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일기(5)

환영받지 못하는 정의

by 레오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부를 했지만 정작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전쟁을 통한 이익을 챙기기에 바쁜 못된 어른들의 천국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은 교묘하게 전쟁을 부추기는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불안한 균형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는 더이상 시소게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 뉴스 찌라시들은 전쟁상황을 빠르게 알리며 조회수 올리기에 급급하다. 자극적인 기사들은 댓글러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이제는 정의가 아닌 전쟁광처럼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혐오로 가득차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의란 무엇일까. 국민의 안전? 내 가족의 안위? 인류 자체의 존엄? 내 기준의 정의는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 것일까. '하마스'라는 조직이 행하고 있는 일은 무조건적인 악의일까? 이스라엘의 병원 폭파는 무조건적인 선이 될 수 있을까? 그걸 이익을 계산하며 방관하고 있는 UN, WHO 등의 협력기관들은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덧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져 더이상 뉴스에도 나오지 않게 됐다. 이념과 정치, 막대한 돈의 움직임으로 인해 이미 양쪽의 우두머리들은 추해질대로 추해진 상태다. 그러면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라를 지켜낸 대통령? 젊은이들을 불구덩이로 달려가라 외치는 대통령? 인류의 평화가 모든 정의의 최우선 사항이라면 이 두 대통령 모두 자격미달임이 틀림없다.


우연히 요즘 하고 있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다가 강조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전쟁의 명분이 무섭게 느껴졌다.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손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강조와 그런 강조에게 화를 내면서 '그런 생각 하나로 백성들에게 피흘리라 강요'하는 것이 맞는지 말하는 강감찬의 대화는 서로가 다른 정의를 굳게 믿고 있기에 가능한 설전이었다.


사람은 피가 쏠리면 앞뒤분간을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만 주구장창 밀어붙이다가 창피한 꼴을 당한다. 때로는 나는 분명 맞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굳이 그렇게 불편하게 사느냐고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일들에 왜 하나하나 물음표를 붙이느냐 시비가 걸리면 그냥은 뒤로 물러서지 못한다. 내가 봐도 참 답답하게 사는 인간인 듯하다.


"공사구별 잘 하라고 했지 유도리가 없으라고는 안했는데?"


참... 내가 많이 듣는 소리였다. 어쩌면 이 소리를 듣다가 나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것 때문에... 난 도시에서, 내 직장에서, 하고 싶었던 일에서 멀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이라는 큰 이야기를 하다가 나라는 인간의 이 속좁음을 말하려고 하니 우스꽝스러워졌다. 원래 우스꽝스러운 사람이다.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의로운 일인지, 애초에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조차도 의심이 든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삐뚤어지겠다고 결심한 인생인데... 남들과 조금 다른 가치관으로 이 자리에 파묻혀 사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개똥철학이라고 비웃음을 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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