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별 볼일 없으니까

우울증 엄마의 상담일지 09

by 오늘


여태 정신병원과 심리상담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만 나열했으니 이제 좀 좋았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 꺼내보는 이야기.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0년부터 2021년 올 해까지 5월이면 딱 1년이 되어간다. 방어적이고 날카로운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야기를 들어준 그분이 안 계셨다면 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예술인 심리상담을 지원했을 때 특별히 기대하는 건 없었다. 일단은 공짜니까 생색내기 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 그게 아니라도 난 원래 생각하는 게 비딱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연출한다. 가면을 쓴 것처럼 친절하고 사람 좋은 푸근한 성격처럼 나를 연출하는 것. 아주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라 실체와 허상이 헷갈릴 정도로 정교하게 나를 꾸며낸다. 그만하고 싶어도 잘 안 된다. 가끔 연출된 가면 속의 본모습을 누군가 꿰뚫어 보는 날이면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내 곁에 나를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내가 보이고 싶은 대로만 보여지고 싶고, 실제의 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버릴 것만 같았다.


상담 선생님은 구태여 나를 알려고 하지 않으셨다. 특별히 나를 바꾸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생애 첫 심리상담 때 만났던 그 기분 나쁜 상담사처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제안을 하거나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를 답답한 사람으로 몰아가지도 않았다. 우리는 묻고 답했다. 처음에는 가면을 쓰고 들어갔고 두 번째에는 반쯤 열린 가면 틈으로 슬쩍슬쩍 얼굴을 내비쳤고 몇 달이 지나자 선생님 앞에서 가면을 벗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네가 그런 얘길 한다고 내가 달라지진 않아. 그저 이 자리에서 네 이야기를 들어줄게. 몇 가지 궁금한 건 물어도 볼게.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내가 상담 선생님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런 것이었다. 담담하고 나무 같은 느낌. 그러고 보면 나는 단단한 흙바닥에 뿌리를 박고 있는 듯 중심이 제대로 잡혀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애써 내 의견에 맞추려는 사람보다 자신의 의견을 동요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가면 속에 얼굴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은 역시 원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누군가에게 처음 말하는 사실이었다.


지금, 하나의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 아직은 세상에 내놓긴 어려운 얼굴이다.


다른 하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언어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같은 자리에 상처가 계속 패이고 그 상처가 낫기 전에 계속 다시 상처를 내면 상처는 아무는 것이 아니라 고름이 되어서 진다. 아버지는 상처가 흉으로 아물 시간마저 주지 않았다. 나는 그걸 터트리고야 말았다. 결국은 나의 피와 살을 내주는 것으로 당신의 딸에게 벌과 상을 동시에 주었다.


"선생님, 저 식욕억제제를 먹고 있어요. 그것도 10년째."


선생님은 깜짝 놀라셨다. 그럴 만큼 과체중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보편적으로' 평범하다.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 인지도 물론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히 뚱뚱하지도 특별히 날씬하지도 특별히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평범한 사람. 그런데 그걸 머리로 알면서도 식욕억제제를 끊지 못했다. 십 년 간. 에서 음식을 들고 먹질 못했다. 삼십 몇 년 간.

일생의 반을 특별히 뚱뚱했고 특별히 못났고 특별히 눈에 띄는 볼품없는 사람으로 살아서. 그렇게 배워서. 독립을 하고 아버지와 분리가 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그 약이 버려지지가 않는 거다.

그 이야기를 하던 날, 나는 상담실에서 많이 울었다.


"선생님, 정말 거지 같아요. 우리 아빠 미친 거 아니에요? 딸이 임신을 했는데.. 살이 너무 찌는 거 아니냐고... 임신했을 때조차 만나면 살 얘기부터 했어요. 정말 너무.. 너무 싫어요."


그때 내 얼굴에 걸려있던 모든 가면이 벗겨졌다. 아빠가 너무 싫다고 말하는 순간.


"는 쌍꺼풀 수술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수술도 아니고 시술이라고 한다는 그 흔한 쌍꺼풀 수술. 그걸 못했어요. 겁나서. 근데 전신 마취하는 지방흡입 수술은 두 번이나 했어요. 마나 아픈 지 알아요? 근데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어요. 왜 안 무서운지 이상하다고 생각도 안 했어요. 이거 해야 되니까 나는. 선택권이 없으니까. 무서울 이유도 없었어요."


누구를 위한 인정투쟁이었을까.


그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선생님은 상담시간이 지난 뒤까지 내 울음을 묵묵히 견뎌주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상담 일정을 잡았다.


마웠다.

언어는 별 볼 일 없으니까.

말로 건네는 위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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