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가 필요해

5.18 민주화 운동 / 창작동화

by 오늘


“쟤, 약간 머리가 이렇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한철이 말했다. 관범은 한철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주남이다. 분명히 선생님이 몸이 조금 아픈 아이라고 말했는데 겉으로 봐선 멀쩡해 보인다. 지난주에 전학 올 때만 해도 애들 분위기가 이렇진 않았는데, 자꾸 혼잣말을 하고 애들과는 한 마디도 안 하니까 금세 머리가 이상한 애로 말이 바뀌어 버렸다.


“귀신을 본다는 얘기도 있어.”
“뭐? 소설 쓴다.”
“봐, 지금도 계속 혼자 말하고 있잖아. 우리랑은 한 마디도 안 하면서.”
“가자! 축구한다며.”


관범은 아이들을 떠밀어 교실문을 벗어났다. 등 뒤에서 주남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니는 어째 키가 안 큰다냐. 맨 애기 맨치로.”


진짜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하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주남의 모습에 관범은 자꾸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불꽃놀이!”


누군가 외쳤다.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둥글게 둘러서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학생이 되기 전 마지막 수학여행. 하지만 주남은 불꽃놀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너만 있으면 돼야.”


주남이 말했다. 주남의 눈앞에서 원재는 언제나 그랬듯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관범이 그런 주남을 이상하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건 맨날 나랑 눈이 마주치는 것 같어야. 내 얼굴에 뭐시라도 묻었나.”


주남이 낮은 목소리로 투덜대자 원재가 초승달처럼 눈을 접고 웃었다.


웃을 줄 밖에 모르냐.”


같은 나이인데도 자신보다 한참은 작은 원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남도 웃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시작한다!”


별이 부서지는 것 같은 눈부신 불빛. 주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빛에선 타다다탕 콩 볶는 소리가 났다. 검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불가루들. 확 피어오르는 화약냄새. 주남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탕, 탕, 탕!


연꽃처럼 둥그렇게 생긴 폭죽에서 연달아 불꽃이 터졌다. 아이들은 웃으며 폭죽 주변을 달렸다. 주남은 희뿌연 연기 사이로 웃으며 달리는 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반장은 주남을 향해 활짝 웃었다.


"안 돼, 뛰지 말어……."


주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반장이 돌부리에 걸려 휘청 몸이 꺾였다. 잡아야 했다. 주남은 손을 뻗었다.

러나 턱없이 멀리에 있던 반장의 작은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쿵, 어깨와 흙바닥이 부딪치는 파열음과 함께 주남의 몸에서 뭐가 쑥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쯤 구겨진 반장의 운동화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임주남! 왜 그래!”

"뭐야! 임주남 이상해요 선생님!"


웅성대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쉬지도 않고 울려 퍼지는 콩 볶는 소리. 타닥타닥 빛과 함께 타오르는 연기. 소리가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 외쳤다.



“불 꺼! 불꽃부터 치워!"



그러고 보면 원재는 그 날 이래로 한 뼘도 키가 크질 않았네. 이상타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말도 안 허고 웃기만 혔데. 이상타. 왜 몰랐까.

내가 못 데려 와서 그란 건디.


“불꽃 다 치우라고!”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관범의 목소리 같았다. 선생님 목소리와 뒤섞여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떤 손이 주남을 확 껴안았다. 그 손은 뜨거웠고 많이 떨고 있었다.


‘원재야…….


허공에 손을 휘적휘적 흔들수록 깊은 물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붉은 물감을 뒤집어쓴 것 같은 원재가 보였다. 붉은 물감은 뻥 뚫린 원재의 배에서부터 흘러나와 몸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온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남은 붉은 강을 헤치고 원재에게 가려고 했다. 온 몸에 철근을 매단 듯 꼼짝할 수 없었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원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맑은 웃음소리는 점점 흐려지다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주남은 원재의 이름을 딱 한 번만 더 불러보고 싶었다.

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월의 기억, 「주남」



그날 날씨가 참말로 좋았어야. 개천도 맑아서 물을 원체 겁내는 니도 물가에서 종종거렸제. 산에 가고 싶다고 했던 니 말을 안 들은 건 그날 날씨가 너무 맑아서 그랬어야. 햇살이 물 위로 쏟아져서 반짝거리면 참 이쁜디 니테 그걸 보여주고 싶어서.


밭에나 갈 걸 그랬제. 아니면 들에나 갈 걸 그랬. 개천에는 가지 말걸. 니가 물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기어이 너를 물가로 데고 갔을까.
원재 니는 인사성도 밝아서 십리 밖에 있는 어른들도 다 니를 알아봤제. 그 날 군인 아저씨들헌티 젤 첨으로 손을 흔든 것도 니여. 뭘 그렇게 쓸데없이 착해쌋냐.


콩 볶는 소리가 귀터지게 날아오는디……, 산으로 냅다 달리다 옆으로 콩알 같은 게 휙휙 날아와 박히니까 멀쩡하던 다리도 후들리고 오줌보가 콱 막혀부렀어.


원재 니가 나쁜 버릇이 있었제. 고무신 꺾어 신는 거. 그깟 고무신이 뭐라구 몇 푼이나 헌다구, 작아진 걸 맨 꺽어 신어쓰까. 벗겨진 고무신 줍느라고 그 날 뒤돌아보지만 않었어도 니가 내 만치 키가 자지 않었겄냐.


그깟 고무신, 내가 그 고무신을 똑바로 신겨주기만 했어도, 내가 물가로 니를 데리고 가지만 않았어도, 그 때 어진 니 손을 잡아주기만 혔어도…….



아니,

그 날 내가 니보다 빨리 달리지만 않았어도….









“너 광주에서 왔댔지?”


주남이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관범이었다. 관범은 주남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저 혼자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나도 여기 몇 달 전에 전학 왔어. 광주에서.”


관범은 하얀 양말을 바닥에 쓱쓱 문질렀다.


“나 서울말 잘 하지? 엄마가 서울선 서울말만 하랬어. 광주에서 왔다고 하면 빨갱이라고 차별한다나 뭐라나."


관범은 피식 웃었지만 눈빛이 어두웠다.


"있잖아,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아빠를 찾아다녀, 하루 종일. 소 팔러 나가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대.”
“........”
“그 날 되게 따뜻했는데, 그렇게 따뜻한 날 아빠는 어디로 간 걸까.”


관범은 주남이 듣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내가 살아있는 게 아빠를 살아있게 하는 거래. 웃기지? 왜 내가 사는 게 아빠가 사는 거야. 이해가 안 가. 아빠가 살아야 아빠가 사는 거지.”


관범이 바닥을 양말로 하도 문지른 탓에 양말 바닥이 새카매졌다. 주남은 물끄러미 관범의 닳은 양말을 바라보다가 나뭇결이 반반한 마룻바닥을 보았다. 검은 때가 사라진 마룻바닥에 반짝반짝 윤이 났다.


“관범아 어미 말 잘 들어라잉,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믄 산 사람도 죽은거여. 기어코 살아남아서 니랑 내는 느그 아부지를 살아있게 해야제. 우리는 잘못한 거 한나도 없다잉.”


관범은 자기 엄마를 흉내 내듯 자못 심각한 얼굴을 꾸며내며 말했다. 그리고 푸흐흐 바람빠지듯 웃었다.


“그래서 기억하려고, 아빠가 있었다는 거.”

"기억하믄, 뭐가 달라지나?"


날선 주남의 목소리에 관범이 피식 웃었다.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아빠가 돌아오고 싶은데 우리가 아빠를 다 잊고 살아가면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못 하고 계속 길에 서 있을까봐……."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주남은 머릿속에서 되살아난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관범의 말처럼 잊을까봐 두렵기도 했다.
불꽃놀이가 끝났는지 바깥은 조용했다.


“좀 어때?”


관범이 물었다. 주남은 고개를 끄떡였다. 읏샤!, 하고 관범이 부러 힘주어 일어나는 소리를 내더니 주남의 눈앞에 손을 내밀었다.


“나가자. 여기 너무 춥잖아.”


주남은 관범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모닥불이네.”


아이들은 함께 나오는 주남과 관범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었다.


“야, 잠깐 나와봐 봐.”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아까 넘어진 반장이었다. 앉으려던 주남이 심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반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남이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분주하게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주남은 열심히 선생님께 뭐라고 얘기를 했다. 선생님이 잠깐 가방을 뒤지더니 주남의 손에 동그란 연고통을 건넸다. 반장은 토끼처럼 동그란 눈으로 주남을 바라보았다.


주남은 후다닥 달려와 무릎을 꿇고 반장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난감한 표정이던 반장의 얼굴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한테 뭐 이르러 간 줄 알았잖아.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주남이 힐끔 반장의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운동화 뒤축을 얼마나 꺾어신었는지 자글자글 주름이 져있었다.


“신발 야물게 신어야 된다. 자빠져서 뭔 일이 날 줄 알고.”
“얘 봐, 꼭 우리 엄마처럼 말하네. 말도 잘하면서 왜 깍쟁이처럼 맨날 혼자만 다녔니?”


주남은 대답 없이 연고를 슥슥 문질렀다. 반장이 따가운지 한쪽 눈을 찔끔거렸다.


“칠칠맞은 친구 있어 봐야 챙겨주는 거 말고 뭐 있냐.”


퉁명스러운 주남의 말에도 반장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얘 좀 봐, 날 얼마나 봤다고.”
“알제, 니 같은 친구가 있었응게.”


반장은 피, 하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연고를 바르는 주남의 뒷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불꽃놀이 하자고 내가 선생님께 말했어.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연고를 바르는데 자꾸 눈이 매웠다. 관범이 주남의 손을 끌어당겨 자리에 앉혔다. 관범과 반장, 주남은 나란히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작은 불꽃이 타닥타닥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주남아.”


반장이 불렀다. 주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마워.”
“뭐시.”

이번에는 주남이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며 대답했다.


“연고 바르니까 하나도 안 아파."

"안 아프면 뭐혀. 또 자빠지면 똑같을 걸."

"아냐, 나 운동신경 좋아! 이제 안 넘어져.”
“그라든지.”
“운동화도 똑바로 신을게.”


반장이 활짝 웃었다. 흰 재가 날아와 눈에 들어갔다. 바람이 불자 흰 잿가루들이 하늘 위로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주남은 눈이 매워 쓱쓱 소맷부리로 눈을 닦았다.


“고마워, 주남아.”


반장이 말했다. 흰 재가 마치 눈처럼 작은 불씨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꼭 나비같어.'


주남은 생각했다. 활짝 웃는 반장의 등 뒤로 언뜻 고무신을 야무지게 신은 작은 그림자 하나가 잿속으로 떠올랐다 이내 사라졌다.


사진출처 : 5.18기념재단 https://518.org/nmain.php




제11여단 제63대대 병력이 오후 1시 50 분쯤, 광주시 진월동 원제부락 저수지 옆길을 통과할 무렵 15명가량의 10대 소년들이 동네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이른 물놀이였 지만 소년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때 어린이들에게 자위권 (?) 이 발동됐다.

소년들은 허겁지겁 제방 쪽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으나 방광범(13)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저수지 여수로(濾水路) 쪽에서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 부대는 계속해서 진제 마을 앞으로 진입하면서 마을 뒷동산인 청주 한 씨 선산에서 노닐고 있던 서너 명의 어린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어린이들은 씩씩한 국군 아저씨 들을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다. 어린이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러나 뛰어가던 전재수(10)의 고무신 한 짝이 벗겨졌다. 전재수가 뒤돌아서 신발을 다시 줍는 순간 총탄이 다시 날아왔다. 재수는 아랫 배에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 김영택 「5월 18일 광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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