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에 대하여
정서경 작가님께서 서래는 헤어질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제 손으로 죽여버린 서래는 그 이후로 그 어떤 나쁜 사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라도 먼저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서래가 죽는 마지막 씬이었다. 서래는 바구니로 차가운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밀물이 밀려들어와 쌓인 모래탑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구덩이 안이 물로 차오를 때까지 바구니를 들고 묵묵히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 또한 이별이다. 헤어짐이다. 세상에 남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이별하는 일이다. 어차피 자살이라면 바다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만일 것을, 서래가 바구니를 껴안고 슬프고도 결연한 표정으로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그녀가 세상과 헤어질 결심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래의 죽음은 자살의 형태를 띤 바다의 타살. 용의자는 가을 바다.
나 또한 서래와 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너무나 미워하는 사람과도 이별하는 것이 두려워 참고 참고 견디는 사람이다. 이별을 체험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서 차라리 버티는 사람이다. 서래의 죽음이 나는 그래서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어떤 사랑을 했건,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헤어짐을 택한 서래가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 조금은 싫고 슬펐다.
헤어질 결심을 늦게 봤다.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유튜브에서 팔천 얼마를 내고. 혼자.
늦게 봐서 다행이었다. 미디어에서 계속해서 재생되는 서래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요즘은 정훈희의 안개를 듣는다.
얼마 전 영천에서 올라온 엄마가 그 노래를 알고 함께 흥얼거린다.
서래가 떠오른다.
계속, 서래가 내 주변을 맴돈다.
오늘 함께 회사에 입사했던 동료 작가 중 남아있던 마지막 작가가 퇴사 소식을 전했다.
나는 이제 혼자다. 새로운 작가들은 많지만, 나의 서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이제 회사에 남아 있지 않다.
한 명 한 명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