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의사를 만난 것은 한참 뒤였다. 첫 번째 의사를 만난 후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남편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내게 병원 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그러니까 첫 번째 병원 방문에 타인의 의지가 30%쯤 섞여 있었다면 두 번째 방문은 전적으로 내 의지였다. 이유는,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입이 짧아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이유식 때부터 숟가락을 대면 고개를 돌렸다. 모유를 많이 먹이지 못해 이유식은 직접 해먹이고 싶었다. 요리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만드는 족족 뱉어내는 아이를 보면서 음식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차피 안 먹을 건데, 라는 생각이 들자 요리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먹는 일도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심하며 샀던 이유식 조리도구들을 중고로 내다 팔았다. 그리고 배달 이유식을 시켰다.
아이는 어떤 날은 이유식이 먹기 싫다고 활자 그대로 발악을 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먹일 수는 없어서 한 병에 오천 원이 넘는 이유식은 그대로 버려지는 날이 더 많았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는데,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워 밥을 차려준 뒤 나는 방으로 피신했다. 남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분노가 치솟았다. 늦은 밤에 일을 끝마친 남편이 밤참을 먹고 흘려놓은 양념을 보면 나는 밥을 먹지도 못하는데 혼자 여유롭게 야식까지 챙겨 먹고 뒷정리도 하지 않은 그 무신경함에 치가 떨렸다. 쥐 잡듯이 남편을 잡고 나면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두 눈이 두려웠다. 저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까. 남편의 침묵이 길어지면 더 악을 썼다. 나 좀 봐달라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나 자신도 바라보기 싫은 나를 당신이라고 바라봐줄 수 있을까.
아이를 보면 한숨이 나왔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보통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 놀잇감을 직접 만들고 보육계획을 짜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알차게 시간을 보낼 텐데. 나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순간순간 아이의 행동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고요한 밤이었으면, 해가 뜨지 않았으면. 그래서 병원을 찾아갔다. 이대로는 분노와 증오가 내 몸과 머리를 지배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는 키우기 싫었다. 그렇게 자란 결과가 나였으니까.
두 번째 병원은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 지난번처럼 동네 맘 카페를 다 뒤지고 포털에 하나하나 검색하는 수고는 들이지 않았다.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동시에 예술인 심리치료 신청도 했다. 병원이 상담을 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분위기의 병원이었다. 일단 규모가 작았고 의사는 꼭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뒤에 빼곡하던 책장과 책. 연구자라거나 학술가의 이미지를 가진 의사였다. 별 기대 없이 간단한 테스트에 응했다. 불안과 우울 수치가 평범한 사람에 비해 4배가량 높다고 나왔다. 아마 그간에 증상이 더 심해졌거나. 지난번에 뇌파가 나를 속였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의사는 몇 가지 상담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는 운동을 할 것, 늦게 자지 말 것, 그리고 첫 번째 글에서 썼듯 엄마 팔이 없으면 못 자는 아이를 위해 좋은 베개를 살 것.
그는 프로이트 주의자처럼 보였다. 일단 서재에 꽂힌 책 중에 프로이트가 단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프로이트 특유의 남근 중심주의적인 태도가 아주 상냥한 태도 아래 스며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주부가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할 때 산책이나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쉬고 싶을 땐 쉬어야 한다고 했으며, 좋은 배게를 사서 잠자리의 질을 높이기를 권했다. 모두 다 유토피아와 같은 이야기라 다시 아이를 뱃속에 집어넣으라는 이야기인가, 잠시 고민했다. 선의가 바늘을 드는 순간은 악의가 칼을 드는 순간보다 무섭다. 그러나 그 의사가 어찌 되었건 나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위로를 해준다고 느꼈기 때문에 첫 번째 병원에서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으로 돌아왔다.
이 주일치 약봉지에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신경안정제, 불면증에 간접적인 효과를 주는 약, 이렇게 세 알이 들어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세로토닌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몸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막아주는 약물을 복용해 세로토닌이 몸에 잔류하도록 도와주는, 대략적으로 그런 약이라고 알고 있다. 약을 먹은 후에 변화는 미미했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 같았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다음에 신경안정제의 용량을 좀 더 높였고 그 이후로는 똑같은 약 처방을 세 달 가량 받았다. 효과가 조금은 있었다. 일단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 약을 삼키면 순간 안도가 되었다. 의존의 시작일지도 몰랐지만 그것마저 절실했다.
예술인 심리상담치료를 시작했고 그 또한 가까운 곳에 있는 곳으로 방문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상당히 우울해 보였다. 나는 내 증상에 대해 말했다. 역시 첫 번째 병원에 갔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힘드셨겠어요."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상하게 병원이나 상담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지가 않아.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된 기분이야. 나는 말을 하고 그 사람들은 듣기만 해. 마치 내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을 모조리 분석해주겠다는 듯이. 그건 경청이 아니야. 그건 그냥... 뭐랄까. 실험실의 생쥐 같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