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정신과 기록
우울한 엄마의 상담일지 01
병원에 가지 말 걸 그랬다. 타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고 있었으면서 왜 또 기대를 했던 걸까? 전문가라서? 의사라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 삶의 어려움과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우울감이 알약 한 알로 퉁쳐질 줄 알았다면, 정신과 방문은 그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좋았을 거다.
나는 정신과에 가면 내 마음의 병이 씻은 듯이 나을 줄 알았다.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을 먹으면 온 몸을 에워싸는 이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작은 위로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비참함이라니. 내 슬픔이 알약 하나와 고생하셨다는 말 한마디로 치환되는 이 수치심이라니.
그제야 내가 글쓰기를 가르치던 학생 중 한 명이 정신과에 죽도록 가기 싫어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 애 엄마는 그 애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신과에 가면 그것들이 모두 사라질 줄 알았다. 지금의 나처럼. 멋진 신세계 속의 '소마'같은 걸 원했다면 우린 다른 곳을 찾아야 했을까.
의사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세 군데의 정신과에서 했던 말이니 반드시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운동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정신과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의사의 권위 앞에서 환자가 얼마나 위축되는지. 내 증상을 일축하는 그들의 말 앞에서 내가 운동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과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나면 다시 환멸감. 나는 운동 따위를 못해서, 겨우 그 따위를 못해서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한심하지?
아이가 내 팔에 애착이 생겼다. 예민한 엄마를 닮아 예민한 아이다. 나는 자는 동안 아이에게 팔을 양보해야 한다. 내 신체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쉽게 포기가 되었다. 팔 한쪽을 내주면 나머지 부분을 내주지 않아도 되니 남는 장사 아닌가. 그렇게 2년 정도를 내 팔의 주인이 아닌 채로 살았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팔이 그러면 잠을 잘 잘 수가 없을 텐데요."
"네, 제대로 자 본 적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은 좋지 않네요. 그래서는 안 되죠."
"그렇지만 아이가 팔이 없으면 자지 않아요. 많이 울어서."
"아이들은 원래 울죠."
"네, 그렇죠."
"좋은 베개를 사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베개.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사와 나의 거리가 몇 만 광년은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베개. 아 그런 쉬운 해결책을 두고 나는 이렇게 바보같이 내 몸의 권리를 포기한 채 살았구나. 너무 우스워서. 내가 너무 한심해서.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해받으려고 노력해보지 말 걸 그랬다. 그랬으면 적어도 상처 받지는 않았을 텐데. 타자는 원래 불가해한 것이니까, 그런 짐작으로 충분했을 텐데. 확인을 하고 나니 모래로 만들어진 내 몸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려 바람에 날려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