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 텀블러 뚜껑 깨졌어. 새거 사줘 "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아 식탁의자를 당겨와 싱크대 수납장을 열었다. 둘째 유치원 체육대회에서 받은 증정용 텀블러를 꺼냈다. 세련된 네이비 색상에 크기도 딱이었다. oo유치원이라고 각인된 것만 빼면.
" 엄마, 여기 안 보여? oo유치원? 내가 이걸 어떻게 써. 둘째 줘 "
" 둘째야 너 유치원에서 받은 물통, 이거 너 쓸래? 너 시나모롤 물통 그거 많이 벗겨졌던데 "
" 이거 안 예뻐. 엄마 써 "
안 예쁘니까 엄마 쓰란다. 인생 7년 차밖에 안 된 녀석이라 역시 필터가 없다.
마트 개업선물로 7만 원 이상 구매하면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대용량 보온물통을 준다 했다. 보온물통은 필요 없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7만 원을 넘기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휴지와 식용유, 라면과 과자를 담았다. 호기롭게 7만 원이 훌쩍 넘은 영수증을 행사교환처에 내밀었다. 빨간펜으로 주문금액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보온물통을 내주었다.
뜨악.
이 촌스러운 걸 어떻게 써.
엄마 줘야겠다.
에라이.
결혼해서 나 같은 애 낳아보라더니
나 같은 게 나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 때 입었던 패딩을, 그러니까 20년도 더 된 패딩을 아직도 입고 계신다. 등골브레이커들이 입는 고가 메이커의 롱패딩도 아닌데 말이다. 작년에 허리도 잘록하게 들어가고 모자에 털도 푸짐하게 달린 꽤나 값이 나가는 패딩도 선물했지만 소용없었다. 막 입을 수 있는 패딩이 필요하대서 김장할 때 앞치마 대용으로 입으려나 싶었더니 출근할 때도 시장 갈 때도 산에 갈 때도 곧잘 입으셨다.
도대체가 구매 동기를 모르겠는 20년도 더 된 내 베레모와 첫째 조리원에서 선물로 준 기저귀 가방은 왜 아직도 엄마의 장롱에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출가한 딸이 친정에 두고 간 촌스러워진 물건들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아직도 이 보온병은 쓰지도, 주지도 않고 있다.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는 싱크대 수납장 저 구석에 촌스러운 이 보온병을 두고두고 간직하려 한다. 어쩌다 발견할 이 촌스럽고 쓸데없는 보온병이 엄마를 떠올리며 피식 웃게 해 줄 것 같아서. 그리고 훗날 엄마가 그립게 되면 꺼이꺼이 울게도 해줄 것 같아서.
" 야, 이걸 왜 버려 멀쩡한 걸. 엄마 줘 엄마 하게 "
우리 엄마도 엄마 같은 애 낳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