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 <2>

부제 「이채」

by 오늘




“다녀왔습니다.”


불 꺼진 방에 인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텅 빈 방에서는 내 목소리가 유난히 커다랗게 들린다. 고양이 치치가 끙끙거리며 발치에 와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반찬통이 층마다 켜켜이 쌓여있었다. 반찬통마다 ‘셰프의 저녁’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치치를 안아 들었다.



“많이 배고팠지?”



사료통을 들고 치치의 식기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치치의 물그릇에 붉은 물이끼가 끼어있었다. 길에 버려져 있던 치치를 데리고 온 건 나다. 처음 길에서 봤을 때 치치는 회색털이었는데, 목욕을 하고 나니 눈처럼 하얀 털이 되었다. 치치를 데리고 온 건 충동적이었다. 내 방에서 몰래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치치는 너무 컸고, 엄마 아빠는 내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치치에게도 역시 관심이 없었다.



“네가 알아서 잘 돌볼 거라면 그렇게 해. 어차피 엄마 아빤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대신 고양이 때문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땐 보호소로 보낼 테니까 네가 똑바로 책임져야 해. 알겠니?”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물그릇에 이끼가 낄 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나는 치치에게 좋은 보호자는 아닐 거다.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는 데도 꽤 많은 수고가 든다.



“에에-옹”



치치가 울었다. 아주 작은 울음소리였다. 치치는 눈치를 많이 보는 고양이다. 때때로 그게 내 탓 같을 때도 있다.


엄마 아빠가 함께 해외 연수를 가려고 했던 해에 엄마는 나를 가졌다. 해외연수는 아빠 혼자 가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말귀를 알아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런 얘길 했다. 나를 늦게 낳았다면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태어나길 기대한 적도 없었는데 어쩌라는 걸까.


나는 엄마의 말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뜻이 뭔지 알고 있다. '너를 좀 더 늦게 낳았다면'이 아니라 '를 낳지 않았다면' 일 것이다. 나는 실수로 태어난 아이다. 계획에 없었던 아이.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

그러니까 내가 빛나지 않는 건 당연한 거다.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삼각김밥이 전자레인지 속에서 위잉 돌아갔다. 나는 치치를 끌어안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가 부팅되자마자 유튜브를 켰다. 검색창에 ‘이채’라고 입력하고 엔터를 쳤다.


이채를 생각하면 작지만 따뜻한 집과 식탁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냄새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채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그래서일 거다. 이채는 못생기진 않았지만 아주 특별하게 예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재미있거나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애가 웃는 얼굴은 빛이 나고 그늘을 잊게 만들었다. 누구나 이채를 알고, 또 누구나 이채를 좋아했다. 그 애가 특별히 하는 것도 없는 데 말이다.


검색 목록에 이채와 관련된 영상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연예인 이채영, 이채아, 이채민. 어디에도 내가 아는 이채는 없었다. 혹시나 하고 영상의 썸네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채와 닮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얼굴의 연예인들과 유투버들이 액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유튜브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아까 남자애들이 보고 있던 건 뭐였을까.’







교실문을 들어서자마자 소영이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귀에 속삭였다.



“너 유튜브 봤어?”
“무슨 유튜브?”
“이채, 인기 동영상에 떴잖아. 못 봤어?”



어제 남자애들이 보고 있던 게 진짜 이채였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대꾸했다.



“그게 뭔데?”
“쟤네 아빠가 귤을 판대.”
“귤?”
“그래, 귤.”
“그게 어쨌는데.”
“어쩌긴, 그 귤 상자에 그려진 그림이 이채가 자기를 캐릭터로 만든 거래. 그게 귀엽다고 엄청 인기잖아. 너도 본 적 있을 걸?”
“그래서.”



소영이가 나를 보고 답답한다는 얼굴을 했다. 귤이라니. 그보다는 다른 때보다 이채 주변에 모인 사람이 적은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어쩌긴, 그 캐릭터 실제 모델이라고 쟤네 아빠 귤 파는 채널에 이채가 인터뷰를 했대. 그게 또 실시간 영상 타고 난리가 난 거지.”
“왜?”
“왜는 왜야. 귀엽다고. 캐릭터랑 닮았다고.”



소영이는 살짝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두드리더니 영상을 찾아 내게 내밀었다.



“직접 봐봐. 아무튼 소식이 느려.”



나는 소영이가 건네 준 영상을 보았다. 이채는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 초승달처럼 구부러지는 두 눈이 난감한 듯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귤 인형을 안고 있는 이채는 내가 보던 이채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어 보였다.

자막에서 '귤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따위의 질문이 나오면, 이채는 거기에 대한 답변을 했다. 이채가 말하는 걸 이렇게 길고 자세히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이채의 말투는 느린 편이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말이 막힐 때는 겸연쩍다는 듯 웃었다. 그럴 때마다 눈밑이 파르르 떨리는 건 원래 그랬던 걸까, 긴장을 해서일까.



“자 대충 봤지?”



반도 보기 전에 소영이가 내 손에서 폰을 낚아채갔다.



“영상보단 이걸 봐봐.”



소영이는 댓글창을 펼쳐주었다. 소영이는 조금 신이 나 보였다. 댓글창에는 주로 이채가 예쁘고 귀엽다는 말과 이채가 그린 캐릭터가 사랑스럽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간간히 악의적인 댓글도 달려있었다.
가령 이채가 일부러 어눌한 척을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던가, 별로 귀엽지도 않은데 사람들이 추켜세워준다던가. 관종이라는 둥, 뚱뚱하다는 둥, 그저 그런 악플들.



“좀 그렇지 않니. 쟤 말투가 저런 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소영이는 딱하다는 듯 이채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입가에 고여있는 미소까지 감추진 못했다.



“쟤가 귤 소녀냐?”



지나가던 다른 반 아이가 교실문에 얼굴을 힐끔 내밀고 말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삐죽거리던 아이는 교실문을 닫고 떠나버렸다. 이채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대답 안 해?”



평소에 이채와 친하게 지내던 지민이 이채를 보며 물었다. 어쩐지 조금 가시가 돋아 있는 목소리였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얘기야. 네가 대답 안 하니까 더 오는 것 같다.”
“아, 그런가?”
“아, 그런가는 무슨. 야, 아는 척 좀 해주고 그래.”



지민의 말에 몇몇 아이들이 그래 그래, 하고 입을 모았다.



“네가 진짜 스타도 아니잖아.”



이채는 웃는 것도 안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얼굴로 ‘응, 그래.’ 하고 대답했다. 미묘한 냉대. 아이들은 반짝반짝 빛나던 것이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하다고 느꼈지만 그게 자신과 멀어졌다고 느끼자 태도가 변한 것 같았다. 어제까지 하하호호 웃던 이채가 이제는 수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싸인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럴 정도야?”



은혜와 지민이의 말에 아이들이 풋, 하고 웃었다. 작은 웃음소리들이 모여 무수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경쟁하지 않을 때만 연대할 수 있다. 아이들이 이채를 좋아했던 건 그 애가 빛나지만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채는 확실히 나서길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끄는 아이들이 으레 그런 것처럼 관심을 모으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으니까. 지민이나 은혜 같은 아이들은 이제 관심을 이채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젠 사정이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이채는 위협적인 존재다.



‘너도 욕심이 있겠지? 사랑받고 싶은 욕심.’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채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럴 때는 그냥 무표정하게 그 애들을 바라보면 돼. 따돌려지는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주 영리해진다. 영리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기류를 재빠르게 눈치채면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채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저러다 이채 울겠다.”



소영이가 측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이채를 선망했던 것만큼 약간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이채는 모를 거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열한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두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될 수 있는지. 자신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이 이제부터 뒤집어쓴 가면을 벗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채는 모를 것이다.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건 어떤 특별한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아야 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숨어 있는 편이 안전하다. 저렇게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어봤자 다른 아이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