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고 작은 눈이 나를 닮았다는 거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가짜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입술은 잘못 바른 것처럼 아무렇게나 삐져나와있었다. 나는 그 인형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는데, 어차피 말해봤자 엄마는 들어주지 않을 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형은 한쪽면이 투명한 창으로 된 빨간 박스에 들어있었다. 박스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팔이랑 목이랑 다리에 흰 철사가 칭칭 감겨있었다.
“비싼 거니까 아무렇게나 두지 마.”
“응.”
“공부 잘하라고 사주는 거야.”
“응”
“엄마는 할머니 댁에 갔다 올 테니까 집에 가서 밥 먹고 학습지 풀고 있어.”
나는 상자를 끌어안고 고개를 끄떡였다. 엄마는 바짝 마른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은 엄마가 할머니한테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꼭 입 속에 뾰족뽀족한 가시가 박힌 것처럼 엄마한테 따가운 말만 하기 때문이다. 아빠랑 이혼한 뒤로 엄마는 할머니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엄마가 부끄러운 딸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 나 오천 원만.”
엄마가 짜증 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기로 해서.”
나는 얼른 대꾸했다
“넌 어쩌면 네 아빠하고 하나 다른 게 없니.”
엄마가 아빠 얘기를 하면 입을 다물어야 된다. 엄청 화가 났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은 딸이라고 그랬다. 아빠는 눈도 작고 머리도 듬성듬성 비어있다. 그니까 되게 못생겼다. 말도 똑바로 못 하고 더듬더듬 거리고, 맨날맨날 술을 마시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랑 엄마를 결혼시킨 건 할머니라고 하는데, 왜 아빠랑 이혼한 걸로 엄마가 할머니한테 자꾸 미안해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꾸물거리지 말고 따라와.”
엄마는 내 팔을 잡아당겨 계산대로 데려갔다. 목이랑 팔이랑 다리에 철사가 칭칭 감긴 채 계산대 위에 올라간 인형이 좀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인형을 내 딸로 삼기로 했다. 할머니한테도 딸이 있고, 엄마한테도 딸이 있으니까, 나한테도 딸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거다.
“자 엄마가 한 거야 먹어.”
진흙이랑 물이랑 으깬 나뭇잎을 섞어서 만든 경단을 인형 입 속에 집어넣었다. 딱딱한 입술에 부딪힌 경단은 다 부스러져 버렸다. 역시 맛이 없나 보다. 열심히 만든 건데. 인형이 밉살스러워 보였다. 내 딸은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다. 나는 부스스한 인형 머리를 세게 잡아당겼다.
“아빠 닮아 밥투정이니!”
인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역시 얘도 나처럼 아빠를 닮은 딸인가 보다. 내가 아빠를 닮았으니, 그럼 결국엔 나를 닮은 딸인 건가? 뭐, 아무래도 좋을 거다. 어쨌거나, 결국 딸이라는 건 아빠나 엄마를 닮기 마련이니까.
엄마는 지금쯤 할머니한테 한바탕 욕을 먹고 있을 거다. 할머니한테는 아들이 엄청 많은데 삼촌들은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는다. 가끔 명절 때 찾아오더라도 벌레를 씹은 얼굴로 잠깐 앉아 있다가 바쁜 일이 있다며 가버린다. 삼촌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할머니는 시끄럽고, 고약하고, 고집이 엄청 세다.
나도 할머니가 싫다.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건 엄마다. 엄마는 명절 내내 할머니를 데리고 산책을 가고, 팥죽을 쒀드리고, 수수부꾸미를 굽는다. 할머니는 엄마를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쩔 때 보면 엄마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자기가 할머니를 닮아갈까 봐 걱정이 된다고 그런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닮는 게 싫은 가보다. 나는 엄마를 닮고 싶은데, 아빠 말고.
며칠 전엔 어항에 키우던 거북이가 새끼 금붕어를 잡아먹었다. 거북이 사료는 엄마방에 있었는데, 엄마가 삼일 째 사료를 안 줘서 배가 고팠던 거다. 새끼 금붕어는 지느러미만 몇 번 파닥거리다가 거북이한테 뜯어 먹혔다. 나는 그걸 다 봤다.금붕어를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럼 거북이는 굶어야 되니까…….
엄마방에는 문이 잠겨있어서 사료를 꺼낼 수도 없었다. 나는 금붕어도 불쌍하고 거북이도 너무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엄마 없을 때 물고기를 죽인 거라고 그랬다.
“네가 몰래 변기에 버렸지?”
나는 아니라고 백 번도 넘게 말했다. 엄마가 그랬다. 잔인하고 못된 게 꼭 아빠를 닮았다고. 나는 진짜 억울했는데, 아무리 말해도 엄마가 안 믿어주고, 아니라고 할수록 엄마가 더 화를 내고 때려서 그냥 내가 그랬다고 했다.
내가 물고기를 죽였다고 하니까 엄마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엄마는 내가 나쁜 아이이길 바라나 보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 학습지를 다 풀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빠랑 닮지 않았으니까. 아빠처럼 게으르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되니까. 나는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다. 오분만 더 인형이랑 놀고 그리고 진짜 학습지를 풀 거다.
“엄마가 머리 땋아줄게.”
인형은 대답이 없다. 멍한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아직 팔이랑 다리에 묶인 철사를 안 풀어줘서 그런 걸까? 그래도, 말 잘 듣는 아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더 착한 아이가 되면 풀어줄 거다. 나는 인형 머리를 한 움큼 움켜쥐었다.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머릿결이 엉망이니.”
엄마가 하던 것처럼 혀도 쯧쯧 차면서 말했다. 인형 표정이 아까보다 더 우울해졌다. 그걸 보니 화가 나기도 하면서 약간 신이 나기도 했다.
“네 아빠가 그렇게 머릿결이 돼지털 같았어. 너도 네 아빨 닮은 거겠지.”
나는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 일부러 머리를 세게 잡아당기기도 했다. 인형 목이 휙 꺾이면서 포즈가 이상해졌다. 킥킥 나는 웃었다.
결심했다.
오늘은 피시방에 안 갈 거다. 요새 피시방에 가면 진희랑 드림워치라는 게임을 하는데 나는 거기서 제일 악역인 킬러라는 캐릭터로만 게임을 한다. 가까이 오는 적들을 총으로 다 쏴 죽이는 거다. 진희는 맨날 예쁜 캐릭터만 골라서 해서 같이 게임을 하면 재미가 없다. 그래도 나랑 같이 놀아주는 건 진희뿐이다. 진희네 엄마 아빠는 둘 다 장애인인데, 엄마는 내가 진희랑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애한텐 배울 게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엄마가 이혼했다고 애들이 날 왕따 시키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한다. 왕따 같은 건 당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도 나랑 놀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지. 그래도 진희가 있어서 별로 외롭진 않다. 이제 난 딸도 생겼으니 진희보다 훨씬 낫다. 내가 땋은 인형 머리는 삐죽삐죽 못생겼다. 그래도 내 딸이니까 괜찮다. 나는 인형을 끌어안고 침대로 올라갔다. 인형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학습지를 풀 거다. 꼭.
“너, 지금까지 잠만 잔 거니?”
눈을 뜨니까 엄마가 내 코앞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주 조금 잔 것 같은데 벌써 밖이 깜깜하다.
“엄마 나 배가 너무 아파.”
나는 얼른 둘러댔다. 그런데 아프다고 말하고 나니까 진짜 배가 막 찢어질 듯이 아픈 것 같았다. 엄마는 화가 났다. 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침대에 던졌다. 가방에서 동태전이랑 유과랑 파김치가 봉지봉지 쏟아졌다. 오늘은 할머니는 동태전이랑 유과랑 파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나 보다.
“입만 열면 거짓말!”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입술도 막 떨리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웅크려 끌어안았다. 엄마는 왜 화만 내는 걸까. 자면서 발로 찼는지 인형이 발치에 있었다. 이불속에서 손을 뻗어 인형을 끌어안았다. 내 딸이 있어서 그래도 조금 덜 무서웠다.
“엄마 좀 그만 괴롭힐 수 없어? 네 아빠도 할머니도 너도 왜 엄말 못 괴롭혀서 안달이니!”
나는 손바닥으로 인형의 귀를 막았다. 파김치 봉지가 터져서 빨갛게 이불에 물들었다. 엄마 눈도 파김치처럼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배가 따끔따끔 아팠다. 진짜 배가 아픈데, 엄마는 왜 내가 말하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할까? 나는 진짜도 거짓말처럼 보이게 말하는 재주가 있나 보다.
“잘못했어요 엄마.”
“사과하지 마.”
엄마는 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지긋지긋해!”
내가 또 아빠 같아 보였나? 아빠도 술 먹고 엄마를 때린 다음날 미안하다고 그랬다. 난 진짜 아빠를 닮은 딸인가 보다. 난 엄마가 좋은데, 왜 아빠를 닮은 걸까? 내가 엄마를 닮았었으면 아빠랑 엄마는 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게 된 걸까? 어쩌면 내가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 않게, 엄마가 아빠를 의심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난 이렇게 태어난 걸까?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건 진짜 싫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까 엄마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툭, 하고 인형의 팔이 빠졌다. 나도 모르게 이불속에서 너무 꽉 쥐고 있었나 보다. 나는 살금살금 일어나 이불에 쏟아진 파김치랑 동태전이랑 유과를 조심조심 다시 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가져다 넣었다.
드르륵드르륵
엄마 가방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나는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 핸드폰 액정에 ‘엄마’라고 떠 있었다. 할머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들어갔냐?”
“할머니, 저 안나예요, 엄마 지금 화장실 갔어요.”
“들어갔냐고 묻잖아!”
할머니는 가는 귀가 먹어서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크게 말했다.
“엄마! 지금! 화장실! 갔어요!”
“뭐래는겨!"
아무리 크게 말해도 할머니에겐 들리지 않나보다.
"너 아무튼 파주에 있는 내 땅 탐내면 벌 받는다 이년아, 너 그거 때문에 나한테 잘해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지? 이 못된 년! 니가 해준 거 하나도 맛없어 이년아!”
할머니는 성이 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 땅이 내가 어뜨케 만든 땅인데, 내가 일제때 순사들한테 어떤 수모를 겪고 지켰는데! 한 뼘도 못 줘! 애비 닮아 욕심만 많은 년!”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는 늘 그렇듯 툭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핸드폰 통화목록으로 가서 ‘엄마’라고 적혀있는 번호를 삭제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도 엄마의 아빠를 닮았나 보다. 그래서 할머니도 엄마를 싫어하나 보다. 딸들은 아빠를 닮는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엄마 가방을 들고 엄마 방 앞으로 갔다. 방 안에서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엄마 방 앞에 놓고 다시 까치발을 들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팔이 빠진 인형이 침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나는 침대 옆에 서랍을 열어 후시딘을 꺼냈다. 전에 내가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다가 주차장에 있던 차랑 부딪쳐서 다쳤을 때 엄마가 발라줬던 거다. 무릎이 다 까져서 무지무지 아팠는데, 엄마가 후시딘을 발라주니까 하나도 안 아팠다. 그걸 손톱만큼 짜서 팔이 빠진 인형 어깨에 조심조심 발랐다. 후시딘이 매끈매끈하게 빛났다. 나는 거기에 인형 팔을 밀어 넣었다. 뚝 하는 소리를 내며 팔이 구멍에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어갔는지 왼쪽 팔이 오른쪽 팔보다 번쩍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