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골에서 배운 삶 그리고 또 다른 비전
시골에서 배운 삶 그리고 또 다른 비전
마을회관 뒤편의 작은 마을에서 어르신들은 트랙터를 몰며 1년, 2년, 묵묵히 땅을 일구었다.
처음에는 풀이 무성한 묵전(휴경지)이었던 토지가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거듭하며 3년 만에 비옥한 경작지로 탈바꿈했다.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틈틈이 어르신들의 불편을 덜어드리려 노력했다.
봄이 되면 씨앗 파종을 돕고, 농사일을 거들며 어르신들과 정을 쌓았다. 가끔 "이것까지 해주면 안 되겠나?" 하시며 역정을 내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허락되는 한 꾸준히 도왔다.
그러나 4년 차가 되던 해, 집성촌 마을의 분위기가 조금씩 어색해졌다.
어느 날, 땅을 임대해 주셨던 어르신이 마을 청년 회장을 불러 말씀하셨다.
"여보게, 이제 이 땅을 마을 지인에게 임대하기로 했네. 더 이상 여기서 농사짓기 어려울 거야. 미안하네."
풀이 우거졌던 황무지가 우리의 손으로 비옥해지자, 3년간 빌려주셨던 어르신이 이제 그만두라고 하신 것이다.
어떤 이는 척박하고 불편한 땅은 동생에게 맡기고, 사방이 탁 트여 작업하기 좋은 땅은 인근 지인에게 부탁했다. 이 모습을 보니 성경에서 이삭이 샘을 파낼 때마다 이방인들에게 빼앗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귀농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서운함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묵묵히 주어진 일을 이어갔다. 여전히 도움을 요청하시는 어르신이 있으면 시간을 쪼개어 최선을 다해 도왔다.
한 어르신께서 따뜻한 말씀을 건네셨다.
"자네들을 보니 꼭 우리 자식 같아. 하지만 다들 자네들처럼 마음이 곱진 않으니, 마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이 말은 큰 힘이 되었다.
다행히도 몇몇 어르신들은 우리의 열정을 높이 사주셨다. 그분들은 간척지를 임대해 주시며 새로운 작물 재배에 도전할 기회를 주셨다. 우리는 때로는 결과에 승복하며, 때로는 볍씨를 직파해 인건비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만 멈춰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볍씨 직파는 인근 간척지에서 전통적인 이앙 작업을 하는 농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확량은 일반 벼농사에 미치지 못했지만, 노동력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고령화로 인해 농촌에는 획기적인 농업 방식이 절실했다.
우리의 노력은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고, 회사도 농업 관련 네트워크를 넓히며 젊은 농업인들의 문화와 혁신에 관심을 보였다.
이 모든 경험은 우리가 귀농하며 마을 사람들과 쌓아온 소중한 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이 시골 마을에서 우리의 농산물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초대해 활기찬 팜파티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