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지나 온 버스 정류장
훤칠한 키에 수려한 마스크의
젊은 남자가 겨울 시선을 잡았다
서른 세 해 전이다
그 남자도 예산의 공용 터미널에 산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는
그가 젊음의 한가운데 있음을 봄햇살처럼 뿜어내고 있었고
내게 줄 보라색과 핑크색이 범벅된
포근포근한 앙고라 장갑을 들고
거기 수줍게 서 있었다
내가 시간을 말한 적도 없었고
그가 물어 온 적도 없었는데
거짓말처럼 그는 거기 있었다
어떻게 그가 거기 있었는지
끝내 모르는 체로 남겨 뒀다
다만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가던
그의 등 뒤로 수줍은 겨울햇살이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아직도 그는 후암동 어디쯤에서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에게
먼 이국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