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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Nov 08. 2024

나도, 사치 좀 부리자

몇 년 전 거실을 가득 메운 책장을 과감하게 비워버렸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책을 좋아하는데 그는 표지가 예쁜 책들을 모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니까 인테리어용이다. 나는 장르에 상관없이 많은 책을 사서 읽는 편이었다. 그러니 거실은 책들로 벽을 이뤘고 아이들 책까지 합세를 하니 아무리 광나게 청소하고 정돈을 해도 태가 날 일은 없었다.


큰 마음을 먹고 아끼는 책 수십 권과 인테리어용으로 포기하지 못한 책 몇 권만 두고 모두 처분해 버렸다.  그 탓에 나는 서점보다는 도서관을 자주 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운동을 마치고 도서관에 가는 일은 단연코 나를 설레게 한다. 적당히 열이 올라 활기찬 기분과 기어이 운동을 해냈다는 기특함이 더해져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커리어우먼 마냥 당차고 꼿꼿하다.


좋아하는 책 잔뜩 빌려 벽 한 켠에 마련한 진열대에 취향껏 진열해 놓으면 세상 그 보다 꽉 찬 행복이 있을까 싶다. 비록 밀린 집안일이며 해야 할 업무들이 찐득하게 달라붙어있지만 빼곡하게 찬 진열대를 보고 있으면 그게 무슨 대수랴.


저녁 9시가 되면 나의 가사 업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내가 정해놓은 일종의 루틴인셈이다. 개켜야 할 빨래가 작은 산봉우리를 만들어도 금일 업무는 얄짤없이 종료된다. 씻고 아이들과 짧은 담소를 나누고 정확히 10시가 되면 엄마라는 직함에서도 내려온다. 이 시간 이후에 엄마를 찾는 경우 철저하게 무시한다는 협약도 잊지 않았다. 약간의 일방성과 협박성이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10시부터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책도 봤다가 가끔 영화도 보는데 대게 맥주가 항상 옆에 있는 편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잔잔한 하루지만 대체로 꽉 차게 만족하는 편이다. 어쩌다 가사 업무 중간에 카페를 가는 농땡이를 부리기도 하는데 최근들어선 쿠키를 곁들이는 사치까지 부릴 때도 있다.


나는 이걸 행복이라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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