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다. 입술 옆에 작은 포진이 났다. 어린이집에 구내염이 돌고 있다는 소식에 덜컥 겁이 났다. 구내염은 아니지만 바이러스성 포진이 의심되니 의사 선생님이 이번 주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자고 하신다.
"이번 주 내내요?"
"네."
아이의 입술을 흘끗 본다. 이 정도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병원에 괜히 왔나? 그런 생각이 이성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피식 웃음이 난다. 엄마라는 사람이... 참 개념이 없네.
"아이도 그게 편할 거고요."
의사 선생님이 덧붙인다. 죄책감이 가슴에 박힌다. 이번에는 입원은 아니니 다행이다. 만 2살인 아이는 벌써 병원에 네 번을 입원했는데 그렇게 낯설던 입원실이 몇 번을 가니 편해졌다. 아이가 처음 링거를 맞았을 때 나는 지켜보지도 못하고 펑펑 울기만 했는데 이제는 아이의 몸을 꽉 잡고 최대한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간호사를 돕는다. 열감기로 시작한 아이의 항생제 치료가 부작용을 일으켜서 물설사를 하루에 수십 번을 했던 때는 입원실에서 13킬로인 아이를 들고 수십 번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닦였다. 병원에선 하루만 더 지켜보고 상급병원으로 옮기기를 권했다. 다행히 그 날 이후로 아이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나는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병원이 편하다. 밥도 나오고 아이를 돌보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아이가 아플 땐 건강해지기만 하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인간이란 어찌나 간사한지.
솔직히 말할까. 모든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다 나 같진 않겠지만, 나는 아이와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게 내 소원이다.
아이는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고 나는 작은 소음에도 민감하다. 아이는 하루 종일 집 안을 뛰어다니고 일부러 매트를 깔지 않은 곳에 가서 발을 쿵쿵 구른다. 관심을 끌려는 거다. 쳐다보는 시선 자체가 아이에겐 자극이니까. 내가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오자마자 처음 한 일은 집 전체 바닥 매트 시공이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이는 아무 곳에서나 소리를 지른다. 내 아이라고 모든 부분이 다 예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쓰면 내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까? 실제로의 나는 물러 터진 엄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엄마다. 아이는 내 약한 부분을 안다. 내게 유독 칭얼거리고 아빠가 나타나면 나를 빼앗길까 두려워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가끔은 이런 사랑을 받아본 것이 언제였나 싶을 때도 있다. 온전히 한 사람의 세계인 사랑.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있을 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이는 또래보다 어휘력이 월등히 높다. 감정표현과 발달 모두 또래 이상이다.
그런데, 그런데도 괴로운 것이다. 가끔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일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키보드를 제멋대로 눌러버리는 아이가 순간 미워지는 것이다.
오늘은 정신과에 가는 날이다. 약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가정보육을 하게 되었으니 약은 일주일 뒤에나 탈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편안함과 내 일상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해가 바뀌고 그 사이 네 편의 공모전에 공모했고, 두 곳의 출판사에 출판 기획서를 냈으며 일주일에 세 권 이상씩 책을 읽고 있다.
한 군데 공모전에 입상을 했고 두 군데는 낙방을 했으며 어제는 수상자에게 개별통지가 갔다는 사실에 낙심해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오늘부터 가정보육이니 당분간 나의 시계는 또 멈출 것이다.
아이는 나를 먹고 자란다. 나는 아이에게 완전히 먹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내 몫을 지킨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고통을 함께 견뎌내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