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무슨 글을 여기에 올려야 되나 좀 고민이 된다.
내가 평소에 쓰는 글은 대학 때는 소설, 현재는 동화,
그리고 최근 다시 장편 시놉시스를 짜고 있는 중인데
그런 걸 쓰기엔 브런치의 만유인력을 거스르는 느낌이고
에세이를 쓰자니 항우울제와 생활의 안정으로 인해
심신이 많이 회복되어 쓸만한 이야기가 없다.
브런치를 찾은 이유는 '익명'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내 소개에는 공란이 많다.
출신 대학도, 출간 저서도, 현재 활동 이력도 모두 공란이다.
완전히 '익명' 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내게 필요했던지.
여기에서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랑스럽고 증오스러운
내 혈육에 대한 이야기도, 경멸하는 것들에 대한 구토도
허용된다. 현실의 나는 너그러운 척 웃으며 고상을 떨고 있어도 여기에서는 본래의 지저분한 나를 드러내도 된다.
'오늘'이라는 필명 속의 나는 '오늘'만을 산다.
사실은 현실에서 얼마나 그러고 싶었던지....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고
대신 이곳에서 내 어두운 부분을 배설한다.
시원하다. 물론 그걸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무척 신기한 일이다. 공들여 플롯을 짜지 않고
기획하고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읽힌단 사실이 놀랍다.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영영 익명으로 남고 싶다.
내 이름을 알리고 싶지도, 출간 작가가 되고 싶지도 않다.
애초에 그럴 만큼 좋은 글들이 아니고.
여기에는 긍정과 진취가 넘쳐흐르니
나 하나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되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어휘의 빈곤함에 대해 써볼까.
왜 글은 쓰면 쓸수록 느는 게 아니라 초라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