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세 군데나 옮겼다. 첫 번째 병원의 주치의는 여자분이었다. 편견이었지만 나는 같은 성별이니 내 입장이 좀 더 쉽게 전달될 것을 기대했다. 양가 어디에서도 도움받지 못하는 양육에 대한 어려움, 작가로서의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무력감, 자신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불안감.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 입장을 이해해주겠지.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확실히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있었다. 우리가 성별의 동일성 외에 어떤 공통점을 가졌다고.
나는 모든 병원과 상담센터를 통틀어 그 여의사 앞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장 나의 이야기에 무감각하게 반응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 융, 아들러, 매슬로우.. 친구처럼 익숙하고 친근한 이름이었다. 상담에 대한 이론들 역시 공부한 바 있었다. 그래서 상담 시 내담자를 대처하는 의사의 반응 또한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태도는 내게 상처였다. 안경을 무심히 치켜올리고, 시계를 계속 바라보며,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연계된 상담센터를 권유하던 그녀. 30만 원 상당의 심리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며 힘드셨겠어요, 라는 말과 함께 6만 원짜리 검사를 받게 한 그녀. 내 손에 쥐어진 최소용량의 알약 하나. 그리고 그 검사 결과 나의 뇌파는 그리 우울하지 않다는 소견.
그 알약이 일종의 적선 같다고 느낀 것은 아마 나의 피해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에게 병명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같은 성별의 그녀라서, 더 혹독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해 엄살을 부린 것 같은 기분으로, 그리고 부모의 이혼이나 차압 딱지나 유년기의 아동학대의 기억 같은 건 이 나이쯤이면 잊었어야 할 숙제 같은 것으로, 한층 더 무력해진 채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출산의 기억이 떠올랐다. 36시간의 진통,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 나는 고통에 둔감한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큰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은 적도 몇 번이었고, 안면마비가 와서 얼굴 전체를 장침으로 관통시킨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나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한다. 갓 중학생 되는 아이가 첫날 장침으로 양볼을 뚫을 때 그렇게 울더니 두 번 째부터는 이를 악물고 참더라고. 나는 고통을 만나면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어차피 아플 거니까. 소리 지른다고 덜 아프지 않을 테니까. 멈추지도 않을 테니까.
그런데 출산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일어나서 걸을 때마다 온몸이 찢겨 내리는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간호사들은 진통 수치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며 나를 엄살 환자 취급했다. 당장이라도 아랫도리가 다 부서질 것 같은데 수치에는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 나도 내가 엄살을 부리는 줄 알았다. 간호사들은 내게 노골적으로 귀찮은 티를 냈다. 겨우 무통주사를 요청해서 맞는 순간 고통이 사라지며 온 몸에 두드러기와 함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가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무통 주사의 효과가 떨어질 때까지 온몸을 벅벅 긁어댔다. 10명 중 한 명이 겪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내 고통은 이유가 밝혀졌다. 당초 3.5킬로그램으로 예상했던 아이는 4 킬로그램이 넘어 제왕절개를 했어야 하는 무게였고, 뱃속에서 하늘을 보고 누웠어야 할 아이는 땅을 보고 엎드려있었다. 아이가 팔다리를 차면 배에 붙은 진통 감지기에 진통이 잡혀 통증이 수치로 판단되는데, 나는 뒤집어진 아이가 허리와 꼬리뼈를 계속 발로 차는 바람에 수치에 잡히지 않는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었다. 화장실을 거의 기어가던 나를 바라보던 간호사들의 차가운 눈빛을 잊지 못한다. 고통이 수치로 전혀 잡히지 않던 그때, 나는 이미 꼬리뼈가 부서진 상태였다.
처음 정신과를 다녀왔던 그때도 출산 때와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뇌파에 잡히지 않는다는 나의 우울.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것일까. 스쳐 지나가듯 그녀는 말했다.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서 어쩌면 그것이 보통의 상태라고 뇌가 인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내 고통에 대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그녀가 내게 적선하듯 지어준 한 알의 약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