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마다 돈이 없었다.

우울한 엄마의 상담일지 05

by 오늘

제목만 상담일지, 사실은 자학 일기.


이상한 일이다. 나는 돈 따위에 감정이 휘둘리지 않는다고 몇십 년 간 믿어왔건만, 근 몇 년 전부터는 내가 우울할 때마다 돈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이 없거나, 돈이 없을 예정이거나, 돈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그래, 나는 그때 유난히 더 우울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내 가난에 이유를 붙여야 하니 구조를 탓하다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순수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중 그래도 내로라하는 대학을 80:1 경쟁률로 들어가 상위권으로 졸업했다. 문학상 및 수상 이력도 줄 세워 10개는 된다. 입시생 과외만 해도 벌이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자랑거리다.

그래서 나는 원인을 찾는다. 내가 부지런하지 않아서, 내가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내가 사회 공포증이 있어서. 아무튼 내가 후져서다. 그게 아니라면 더 화가 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차상위 계층이다. 나의 소득은 소득으로 산정되기 힘들 정도로 불규칙적이고 나는 나를 정의하는 작가라는 이름을 붙든 채로 버티듯 살아간다. 한 장의 예술인 증명 서류만이 나를 예술인이라고 말해줄 뿐이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예종을 졸업한 화가 분이 가난으로 아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은 우리들을 향해 시를 쓰셨다. 유령 학교에서 유령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제도권 유령이 되기 위해 졸업한다고. 나는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졸업 후에 내가 가진 실력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될 줄만 알았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원고료와 수상금으로 버티듯 살다 보니 그것도 프로필에 적을 커리어가 되고, 그 정도면 꽤 괜찮은 금액으로 누군가에게 강의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지만 한 사람을 가르쳐보고 느꼈다. 아, 나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내가 가르치는 방식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두려움에 압도되니 공황이 찾아왔다. 내가 나를 감당 못 하는데 누군가에게 어떻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나. 학생을 보면 떨렸고, 수업 때마다 히스테리적으로 변해갔다. 별 수 없이 그만두었다. 돈을 버는 일은 다 그래,라고 누군기 말할지 모르겠다.

그래, 안다. 돈을 버는 일은 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감당해야 한다. 아는데, 세계를 그렇게 이해한다면... 굶어 죽는 예술인 같은 건 없어야 한다. 공과금을 계산하면 숨이 막히고, 여기저기에서 받은 대출의 이자를 내다보면 통장은 언제나 마이너스다.

우울은 가시처럼 나를 찌른다. 칼의 방향은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증명될수록, 그것을 활용할 능력이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도 강해진다.

나는 자조하듯 공모전 사냥꾼이라고 나를 칭한다.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모전 금액을 보고 몇 백만 원인지를 확인하고 프레임에 맞춰 글을 쓴다. 가끔을 내 능력치보다 상향인 곳에 도전해보기도 힌다. 운이 좋으면 몇 달치 생활비를 얻을 수 있다. 하루 살이 같은 삶이다. 몇 십만 원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투자 대비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래, 나는 꼭 유령 같다. 제도권 안에 속하지 못하고 점점 투명해져서 사라져 버리는 유령.

누군가 나의 이름을 기억해줄까.

우리의 가난이 게으름이 아니었음을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일까.

글을 쓰는 것이 죄를 짓는 일은 아닐까.


물 밖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숨 쉬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가난은 서서히 내 숨을 죄여 온다. 나는 돈이 없어서 불행하진 않지만, 불행할 때마다 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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