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입시 글쓰기를 가르쳤던 제자에게 메일이 왔다. 안부를 묻는 아주 긴 메일이었다. 그 아이는 나와 아주 많이 닮았었다. 성격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그래서 마음이 갔고 그 아이의 성공을 바라게 되었고, 그 아이의 꿈이 나의 것처럼 간절해지자 그때부터는 내가 다시 재입시를 치르는 것같았다. 실패하면 어쩌지. 떨어지면 어쩌지.
원하던 학교에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재수를 결심하는 그 아이를 보니 더욱 두려워졌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가 잘못 끼어든 불청객이면 어쩌지.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최종 합격까지 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끼어들어 저 아이를 그르친 것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나는 그럴듯한 롤모델이었고 멘토였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그때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은 끝이든 나쁜 끝이든 더 좋은 선생님이었을 거라고.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그 아이의 선생님 자리를 포기했다. 수업을 중도에 그만뒀다.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주고 나는 짐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빠졌다. 그래도 너의 좋은 인연으로 남겠다고, 그런 위선적인 말을 내뱉어가며 그 아이를 떠났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서 그 아인 마음껏 날 미워하지도 못하고 혼자 마음 앓이를 했을 것이다.
그 후 언젠가 집에 그 아이가 찾아왔을 때, 딱 잘라 나는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분명 서운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그 아이를 내게 기대게 해 놓고 또 나를 지키려고 그 애를 한 번 내쳤다. 물론 나쁜 의도나 마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마음이 없었더라도 내 행동이 아주 나빴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이고, 편협하고, 의연하지 못한. 그렇게라도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 애를 포기했던 건데, 사실은 상처로 남았다. 누군가의 힘든 시기에 비겁하게 혼자만 쏙 빠져버린 패배의 기억으로.
오랜만에 받은 그 아이의 메일에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많이 자라 버린 그 아이의 편지 속에 담긴 나는 아름다운 부분만 한 잎 한 잎 따다 잘 말린 책갈피처럼 남겨져있었다. 내가 후회로 남긴 그 페이지를 혼자서 잘 딛고 일어서서 부끄럽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내가 힘이 되었노라고, 내가 보낸 편지를 힘들 때마다 읽노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전부가 아닌데, 가끔씩 그것을 잊어 소중한 인연을 놓치곤 한다. 모두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가끔씩 잔잔한 위로로 서로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조금 털어줄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