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가족의 몰락

우울한 엄마의 상담일지 03

by 오늘




내 우울이 심각한 상태에 도달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사실 나는 원래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태어났다. 어른들이 인사를 하라고 하면 엄마 다리 뒤로 숨는 소심한 아이. 요즘 육아시장에서는 기질론이 대세. 아이가 가진 기질을 강점으로 인정해주고 기질적 단점을 긍정하여 자기 존재성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성장을 돕는 것. 아마 이런 세태에서 나를 키웠다면 엄마는 조금 나를 다르게 키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엄마는 수많은 잘못들 가운데에서도 애정을 주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지배적인가. 나는 경상도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군무원이었다. 군인들과 함께 80년대를 보냈고, 그 위계질서를 동경했다. 옆집에서는 일어나자마자 점호를 한다고 했고 오백 몇 호의 그 언니는 오빠에게 맞아 눈이 멍들곤 했으니 우리 집 정도는 무난한 줄 알았었지.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한 번도 긍정받은 적이 없었다. 얼굴 한쪽에 큰 반점이 있었고 본래 성격도 내향적이었다. 또래와 어울리기 힘들어하고 겁이 많고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고 아빠는 나를 부끄러워했다.


아빠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한 가지 방법이 글쓰기였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로 많은 상을 받았다. 국어 경시대회, 도지사, 도 대표, 방송사 주최 대회, 달에 두 번은 조회시간에 학생대표로 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상을 받아와도 아빠는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어차피 축하받지 못할 상이라 장려상이나 입상은 따로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정면으로 바라봐주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쓴 글이 첫 출판물로 나왔을 때도, 내가 습작을 프린트해서 드렸을 때도, 아빠는 단 한 자도 읽지 않으셨다. 그리고 단독 출간은 언제냐고 물을 뿐이었다. 당신은 어차피 출간될 그 책을 읽지도 않을 거면서 그런 질문은 왜 하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때쯤엔 나도 채우지 못한 당신의 교육에 대한 열등감을 문학인이 된 딸로 채우고 싶은 욕망을 납득할 나이가 되어있었으니까.


엄마는 글을 배우고 쓰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문맹인 사실이 부끄러워서 엄마는 관공서의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때마다 자식들을 대동한다. 그럴 때는 무척 귀찮은데, 엄마의 고집을 이길 수가 없다. 모순적이게도 반문맹인 엄마가 우리 집에서 유일한 내 독자다. 내가 보내 준 글을 다 읽고 엄마가 일하는 반찬가게 주인집 딸에게도 내 동화를 읽혔단다. 나는 사채빚을 지고 우리 집을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간 엄마를 그래서 미워하지 못한다. 10년을 공무원으로 살면서 생활비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보다 더 자식을 사랑할 자신이 나는 없었으니까.


늘 바쁘고 건조한 딸과 늘 보고싶다는 엄마의 문자


아빠는 아름다움에 집착했다. 내가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규칙이 많아지고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던 것 같다.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킨 적도 있고, 책상 서랍이나 냉동실 구석에 음식을 채워놓지 않으면 몹시 불안했다. 밥통을 끌어안고 선 채로 그 밥을 다 먹기도 했다.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만두를 사 먹었다. 마는 내가 서랍에 숨겨놓은 만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에 혼자 있던 날이 많아서 커다란 전축 앞에 노래를 틀어놓고 혼자 흰 죽에 간장을 끝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들었던 음악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화이트의 W.H.I.T.E. 그 음악 속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져서 그 속에서 살고 싶었다.


아빠는 나에게 자제력이 없고 의지가 약하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던 것 같다.


책과 활자와 입안에 밀어 넣을 무언가가 없으면 견딜 수가 없이 불안했다. 아빠는 내가 살이 쪄서 임신도 못 할 거라는 둥, 남자들에게 여자로 보이지도 않을 거라는 둥, 네가 짐승이지 사람이냐는 둥, 당신 말로는 충격요법을 가했다. 말을 하는 시간은 언제나 식사 시간이어서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밥을 먹는 내 자신이 정말 돼지새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정말 슬펐던 건, 집을 떠나 혼자 지내며 더 이상 내가 내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식욕억제제를 먹고 30킬로를 빼서 당신 앞에 섰을 때 당신의 그 환하게 웃던 얼굴.


"봐라, 니도 할 수 있잖아.
이야, 우리 딸 진짜 예쁘네."


내 마음의 어떤 조각을 잘라내고서야 처음으로 만나본 당신의 행복한 웃음. 도 크니 살을 금만 더 빼면 모델 같겠다고.


그 날, 나는 너무 기뻐서 죽도록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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