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깨지다
몸의 기억은 마음보다 강해 이미 발걸음은 도서관 뒤뜰에 들어서고 있었다.
컴컴하게 보이는 불 꺼진 학습실, 굳게 닫힌 문, 휴관을 알리는 안내문.
갈길을 잃은 발걸음은 괜히 유리문 너머 로비를 기웃거렸다.
이미 오래전에 예고된 일이었다.
잊고 있기도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뒤엉켰던 것 같다.
양쪽으로 늘어선 꿀참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동안 매일을 오가던 나의 루틴이었는데 익숙한 길에서 느닷없이 낭떠러지를 만난 듯 당황스러웠다.
사각의 구조물 안에서 철학자 니체를, 시인 류시화를, 수필가 박완서를, 고흐를, 마티스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로 발걸음엔 리듬이 실렸고, 가슴엔 노래가 흘렀었는데 그뿐인가 책 읽는 즐거움과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가득했었는데.
내 허접한 시간에 반짝이는 가치를 입혀 주던 공간이 9월까지 셔터를 내린다.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겠지만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내 마음은 방황한다.
일단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갈 책 읽기 좋은 카페 한 곳을 마음에 담았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사는 거라던 류근시인의 현란한 말에 넘어가 사서 고이 모셔 둔 책들부터 함께 외출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