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냈던 에세이, 당선되지 않아 저작권이 나에게 있으므로 올려본다. 앞선 <우울증 엄마의 상담일지> 내용 중 중복되는 내용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상담을 시작했다. 국가에서 예술인을 위해 실시한 복지제도 중 하나인 예술인 상담지원이다. 나는 예술인이다. 3년째 아무런 작품 하나 쓰지 못하고 있는 어용 예술인. 아이를 낳고 1년이 지났을 때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막막함,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도 내가 한 발짝 물러서면 두려움에 휩싸이는 나를 닮은 민감한 아이. 내 팔이 없으면 한숨도 못 자는 아이라 육아에 퇴근은 없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 눈망울을 보면서도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는 1년만 기다리자, 1년만 기다리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이가 자라고 걸음마를 하게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자.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백지 앞에 한 줄이라도 토해 내자.
아이가 20개월에 들어섰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입소확정을 받아두었던 어린이집은 등록을 취소했다. 창문이 작은 집에서 1년 내내 나는 풍경 대신 가구를 바라보았다. 유난히도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온 집에 매트를 깔아도 관리실에서 층간소음으로 전화가 왔다. 아이와 하루 종일 의미 없는 단어를 주고받고 나면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숨이 막혔다.
아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이러니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동안에 이런 부정한 생각을 하다니.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다. 그때부터는 나는 나 자신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미워할 수는 없으니 나를 미워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미워하는 대신 나는 아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미워했다.
혈혈단신 우리 부부에게 도와줄 시댁이나 친정 따위는 없었다.
아, 그냥 눈을 감고 일어났을 때 내가 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정신과를 방문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하잖아요.”
정신과에서 내가 한 말이었다. 의사는 아이가 나 없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말에 좋은 베개를 사보라고 권했다. 시간이 없다는 내 말에 잠시 의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뭘 하시나요? 운동은 좀 하시나요?”
시간이 나면, 이라고 물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운동은 하지 않아요. 내 말에 의사는 역시나, 하는 눈빛으로 운동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진료실에 뒤편에 빼곡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대한 책장을 바라보며 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이 남자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프로이트를 읽었을 때가 나도 있었어요,라고 말할 순 없었다. 의사는 너무나 친절하게 말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예술인 상담을 신청했다. 나는 그래도 살고 싶었다. 내 아이는 너무 아름다웠다. 특별했다. 미워할 때조차 온전히 미워지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3시간이 넘는 긴 심리검사를 받고 상담을 했다. 수치는 극단적이었다. 일상생활을 살아갈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특별히 친절하지도 특별히 불친절하지도 않은 말투로 상담사는 말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당황했다.
“저는 그냥 보통의 엄마가 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보통을 못해요. 미달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에서 보통이 되는 것이 내가 평생 원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보통의 삶을 염원했다. 예술 계열의 일을 하면서 늘 불안함에 시달렸던 것은 내가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가진 능력은 그것뿐인데, 언제든 세상 밖으로 밀려나가 버릴까 봐, 세상이 나를 폐품으로 분류해버릴까 봐,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그래서 엄마가 되었을 때도 나는 최선을 다해 보통의 엄마들이 하는 것을 모두 해보려고 했다. 글을 쓰고 싶은 내 욕망도, 내 자리를 찾고 싶은 욕심도 모른 척하고 집 안에서 아이에게 딱 맞는 가구가 되어보려고 했다.
“모든 부분에서 보통이 된다는 건, 완벽하다는 뜻이에요.”
나를 바라보던 상담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그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남편과 나의 원가정은 시작부터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 배우지 못했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배울 곳이 없어요.”
나는 작은 상담실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코로나 때문도, 내가 글을 쓰고 싶기 때문도,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나의 유년기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몰라서, 그게 너무 두려워서, 아이가 나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나처럼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두려움으로만 살아갈까 봐 불안하고 무서웠던 것이다.
선생님은 말했다.
“원가정이 불행했던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많아요, 불행한 가족은 삼대를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쉽지 않아요. 사실이 그래요. 그런데, 지금 00 씨가 그 고리를 끊어내려고 애쓰고 있잖아요. 잘하고 있어요. 나쁜 엄마가 아니에요.”
그 말이 필요했다.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라고. 나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내가 나빠서 내가 이렇게 된 게 아니라고. 육아서를 수십 권 읽었지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시판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해지고, 아이와 단둘이 남으면 숨이 막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 집을 채우고 싶은 것은 내가 나쁜 엄마여서가 아니라고.
나는 육아서 읽기를 그만두었다. 내 아이는 어떤 육아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특별한 아이였으니까. 시간이 날 때면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를 들여다보는 일도 멈췄다. 판단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해야 하니까. 약물의 도움도 받았다. 마음이 아픈 건 죄가 아니니까.
내가 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버렸다. 그리고 가끔은 화도 내고, 가끔은 울기도 하는, 이전보다 조금 나다운 엄마가 되기로 했다. 가끔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다. 동요만 듣던 아이는 나의 음악에도 귀를 기울여주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였다. 이런 엄마라도 온몸으로 사랑해주는 아이가 있으니 괜찮은 거였다.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다.
‘보통’은 ‘5’가 아니라 ‘2에서 9까지’라고.
나는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가진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나는 많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괜찮다.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과거의 나도. 지금의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