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앞에 앉아서 미역국을 떠먹고 있는 이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채는 숟가락에 밥을 가득 퍼서 한 입에 넣고 다시 국을 두 숟가락 떠먹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반찬을 집어 먹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오늘 반찬 진짜 맛있다, 그치?”
이채는 속없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이채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음악 숙제는 다 했어? 나는 다른 과목은 모르겠는데 진짜 음악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 되는 것 같아.”
“.......”
“넌 매번 음악 시간에 만점 받잖아. 피아노도 엄청 잘 치고.”
피아노는 엄마 때문에 할 수 없이 배운 거다. 엄마가 가르쳤던 제자가 피아노 아카데미를 개원하는 바람에 거기에 인맥관리 차원으로 나를 등록시킨 거였다. 3년을 배우고 나니 얼추 피아노를 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이전하면서 나도 피아노를 더 배울 일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엄마는 내가 피아노 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나도 너처럼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어.”
속 편한 소리. 오늘 나와 처음 이야기하는 주제에 저 친근한 듯한 웃음이라니. 나는 이채 뒤로 보이는 은혜 무리를 바라보았다.
"어쩌지 이채야, 오늘은 한 자리가 모자라네."
유치하고 고전적인 방법. 그러나 고전이 인정받는 것은 그게 역사를 타고 세습될 만큼 효과가 있어서다. 급식실 식당에는 다른 자리도 많았다. 굳이 은혜가 4명밖에 앉을 수 없는 자리로 간 것은 다분히 노골적인 따돌림이었다. 이채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활짝 웃는 얼굴로 이채는 내 앞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놀란 건 우리 쪽이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던 소영이와 혜주는 이상한 걸 본 듯한 얼굴로 이채를 계속 바라봤다. 하지만 용도폐기된 유명인사에게 줄 관심은 소영이에게도 혜주에게도 없었다.
"우리 먼저 갈게. 천천히 먹고 와."
생존이 앞서면 감정은 무뎌진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에게 동정심은 사치일 뿐이다. 두 사람은 서둘러 밥을 먹고 자리를 떠버렸다. 나는 이 떨떠름한 자리에 이채와 단둘이 남겨졌다. 이채는 밥을 아주 천천히 먹었다. 급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왜 안 먹어?”
이채가 물었다.
“먹고 있어.”
나는 대답했다. 이채는 아, 하면서 웃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입술이 저절로 떨어졌다.
“……너 말이야.”
“응?”
“그렇게 다 드러내지 마.”
결국은 괜한 얘길 하고 말았다. 터진 입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매일 웃고 있으니까 저런 애들이 널 만만하게 보잖아.”
은혜 무리가 밥을 다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들고 반납구로 가는 동안 저희들끼리 끊임없이 소근거렸다. 지민이가 이채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나와 이채를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지민이의 입꼬리에 불친절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이채에게 아무런 인사도 없이 급식소를 벗어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좀 냉담해질 순 없어?”
“어?”
“어차피 졸업만 하면 네 인생이랑 아무 상관없을 애들한테 그렇게 잘 보여야 해? 어울리려고 애쓸 필요가 있어?”
이렇게 주제넘을 수가 없다. 앞으로 십 년쯤은 후회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터져버린 말들을 주워 담을 길도 없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진심 구제불능이다.
“어른처럼 말한다.”
이채는 나를 좀 신기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나도 너처럼 그렇게 어른스럽다면 좋을 텐데.” “뭐?”
“나한텐 지금밖에 없어. 당장 눈 앞의 일만 생각해. 그러는 편이 익숙하거든. 네 주변엔 네 얘길 듣고 있는 애들이 많잖아. 아마 신중하고 어른스러워서 그런가 봐.”
나는 당황했다. 내 주변에 내 얘길 듣는 사람들이 많다니, 모든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거 아냐? 나와 어울리는 아이들은 일종의 동맹국 같은 거다. 혼자로는 약하니까, 언제든 배척당할 수 있으니까, 외톨이로 있지 않기 위한 계획적인 동맹. 그리 끈끈한 관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채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채의 웃는 얼굴은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사했고, 묘하게 나를 안정시켰다.
나는 아이들이 이채를 소외시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빛을 나눠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독차지할 수 없으니까 억지로 양보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지. 그러니까 애초에 유튜브 같은 건 찍지 않는 편이 좋았을 거다. 적어도 긴장한 티 같은 건 내지 않았어야지.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 찬 눈에 약점은 쉽사리 발각되는 법이다.
아이들은 이채가 좋으면서도 싫었고, 선망하면서도 끌어내리고 싶었고, 이채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이채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이채가 별 볼 일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거다.
“너는 좀 신기한 앤 거 같아. 약간 애어른 같기도 하고.”
이채는 나를 좋게 보는 것 같았지만, 냉담해지라는 내 말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교실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슬금슬금 멀리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좀 멍청한 거다. 여태 편하게 살아왔던 탓인지도 모른다. 어디서나 호감을 사는 여자애가 아이들 사이의 권력 같은 걸 생각할 필요는 없었겠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어릴수록 힘의 논리는 더 집요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은혜 무리 사이에서 어설프게 끼어있던 이채와 눈이 마주쳤다. 이채는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하듯 웃었다. 나는 시선을 피해 정면을 바라봤다.
침몰하는 배에 굳이 나까지 탈 필요는 없으니까.
담임은 방관자와 위선자 중에 따지자면 위선자 쪽이다. 그리고 나는 방관자보다 위선자가 더 싫다. 위선자는 자기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여운 고양이는 우리 반 학생들이 묻어주기로 결정을 했어요. 선생님이 직접 할 수도 있겠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느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해보려는 거예요.”
아이들의 얼굴은 도저히 못 먹을 음식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차에 치인 고양이 사체 따위를 치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냔 말이다.
“담탱이 저거 분명히 지가 하기 싫어서 우리 시키는 거지?”
“글쎄.”
“글쎄는 무슨, 가만히 놔뒀으면 경비가 치울 걸 지가 직접 치운다고 했다며.”
소영이같이 둔한 아이에게도 들킬 정도라면 담임이 연기를 못하는 건 확실하다. 소영이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빼 저만치에 있는 고양이 시체를 확인했다.
“저걸 누가 치워, 징그럽게.”
고양이는 학교 근처에서 종종 보이던 녀석이었다. 치치보다 몸집이 조금 작았다. 아이들에게 간식이며 우유 같은 것을 받아먹는데 재미가 들렸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교문을 들락거리더니 결국 변을 당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녀석은 비품을 싣고 오던 트럭에 치어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죽어버렸다. 먼저 교실로 간 소영이 말로는 몇 분쯤은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 경비 아저씨가 바로 사체를 치우려는 걸 담임이 말렸단다. 우리 반 학생들이 직접 치우게 하겠다면서.
“아이들이 정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 직접 보내주도록 하고 싶어요.”
위선자는 역시 주변을 피곤하게 만든다. 정을 준다는 게 사체까지 치워주겠다는 말과 같진 않다. 착한 담임 노릇에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우리는 고양이 사체까지 치우게 생겼다.
“선생님이 상자를 준비했어요. 자, 누가 이 상자에 고양이를 담아 올까요?”
아이들은 모두 짠 듯이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담임의 눈꼬리가 약간 일그러졌다.
“야, 고개 숙여. 담임이랑 눈 마주치면 끝이야.”
소영이가 내 허벅지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살폈다. 모두 꺾인 풀처럼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단 한 명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담임 쪽을 보고 있었다.
‘불길하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단 한 명의 소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할게요.”
나는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도 그게 이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심을 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저건 분명히 실수다. 한 명이 손을 들자 나머지도 모두 고개를 들었는데, 이채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생각하던 시나리오는 우리 중 누구도 담임의 의견에 동참하지 않고 버티다가 담임이 누군가를 지명하면 그 누군가 못 이기며 담임이 시킨 일을 하고, 남은 아이들이 가여운 순교자가 된 희생양을 위로해주는, 바로 그런 그림이었다. 이채가 그 계획을 깨뜨려버린 것이다. 담임의 착한 연극에 동참하기로 나서는 건 나머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 물론 실제로 바보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런 열등감을 자극하는 짓이라는 거다.
“쟤 원래 저렇게 나대는 애였냐?”
교탁 앞까지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러나 이채가 있는 쪽 까지는 충분히 들릴 목소리로 수진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채는 꼿꼿하게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걸까. 나는 이채가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건지 밀려나고 싶어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담임의 얼굴은 무척 밝아졌다.
“그래, 이채가 참 어려운 일을 해주기로 했네요. 혼자서는 힘들지도 모르니까 한 명 더 이채를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자, 보자. 누가 좋을까.”
그때 시선을 피하지 못한 건 순발력이 부족해서다.
“지은이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지?”
치치가 원망스럽다.
“다른 친구들보다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하겠네요. 그럼 지은이가 이채를 도와주기 바라요. 두 사람은 가서 고양이를 잘 데려오고 다른 친구들은 30분 동안 자습하고 있도록 해요.”
담임은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교실문을 열고 나갔다. 담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입술을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안에 피맛이 돌았다. 소영이가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이채가 나대는 바람에 네가 괜히 고생하게 됐다.”
그럴까. 이채가 나서지 않았어도 분명 우리 중 누군가는 담임의 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사실은 그래, 위로받을 만한 일이지.
“야, 이채.”
은혜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이채를 불렀다.
“네가 뭐 간디야?”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꼭 그렇게 담임 오버하는데 맞장구를 쳐 줘야 되냐? 너 때문에 죄 없는 지은이까지 고양이 사체 처리반에 끼게 생겼잖아.”
누가 들으면 은혜가 나를 퍽이나 생각해주는 줄 알겠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언제부터 그렇게 배려심이 넘쳤는데?”
비아냥대는 은혜를 이채는 똑바로 바라보았다. 은혜는 이채가 자신을 마주 보자 목소리를 더 높였다.
“네가 상황 피곤하게 만드는 거 사실이잖아. 네가 뭐 저 고양이 주인 이기라도 해? 왜 나서냐고, 네가 뭔데.”
“야, 이은혜. 너 좀 그만해.”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민이다. 뭐지, 새로운 국면인가? 은혜는 자신의 무리인 지민이 끼어들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뭘.”
“그렇게까지 얘기할 거 없잖아. 이채가 손 안 들었으면 내가 손 들려고 했어.”
지민이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은혜의 얼굴이 새 빨게 졌다.
“야, 뭐 나만 나쁜 년인 것처럼 얘기하냐, 사람 무안하게.”
은혜는 투덜거렸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역시 서열이라는 건 절대적인 거다. 지민이는 뭔가 기대하는 눈으로 잠시 이채를 바라보았지만 이채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채가 손을 들지 않았다면 지민이가 고양이 시체를 치우겠다고 나섰을까. 글쎄. 은혜는 전혀 관심 없었지만 지민이는 그 고양이를 아주 아꼈던 축이긴 했다. 챠오츄르며 크리스피키스며 값나가는 고양이 간식을 사 와서 아이들 앞에서 주는 장면도 자주 연출되었었다.
물론 나는 지민이가 고양이를 위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고양이가 자신을 따르길 바랐던 거겠지. 간식은 가장 유혹하기 쉬운 방법이니까. 지민이는 소유욕이 강하고, 방관자보단 담임처럼 위선적인 쪽에 가깝다. 따지자면 은혜보다는 똑똑한 편이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쉽게 투영한다. 억지를 부리는 은혜의 모습은 분명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지막한 빈정거림, 은근한 따돌림.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
거기에 동참했다는 걸 누군가 공표하는 순간 부끄러움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지민이는 그걸 알았을까? 그래서 이채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걸까. 은혜를 희생양으로 삼아 흐름을 바꾸는 주인공이 되는 쪽을 선택한 걸까. 가장 빨리 반성하고 가장 빨리 용서받을 수 있도록. 아니반성할 필요조차 없는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아이들이 앞으로 이채를 어떻게 대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떻든 간에 그게 이채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운이 좋았거나 운이 나빴거나.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