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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Nov 05. 2024

친정엄마의 사랑법


정말 오랜만이다. 

혹 두 개를 떼놓고 자유의 몸으로 친정에 간지가 언제였더라. 여기서 혹은 내 딸을 말한다. 


엄마의 식탁은 차린 건 별로 없었지만 하나하나에 젓가락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한 번만 가고 안 가는 곳도 없었다. 남김없이 싹 비우고 나니 숭늉 같은 커피를 내오셨다. 나는 안다. 오랜만에 만난 딸과의 수다가 얼마나 반가울지 그리고 그 양은 얼마나 방대할지. 나는 그래서 최고로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엄마는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다 정치인들 욕을 한 바가지 하고선 '요즘 정년이가 그렇게 재밌네' 하셨다. 엄마의 이야기 길은 느닷없다. 분명 좀 전까지 드라마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아버지랑 다툰 이야기로 빠졌다. 아무래도 '정년이'를 봐야 하는데 아버지가 채널을 돌리신 모양이다. 


정치 사회 문화영역까지 한바탕 훑더니 요즘 아픈 데는 없냐 물으셨다. 결국 오늘의 주제는 내 건강이었다. 예상된 바였다. 본론으로 들어오기까지 장장 1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처음부터 하나의 주제였던 것처럼 매우 매끄럽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엄마는 건강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교수가 말했다며 '유명한'을 강조했다. 그 말인즉슨, 신빙성이 있으니 믿어도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었다. 내게 카톡으로 보내줄 게 쌓여있지만 보지도 않을 것이 당연하기에 보내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중간중간 적절한 호응을 하면서 TV와 엄마를 번갈아 보고 있었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귓등으로만 듣고 있다는 사실을.


술 좀 줄여라 했다가 반응이 시큰둥하니 먹는 횟수라도 줄여라 했다. 이것도 많이 줄인 것이라고 받아치니 속 버리지 않게 안주라도 챙겨 먹어라 했다. 그건 걱정 말라고, 요즘 건강 생각해서 황태포 같은 몸에 좋은 안주로 야식을 즐기고 있다 하니 눈썹이 팔(八) 자가 되며 헛웃음을 뱉었다. 다 커서 때릴 수도 없고.라는 표정으로.


잠시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드디어 끝이 났나 싶어 TV시청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뭔가가 내 머리를 후드둑 쳤다.


"아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가지런한 건치를 사정없이 드러내며 촘촘한 브러시 빗을 보여주었다. 엄마였다. 그러고는 방어할 새도 없이 나의 두피는 빗에게 쪼이고 있었다. 


'타다다다다닥.탁.탁.'


"이게 조타법이라고, 엄마는 3년 됐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걸로 5분 동안 두피 마사지를 하는데 이게 뇌세포 자극에도 좋고 치매예방도 되고 어디에도 좋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끝을 내야만 끝이 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시원하다. 당장 내일부터 실천하겠노라 선언을 하고서야 난데없는 두피 공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화장대에 놓여있는 브러시 빗을 꺼냈다. 

'탁탁탁. 탁탁타타타닥'

머리를 두드려 보았다.


자기 전 브러시 빗을 침대 머리맡에 둘 예정이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타다닥 두드려볼 작정으로. 

흐뭇해하며 만족할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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