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이서 Oct 29. 2024

내 새끼만 눈에 보여서


늦은 오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 일은 잘 없는데 받기도 전에 친정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덜컥했다.


"응 아부지. 이 시간에"


"며칠 전에 엄마한테 파김치 먹고 싶다며. 다음날 바로 만들어 놨는데 왜 안 들고 가"


"엥? 그럼 전화라도 하지. 바로 해놓은지 몰랐네"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책을 한 보따리 빌려 나온 터라 통화는 금방 끝이 났다.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늘 밝게 나를 맞이했다.


"어, 경아"


"엄마, 파김치 했다며? 왜 말 안 했어? "


"경이 너 문자 받고 바로 그다음 날 시장 가서 만들었지. 자식이 무섭긴 무서워. 너거 아부지가 파김치 담아달라고 하면 시장 가는 날까지 기다리라 할 텐데 내 새끼 파김치 먹고 싶을까봐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시장 갔지"


사실 엄마에게 파김치가 먹고 싶다고 문자 한 날은 탤런트 김수미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날이었다. 친분이 있는 것도, 팬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내 입장에선 아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늘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부모님과 나이대가 비슷하면 더 깊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하려다 다정한 목소리로 어, 경아 하면 울 것 같아서 문자로 대신했다. 엄마가 생각나고 보고 싶다는 말을 파김치로 대신했다. 문자 말미엔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엄마표 파김치를 먹어야겠으니 오래도록 파김치를 부탁한다 했다.


문자의 의미를 당신도 알았을 터. 

툭하면, 할머니 되어서도 엄마 김치는 먹어야겠으니 딸년 김치 오래 만들어 줄 각오 하라고 하면 그래 엄마 오래 살게 사랑해라고 대답을 했으니.


그나저나 파김치 만들어 놓고 왜 연락도 안 했냐 물었다. 다음날 연락한다길래 오겠지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서 내 새끼, 지 새끼 키운다고 바쁜가 보다 했다. 하셨다. 


이제 나도 마흔인데, 

번번이 열일곱 애로 만들어버린다. 


매번 새끼만 보는 열일곱의 뒷모습을

언제나 뿌듯하게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