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하늘은 억울할 법도 하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오묘한 새벽하늘, 주황색과 감색이 발그레한 석양의 하늘도, 곤색과 검은색이 아늑한 밤하늘 모두 하늘색이건만, 왜 새파란 하늘 하나만 두고 제 색이라 명명했을까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이라는 질문에 가본다.라고 답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생각나, 때 끼지 않은 일곱 살 딸에게 하늘을 그려보자며 도화지를 건넸다. 나는 주황색과 핑크색 크레파스를 번갈아 색칠했다.
“엄마, 이건 뭐야?”
“하늘이야”
“이건 하늘색이 아니잖아”
“딸아,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을 본 적 있지? 주황색도, 핑크색도 모두 하늘색이란다.”
내 하늘을 곁눈질로 몇 번 보더니 새파랗게 그린 제 하늘 위에 검은색과 노란색 크레파스로 덧칠을 했다. 너의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물으니 낮 하늘은 집에 가는 길이고 밤하늘이 오는 길이라 했다. 노란색은 뭐냐 하니 밤하늘은 깜깜해서 무서울 테니 달님도 같이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 막내딸의 하늘색은 다양해졌을까?
그러고 보니 행복도 억울할만하다. 행복이라는 게 모습도 크기도 다 제 각각이거늘, 나는 더 큰 것에, 더 값이 나가는 것에만 제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말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더 좋은 차를 타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 불러주겠다 미뤘다.
며칠 전 저녁, 된장찌개를 끓였다. 내 된장찌개로 말할 것 같으면 12년째 맛이 미궁 속을 헤매는 중으로, 그래 이 맛이라던 다시다로도 구할 수 없던 녀석이었다. 큰 기대 없이 실험 삼아 넣어 본 맛소금이 갈 길 잃은 내 된장찌개를 구원할 줄이야. 결혼 이래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처음이라며 냄비째 밥을 말아 술국을 만들어 먹는 남편을 보니 얼마나 신이 나고 반갑던지, 이까짓 게 이리 뿌듯하고 벅찰 일인가 싶었다.
그날 저녁 거실을 가득 채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밥그릇 삭삭 비워내는 소리도 어쩌면 행복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