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해 준 하찮은 것들
김창옥쇼라는 프로그램에 어떤 부부가 나왔다. 10개가 넘는 고가의 취미를 가진 남편이 어느덧 완경이 된 아내에게 당신도 당신의 삶을 살아라 했단다. 아내는 육아 문제로 결국 일을 그만뒀고 본인의 커리어도 끝이 났다 했다. 남편은 본인의 삶을 즐기는데 정작 나는 내 삶이 없어진 느낌이라며 남편이 본인과 자녀에게 더 시간과 관심을 써줬으면 한다는 사연이었다.
나도 한때 내 삶이 없어진 느낌을 받았다. 일, 살림과 육아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늘만 살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에게 가는 손길은 줄었으나 그만큼의 남은 시간은 여유로 다가오지 못했다. 공허한 시간은 내 마음속 깊숙한 홀을 만들어 더 깊게 더 크게 구덩이를 팔 뿐이었다.
아마도 사연 속 여성분도 그때의 나와 같지 않을까. 커다랗고 깊숙이 패인 구멍을 누군가가 무언가로 메우주길 바랬다. 여행을 가거나 뜻밖의 선물을 받아도 겉핥기에 그쳤다. 별일 아닌 일에 아이를 잡거나 남편에게 날이 섰다. 내 불안과 흔들림을 그들이 채워주고 잡아주길 바랐다.
결국, 그 방법은 틀렸었다. 움푹 파인 구덩이를 메우는 일의 주체도, 재료도 나였다. 내실을 단단히 채워야 어지간한 비바람에도 끄떡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깨닫기까지 제법 방황하고 황망해했다.
책에서 알려준 아주 하찮은 것부터 실천했고 그것들은 내 구덩이를 알게 모르게 조금씩 채워주고 있었다. 생각이 달라지니 시야가 달라지고 목표의 방향이 달라졌다.
주로 영향을 받은 책들은 내면의 행복을 채우는 방법이나 주체적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대한 책들이었다. 책을 통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하루에 한 번 계단 3층까지 타기, 좋은 에너지가 담긴 짧은 글귀 모음책을 딱 1페이지만 필사하기 같은 것이다. 거창하면 실패했다. 매일 30분 운동하기나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같은 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기 전까지는 금물이다.
'겨우 이런 것' 몇 개로 날마다 자존감을 적립시켰다. 촘촘하고 단단한 자존감들이 쌓이니 남편이 욱해서 뱉는 망언 따위에 콧방귀도 아깝게 됐고 옆집 엄마가 새로 샀다는 명품백에도 남편 볶을 일이 없었다.
엄마들이 다시 '나'로 꿈을 꿀 수 있는 소박한 동네 독서모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이름도 지어놨다.
' 토독토독 '
토닥토닥을 본떠 만든 것인데 이야기(토크)와 독서를 통해 토닥토닥 위로하고 응원한다는 뜻이다.
생각만 해도 히죽히죽 웃음이 샌다.
마흔이,
자꾸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