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덥지도 않던 어느 봄날. 갓 뿜어낸 신선한 공기와 싱그럽게 초록이는 나무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다. 나는 그 아래에서 콘크리트로 빚은 얼굴로 걷고 있었다. 의무감으로 매일 하는 강아지 산책이 아니었다면 봄이 온 줄도 몰랐을 터. 특별한 계기도 없이 찾아온 무기력증이 수개월째 계속되었다. 정체가 흐릿한 불안감은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예민해졌고 앙칼스럽게 나를 할퀴어댔다.
나홀로 무채색 얼굴로 산책을 하다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살랑이더니 내 머릿칼을 흐트렸고 짜증스럽게 고개를 흔들다 우연히 벤치 틈 사이로 솟아난 들꽃을 보았다. 나는 가만히 그 꽃을 들여다 보았다. 좁디좁은 틈새를 기어코 비집고 핀 이름 모를 녀석이 뭉클했다.
이 들꽃은 어떻게든 꽃을 피워야 했나 보다. 하늘이라 해봤자 제 머리 위로 보이는 한 줄기 빛이 전부인 주제에, 피었다 한들 누구 하나 향기 맡아 줄 이 없는 하찮은 들꽃 주제에.
가슴이 멍했다. 이윽고 코끝이 저리더니 눈물이 났다. 바람이 후 하고 볼을 말려주더니 이내 따뜻한 햇살이 내 등을 감싸줬다. 내게 당연하게 내어준 그것들을 지금에서야 느끼게 되었다.
든든하게 울타리를 쳐주는 책임감 강한 남편, 그 안에서 재잘거리며 뛰노는 두 아이들과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까지. 새삼 많은 걸 누리고 있구나.
불평하면 불편함만 생기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초라함만 남는다지. 허나 가진 것에 감사하면 풍요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이 하찮은 놈 하나가 내게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이 좁은 틈새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두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나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 모를 들꽃이 알려 준대로 중얼거렸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