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이서 Oct 22. 2024

사소한 즐거움

가만 보면 하늘은 억울할 법도 하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오묘한 새벽하늘, 주황색과 감색이 발그레한 석양의 하늘도, 곤색과 검은색이 아늑한 밤하늘 모두 하늘색이건만, 왜 새파란 하늘 하나만 두고 제 색이라 명명했을까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이라는 질문에 가본다.라고 답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생각나, 때 끼지 않은 일곱 살 딸에게 하늘을 그려보자며 도화지를 건넸다. 나는 주황색과 핑크색 크레파스를 번갈아 색칠했다.     


“엄마, 이건 뭐야?”     

“하늘이야”     

“이건 하늘색이 아니잖아”     

“딸아,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을 본 적 있지? 주황색도, 핑크색도 모두 하늘색이란다.”     


내 하늘을 곁눈질로 몇 번 보더니 새파랗게 그린 제 하늘 위에 검은색과 노란색 크레파스로 덧칠을 했다. 너의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물으니 낮 하늘은 집에 가는 길이고 밤하늘이 오는 길이라 했다. 노란색은 뭐냐 하니 밤하늘은 깜깜해서 무서울 테니 달님도 같이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 막내딸의 하늘색은 다양해졌을까?     


그러고 보니 행복도 억울할만하다. 행복이라는 게 모습도 크기도 다 제 각각이거늘, 나는 더 큰 것에, 더 값이 나가는 것에만 제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말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더 좋은 차를 타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 불러주겠다 미뤘다.      


며칠 전 저녁, 된장찌개를 끓였다. 내 된장찌개로 말할 것 같으면 12년째 맛이 미궁 속을 헤매는 중으로, 그래 이 맛이라던 다시다로도 구할 수 없던 녀석이었다. 큰 기대 없이 실험 삼아 넣어 본 맛소금이 갈 길 잃은 내 된장찌개를 구원할 줄이야. 결혼 이래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처음이라며 냄비째 밥을 말아 술국을 만들어 먹는 남편을 보니 얼마나 신이 나고 반갑던지, 이까짓 게 이리 뿌듯하고 벅찰 일인가 싶었다.     

 

그날 저녁 거실을 가득 채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밥그릇 삭삭 비워내는 소리도 어쩌면 행복일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