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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6. 2021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의식의 흐름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그래서 조급했고 늘 초조했어
남들과 비교는 일상이 돼버렸고
무기였던 내 욕심은 되려 날 옥죄고 또 목줄이 됐어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었던 나
그대의 슬픔, 아픔 거둬가고 싶어 나

방탄소년단 <Magic shop>


 아이가 아프고 2차 백신 부작용이 심하게 와서 일주일이 넘게 약을 먹지 못했다. 그러니 내 원래 상태가 어땠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만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약을 먹으면 무기력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생기고,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고 집안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약을 먹다 보니 그게 원래의 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 그랬지, 나는 늘 사라지고 싶었고 내가 나인 것을 싫어했다.

 깜깜한 방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 종일 울며 보낸 하루도 있다. 활자가 화살로 변한 듯 가사가 마음에 통째로 박혀와서.

  남편과 다투었던 날인 것 같다. 왜 다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한없이 서운했던 기억,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만이 살갗에 남아있을 뿐이다.

 가끔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노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자우림의 노래가 그랬고, 에픽하이의 노래가 그랬고, 롤러코스터의 노래가 그랬다. 언니네 이발관, 심규선, 한희정.... 그런 순간에는 이 세상에 그 노래와 나와 남는다. 그런데 왜 매번 그때마다 나는 슬펐을까. 나는 기뻐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슬퍼서 듣는 사람인가 보다.

 

 요즘은 자주 슬프다. 예술인 지원금도 받았고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다. 그런데 슬프다. 약이 떨어져서일까 슬픈 일들이 많아서일까. 조카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 어제는 그것 때문에 내내 슬펐다. 내 몫의 슬픔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슬펐다. 이 짧은 글에서 슬프다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을까. 며칠 전에 시집을 한 권 샀고, 요즘은 아크릴화를 그리고 있다. 주말에는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를 보았다. 좋았다. 어쩌면 오프라인이 아니라 볼 수 있었는지도. 예전에 공연을 보러 다니던 날들이 떠올라 행복했고, 지금은 혼자 어두운 방 안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것이 조금 쓸쓸했다. 누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더 좋았을 걸.

  병원에서 약을 탔다.  글은 약을 타러 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선생님께서 SSRI 용량을 늘리자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어서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안정제의 양은 계속해서 줄이고 있다. 신경안정제는 어쨌거나 향정신성 의약품이고 나는 의존성이 높은  약물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살아가기 위해서 약을 먹는 거니까.


출발할 때는 매직샵을 듣고 있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방탄소년단의 00:00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날 있잖아
이유 없이 슬픈 날
몸은 무겁고
나 빼곤 모두 다
바쁘고 치열해 보이는 날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벌써 늦은 것 같은데 말야
온 세상이 얄밉네

뭔가 달라질까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래도 이 하루가
끝나잖아
초침과
분침이 겹칠 때
세상은 아주 잠깐 숨을 참아
Zero O'Clock

방탄소년단 <00:00>


 역시 슬퍼. 내 마음을 읽어주는 이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서일까. 아니면 어디서엔가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일까. 어느 쪽이든 조금은 슬프고 안도감을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이 글을 마치고 싶고 특별한 마무리를 하고 싶지도 않고 요즘은 시를 쓰고 싶다. 어제는 그리던 그림을 망쳤다. 화방에 들러 새 캔버스를 살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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