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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Aug 22. 2024

좋아하지만, 말하면 안 되잖아요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좋아하지만, 말하면 안 되잖아요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거의 한 달 만에 보네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나요?


내담자: 네. 잘 지냈어요.


나: 여행은 어땠나요?


내담자: 잘 다녀왔어요! 또 가고 싶어요!


나: 재미있게 잘 다녀왔군요. 일본 어디를 다녀왔어요?


내담자: 도쿄랑 오사카도 다녀왔고, 또 어디 다녀왔는데..


나: 그렇군요. 지역이 궁금한 건 아니니까 여행한 곳을 전부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뭘까요?


내담자: 라멘집이요! 진짜 맛있었어요. 100년 된 집이라고 했는데, 정말 잘 먹었어요.


나: 우와 100년 된 집이라니, 엄청난 곳에 다녀왔네요. 맛있는 라멘이 기억에 남는군요.


내담자: 인형 산 것도 너무 좋았고, 디즈니에 다녀온 것도 좋았어요. 그리고 또 부모님 하고 같이 온천도 하고 야경도 좋았고,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서 좋았어요!


나: 좋은 기억들이 정말 많이 있네요. 아주 좋네요.


내담자: 네. 이런 여행은 또 가고 싶어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여행 많이 다닐 거예요.


나: 좋은 동기라고 생각해요. 이번 여행을 통해 좋은 추억을 쌓고 와서 또 여행을 가고 싶다니,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네요.


내담자: 네. 그래도 역시 공부는 하기 싫어요.


나: 그럴 수 있어요. 나도 공부는 하기 싫은걸요. 학생이나 성인이나 공부하기 싫은 건 똑같은 것 같아요.


내담자: 선생님도 공부를 해요?


나: 그럼요. 나도 공부하고, 시험 보고, 점수도 나오고, 합격이나 불합격 통보도 받고 그래요. 


내담자: 헐.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군요.


나: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공부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내담자: 그렇겠네요. 이제 그림을 그리려고요.


나: 오.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는군요.


내담자: 네. 이제 대화를 약간 줄이고 그림을 그려야겠어요.


나: 그 생각을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만 하고 그림을 그려봐도 괜찮을까요?


내담자: 딱히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선생님이라면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도와줄게요.


내담자:... 이상하게 듣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이상하게 듣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제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해 볼게요.


나: 그럼요. 이렇게 용기 내서 이야기해 주는데,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지는 느낌이에요.


내담자: 방금도 그렇고,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이야기도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을 만나서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감정이 뭔가 점점 선생님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분명 긍정적인 느낌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대화를 줄이고 그림이나 그리는 게, 제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려고 한 거예요. 선생님께서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봐주셨고요.


나: 아 그렇군요. 


내담자: 진짜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하고 대화를 할수록 점점 더 선생님이 좋아지는데, 이건 제 본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그렇다고 이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상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까 이 감정을 최대한 감추거나 제 스스로 이 느낌을 피하려고 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역시나 저에 대해 알고 계시니까, 이런 느낌을 받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실까요 선생님?


나: 오, 전혀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고, 대견하고,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진짜 감사한 마음이에요. 


내담자: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한,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저도 좀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고 두렵기도 해요. 불안하고요. 선생님이 나를 떠날까 봐 겁나요. 그런데 제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아요. 많이.


나: 나도 그래요. 내담자가 솔직하게 느낀 감정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서 좋아요. 그리고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을 이야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담자: 제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저희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귄다거나 할 수 없는 관계니까요. 그래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물론,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맙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여서 영광이에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상황도 많을 것 같네요. 부모님한테도 느낌이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못했나요?


내담자: 네. 부모님한테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안 듣거든요.


나: 그래요. 부모님은 내가 나중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게요. 그건 그렇고, 내담자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걸 표현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데, 지금은 잘 표현해 줬다고 생각해요. 


내담자: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는 없겠죠?


나: 물론 사귄다거나 하는 건 어렵죠.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청 많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을 반박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상담 외에 따로 만나는 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내가 먼저 내담자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내담자와 상담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예요.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담자: 선생님 감사해요. 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그럼요. 당연히 떠나지 않아요. 나를 좋아해 주는 내담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담자: 감사합니다. 만감이 교차하네요.


나: 좋아한다는 감정이 결코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거든요.


내담자: 선생님께서 좋게 이야기해 주셔서 저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아요.


나: 좋네요. 이제 그림을 그려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내담자: 네. 좋아요. 저도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감사해요 선생님. 이제 그림 그려볼게요.


주지화라는 방어기제는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는데, 감정적인 부분에서 갈등이 있거나 불안해하는 부분을 해결하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청소년기의 내담자들에게서 이 방어기제를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강한 충동을 느끼는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 성적인 행위들을 함으로써 성욕을 직접적으로 충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와 동시에 성에 대한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기 원하는 등과 같이 지적인 부분을 통해 성에 대한 충동성을 통제하고자 한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충동에 대해 의식하고, 직접적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본능을 다루고자 할 때 불안이 감소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본능을 의식적으로 억누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지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나타나게 되면, 작고 사소한 부분에도 수시로 의혹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언어적으로 설명을 과하게 많이 하기도 하고,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거나 불가능하거나에 대한 생각 없이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상태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나는 이미 주지화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담자가 더 이상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곳은 안전하고, 나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강조했다.


당연히 내담자는 학생이고, 나는 성인이면서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영아의 아빠이기에, 내담자와 사적으로 만남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보다, 내가 내담자에게 느낀 감정들, 앞으로 해야 하는 것들,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신뢰는 혼내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내담자를 혼내지 않는 것이 믿어질 때, 내담자는 나에게 감추는 것 없이 전부 다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보이는 주지화는 대체로 신뢰라는 부분을 통해 해소를 하는 게 나의 특징이다.


모든 내담자에게 신뢰가 해결책은 아니지만, 신뢰는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보다 깊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으로도 내가 내담자들을 위해 신뢰라는 느낌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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