 교사, 그리고 이혼남 친구가 결혼을 앞둔 친구 잭과 함께 산타 바바라에서부터 나파밸리까지


주말여행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다룬 영화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일즈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를 우걱우걱 먹으며 일회용 컵에


1961년 산 샤토 슈발블랑 (Chateau Cheval Blanc)을 쓸쓸히 따라 마시는 장면이다.


그 아끼던 고가의 와인을 말이다. 결국 와인의 가치는 내가 만들면 되는 것이다.



포도가 태양과 토양의 환경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사람의 손을 거쳐 재배, 수확되어 그 포도가 와인으로 탄생하고, 어느 정도의 숙성을 거쳐 오픈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어떤 자리에서 그 와인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 같다. 길고도 짧은 인생,


어떠한 굴곡이 있을지도 모르고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색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 마련이다. 와인병은 눕혀 놔야 – sideway – 숙성이 되듯, 사람의 인생도 때로는 다 내려놓고, 쉬고, 옆길로도 가봐야 연륜이 생기기 마련이다.



와인은 오래된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깊은 맛을 낸다.


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삶의 길고 짧은 시간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인생을 가꾸어 가는 과정.


와인이 눕혀져야 숙성되듯, 사람도 때로는 멈추고, 옆길로 가야만 진정한 의미가 깊어진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나이 드는 것이 슬프지 않다는 것을. 와인처럼,


나도 언젠가는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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