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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기억

by 한나


봄날의 기억

산에서나 들에서나 그녀는 거북이등껍질 같은 어둠을 매달고 다녔다

빛이 있을 동안은 움직여야 하는 태엽 감긴 인형처럼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둠이 내려야 했다

새벽에 산으로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기다림이 밤처럼 깊어질 때쯤 저만치 산봉우리 하나가 흔들리며 마을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의 눈은 토끼눈이 되고 목이 한 뼘이나 더 늘어나고서야 마른 갈대처럼 하얗게 세어 버린 그녀를 볼 수가 있었다

엄마와 집이 가까워질수록 머리 위의 보따리가 위압적으로 너무 커 보여서 그녀의 얇은 목이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풀어헤친 보따리 안에는 산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고 참나물 취나물 나물취 고사리 고깔나물 산도라지 더덕 지치
쏟아져 나온 먼 산의 편린들은 그녀의 손 안에서 일곱 개의 꿈을 지피는 불쏘시개로 밤마다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우리의 봄은 봄날이 다 지나가도록 산나물 무덤에서 지내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생전에 그녀를 부르던 많은 이름들은 아마도 흩어져 산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기 먼 산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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