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하는 행사지만 이번엔 달랐다. 붙박이장안에는 옷뿐만 아니라 이불과 잡동사니가 한가득 처박혀있었다. 버릴 것들을 한 데 모아보니 버릴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쌓여있는 미련이었다. 대부분은 살을 빼면 입겠노라 모셔둔 미련인데 나는 글렀으니 딸내미라도 입혀야겠다는 심산으로 버리지 못한 것들이었다.
메이커 있는 옷들은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다. 버려도 몇 번을 버려야 마땅한 옷들은 대체 어떤 미련일까 싶어 보니 내복 대용이나 홈웨어로 재활용할 생각으로 둔 옷들이었다. 얘네들의 존재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건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싹 다 비우고 나니 장이 널널했다. 개운했다. 손 걷은 김에 수납장도 싹 비웠다. 알맹이 없는 빈 약통은 왜 이리 많은지, 뜯지도 않은 채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홍삼스틱과 박스채로 사놓고 사용기한이 지나버린 마스크팩들도 바디로션 대용으로 쓰지 않으리라.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저버렸다. 꼴에 이것도 힘썼다고 하루 반나절을 눕고서야 기운이 났다.
한때 내 안에도 버리지 못한 미련들과 누군가 꽂아 놓은 비수들이 가득한 때가 있었지.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해 그 무엇에도 틈을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파고들어 곪아 악취가 나도 버릴 생각을 못했다. 남이 던진 쓰레기들은 발로 줘 차버리면 그만일 것을, 기어이 끌어 안아 내 속에 집어넣고 아프다 꺼이꺼이 울어댔다.
수년간 꽂혀있던 비수들을 뽑아내고 악취 나는 썩은 감정들을 버려야 했다. 결국 내가 살아야 했다. 거창하게 용서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나를 괴롭히고 병들게 하는 것들을 내다 버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비우는 것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이 많을수록 앓을 시간도 길어질 테지. 고작 오랜 짐들을 버리는 일에도 하루 반나절을 앓았으니 마음의 짐은 오죽하랴.
정돈된 수납장과 널널한 옷장을 보니 개운했다. 한동안 상쾌함을 느끼다 언젠가 또다시 쓰레기가 생기겠지. 그때는 오래 앓지 않도록 그때그때 비워내야지.
옷장이든, 마음이든,
뭐가 됐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