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나를 만들어간다.

by 숨의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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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너무 딱딱하다면 어떤 생명이 거기에서 자랄 수 있겠는가?


만일 몸이 너무 뻣뻣하고 마음이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면 어떤 삶이 가능하겠는가?"


<요가 수행 디피카>에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요가 동작을 하다 보면 선생님이 "힘 빼세요" 또는 "힘주세요"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한 동작 안에서도 어깨는 힘을 빼고 배에는 힘을 줘야 하며,

내 몸의 각 부위마다 각기 다른 자극을 주어야 한다.

유연성이 좋다고만 해서 요가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나의 감각을 집중해서 바라보면서 수련을 해나가야 한다.


나는 "나무 자세"처럼 한 다리로 하는 아사나들은 도저히 균형이 잡히지 않는데,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다리의 힘만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

몸 전체의 밸런스를 맞춰야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한 아사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천 번 이상은 해야 한다고 하셨다.

천 번 이상을 하는 자의 정신력이란... 결코 한 가지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유독 나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아사나가 있기도 하지만 쉽게 느껴지는 아사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빠진 상태라면 결코 쉬운 아사나란 없다.

요가를 하면 할수록 가장 기본이 되는 아사나들의 중요성을 느껴가고 있는 요즘.


기본적인 아사나들이 '나무를 잡아주는 뿌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무너진 나무는 곧장 쓰러지는 것처럼,

요가를 함에 있어서도 먼저 나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림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항상 명상으로 호흡을 하며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온전히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기를" 되새긴다.

그 시간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균형이 필요한 동작에서는 보통 한 점을 응시하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한 점을 응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균형이 필요한 동작에서 유독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몸이 흔들리는 만큼, 마음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요가를 하며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것도 내 몸의 상태를 통해 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면 어떤 삶이 가능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나아갔던 것이 삶이었다.

마음이 경직되지 않았기에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깊게 뿌리내린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흔들림을 따라 가지가 자라고 풍성해지기도 한다.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가지가 뻗어 난 나무가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때로는 새로운 길도 가보며,

그 길 속에서 또 다른 길을 발견하고, 다시 또 나아가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많을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 아닐까?

중요한 것은 도착점이 아닌 나아가는 길 속의 과정 일 것이다.


오늘도 난 흔들리지만,

흔들리기 때문에 나만의 균형 잡힌 유연함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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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도 말고


그러나 쉬지도 말고


그저 묵묵히 묵묵히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인생을 걸어가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살아온 나에게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조급하지 않되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가는 마음.

요가를 수련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흐르는 삶을 떠올리게 한다.


요가 수행 중 '아쉬 탕가'는 똑같은 시퀀스를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한다.

처음에는 동작의 순서도 모르고, 어떻게 자세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버벅거리거나 중간에 쉼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똑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동작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몸이 흘러간다.

그렇게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몸은 움직이고 있지만 생각은 멈춰있는 것을 느낀다.

그냥 순서에 따라 저절로 자세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직 해보지 못한 시퀀스가 더 많지만,

내가 지금 반복하고 있는 시퀀스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매일 똑같은 것을 한다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동작도 해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요가 수련 중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몸의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야 해요


내가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몸이 그렇게 변화하는 거예요"



똑같은 동작에서도 내가 의식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내 몸도 그쪽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저 동작의 완성에만 집중했을 뿐,

똑같은 동작에서도 몸의 다른 부분에 의식을 두려고는 시도해 보지 못한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매번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는 '아쉬 탕가'를 할 때도 절대 같은 동작은 없었던 것이다.

같은 동작을 했음에도 어떤 날은 허벅지 쪽에 통증이 느껴지고,

어떤 날에는 등 쪽에 통증이 느껴졌던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날그날에 따라 집중하는 감각의 부위가 달랐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가 수련의 끝은 있을까?



지루함이 느껴질 때가 내 몸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요가를 하면서 삶의 태도를 배워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몸은 변화해갈 것이고,

그 변화의 길 위에 늘 새로운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늘 새롭기에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겠지?


서두를 필요도 없고,

그러나 쉬지도 않아야 하며,

그저 묵묵히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의 속도대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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