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지금은 많이 변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도 서열을 중시하는 위계 문화 때문인 것 같다. 어디를 가나 나이를 물어보는 곳이 많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나이 제한이 있고, 나이 때문에 제약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옷조차 20대, 30대, 40대, 50대에 맞추어 입어야 하는 유행이 있다. 물론 나이에 어울리는 옷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어울리면 눈치 보지 않고, 체면 따지지 않고 좀 자유로우면 안 되나?
내가 미국에 있을 때는 대뜸 나이 먼저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이를 모른 채 친구가 되고, 어떤 계기로 나이 얘기가 나오면 그제야 알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그만큼 나이를 별로 인식하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자꾸 언급한다는 것은 나이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부하던 때였고, 요리하는 것에는 시간도 들고 별로 흥미가 없어서 주로 사 먹는 편이었는데, 주말에는 아파트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곤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리는 브런치 친구가 되었다. 나이로 따지자면 이모 벌쯤 되었을 것이다. 친구가 되는 데는 나이가 필요하지 않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를 사귀다 보면, 다양한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고 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 좋다. 나이 어린 친구들은 나의 고리타분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60대 사업가 한 분과 친구사이다. 그분이 내게 나이 든 사람을 친구로 대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 역시 나를 위아래가 아닌 친구로 대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더 편안하게 친구로 대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순되게 들리지도 모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어린 사람이라고 관대하고 어여삐 여겨 준다는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반대로 제주도에 아는 “동생”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사실 나는 친밀함에 따라 나이 차이가 있어도 친구라 여기는데 그 “동생”은 나이가 다르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동생이 없을 때 누군가 찾아와 나는 길게 설명하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동생이 나이 차이도 나는데 친구라고 봤다며, 그렇게 보이냐며, 어떻게 자기하고 친구로 볼 수 있냐고 하길래 내가 친구라고 말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웃으며 물었다. “우리 친구 아냐?”
친구라고 표현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이에 대한 인식이 다를 뿐이다. 인간이 태어난 이상 세월과 함께 나이가 드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것을 우리가 매일 ‘나이가’, ‘나이 때문에’, ‘그 나이에’하며 일종의 제약으로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나이를 제한이 아닌 장점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듦의 좋은 점은 경험치가 쌓여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땐 내가 좋고 싫음에 따라 태도가 다르고 비판하고 배척하곤 했었다. 지금에 와선 어릴 때 나의 생각이 아주 편협하고 좁았다는 걸 안다. 어떤 것에 대한 좋고 싫음은 그저 나의 선호도일 뿐, 그것이 옳고 그름을 의미하지도 좋은 일 나쁜 일의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인격의 성숙함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니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