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 어쩌면 내가 점점 무디어져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친구와 처음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어릴 적 가족들과 다녔던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이번이 나의 첫 캠핑 경험이다. 사실 친구와 나는 여행을 다닐 때 호텔을 더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지만 자연에서 뒹구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바다도, 숲길도, 올레길도 드넓고 광활한 자연이 느껴지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하지만, 말하자면 자연에 잠시 들러 에너지를 얻고 돌아와 잠은 깨끗하고 편안한 곳에서 자야 한다. 벌레나 풀이 잘못 스치기라도 하면 피부에 울긋불긋 두드러기 반응이 퍼지고, 모기에 물리면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서 평소에도 모기는 두려움의 대상이라 이들과 함께 머무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한 번은 바닷가에서 손을 모기에 물린 적이 있는데 손이 풍선처럼 부풀어 구부러지지 않은 적도 있다. 내 몸이 이모양이라 자연에 나를 온전히 맡긴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연을 좋아하는 자연 예찬론자다. 자연은 내게 영혼의 휴식처 같은 곳이니까.
제주도에 한 달간 머물 때 올레길, 오름, 알려지지 않은 숲길까지 참 많이 다녔다. 특히 나는 사려니 숲길을 좋아하는데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름도 사색과 어울리는 예쁜 이름 아닌가? 사려니! 제주도의 예쁜 곳들은 이제 숨을 수 없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사려니 숲길 또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다. (숲길을 걷기보다는 인증숏 찍어 올리고 돌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하긴, 숲길 끝까지 걸어가려면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그 끝은 반대편에 있어서 차를 가져가면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이 길을 끝까지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숲길 입구에 들어서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30분쯤 길을 걸어 들어가면 사람의 모습이 뜸해진다. 1시간쯤 들어가면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오로지 숲과 길, 그리고 걷고 있는 나만 있을 뿐이다.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사슴이 제 모습을 보인다. 멈추어 있다 껑충껑충 뛰어가는 사슴의 모습을 두 번이나 보았다. 사슴을 본 게 무어라고, 숲에서 나온 사슴을 본 게 감동적이어서 숲길을 걷는데 사슴을 보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댔는데 나 혼자만 흥분해서 떠든 모습이었다. 저마다의 감동 포인트는 다 다르니까 괜찮다.
걷는 것은 그렇다 해도 한라산을 오른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10시간이 걸린다. 끝없이 오르는 것 같아 꽤 힘든 길이다. 하지만 한라산은, 한라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나는 계속 감탄을 하고, 사진을 찍고, 처음 보는 한라산의 풍광에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체 정상은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 거야’하고 힘들어하면서도 말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내려오는 분들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힘내라고 희망을 심어준다. 그런데 그 조금은 자꾸 한 발 물러났다. 그분들이 말한 조금 더는 다시 힘든 고비가 오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 줄 지점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더’를 여러 번 지나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와우. 이런 광경을 눈에 담으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자연에 홀딱 반해 그대로 멈추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던 하늘과 다른 하늘을.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다. 정상을 목표로 꾸역꾸역 올라가긴 했는데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헬기 타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힘도 빠지고 다리 힘이 풀려서 내려오는 길에 돌길에 넘어져서 무릎에 살이 파이고 피를 흘리며 내려왔다. 무릎은 시퍼렇게 피멍이 들고 욱신욱신 꽤나 아팠다. 그런데 그렇게 무릎이 깨지고도 다시 갈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힘들고 넘어져 다친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고, 한라산이 주는 자연의 에너지는 무어라 표현할 길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이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자연을 사랑할 밖에.
친구가 캠핑을 하게 된 건 동생 가족과 함께 가면서부터였다. 친구의 동생은 아이들이 있어서 캠핑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친구는 캠핑을 따라다니긴 했지만 잠자리나 씻는 것은 불편하다고 잠은 집으로 돌아와 자곤 했다. 그러던 사람이 캠핑에 푹 빠져서 고가의 텐트부터 시작해 캠핑 용품을 하나씩 하나씩 사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캠핑장 예약해 놨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캠핑을 간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뭘 챙겨야 하는지 친구에게 묻자 음식도 캠핑 키트가 있어서 자기가 다 준비했다고 그냥 오라고 했다. 밤에 추우니까 따뜻한 옷만 챙기라고 해서 나는 정말로 옷과 베개만 챙겨서 따라갔다. 텐트를 치고, 매트에 공기를 주입하고, 테이블을 조립하고, 등등 세팅할 게 많은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캠핑 초보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친구가 모든 세팅을 끝내고 힘들다며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먼저 마셨다. 그리고는 모기퇴치밴드를 양손에 끼라고 주고, 모기기피제를 뿌려주고, 테이블 양쪽으로 모기향을 피웠다. 나는 처음 하는 캠핑이라 캠핑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저녁은 고기와 된장찌개 그리고 어묵탕까지. 친구는 동생과 다닌 경력이 있어서 이것저것 능숙하게 다루며 저녁을 맛있게 준비해 주었다. 불판이든 그릇이든 장비는 주인이 다루어야 하나보다.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할 게 별로 없었다. 친구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편히 있으라고 했다. 친구 덕분에 저녁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친구가 가져온 음식들을 보았을 때 이렇게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어? 했는데 다 먹었다. 이런 데 와서 먹는 음식은 뭘 먹어도 맛있다면서.
그리고 캠핑 와서 불멍을 빼놓을 순 없지! 낮에는 더운 날씨지만 공기 맑은 산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추웠다. 장작불이 따뜻하게 해 주었다. 타닥타닥 나무 타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로 생각을 비우고 불을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부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천천히 느릿하게 맥주를 마시고, 칩을 하나 씹고, 조용한 수다를 떨고. 어느새 장작을 다 태우고 남은 것이 몇 개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을 더 보고 싶은데. 그대로 멈추기엔 너무 아쉬운데. 친구는 장작 한 다발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고, 동생한테 물어보니 두 다발을 준비했던 것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불씨를 끄고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친구에게 말했다.
“저기 가서 장작을 좀 얻어올까?”
“가서 얘기하고 얻어올 수 있어?”
“응, 할 수 있어. 갔다 올게.”
그분들에게는 장작 한 망이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사주겠다 하고 그 한 망을 다 가져왔다. 장작의 여유가 생겨 맘껏 불을 피웠고 두런두런 이야기 꽃도 피웠다. 밤하늘에 북두칠성도 보였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별이 반짝인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나, 머릿속도 마음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친구와 나는 늦은 밤까지 그렇게 있었다. 물론 야외에서 자는 잠은 잔 것 같지 않게 잘자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 또 캠핑을 가지 않을까? 다시 살랑살랑 마음을 간질이는 자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