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아 쓰는 이야기 (3)

그건 땡볕 아래 길게 늘어져 있었다.

by 레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산골짜기에서 친구네 집 좀 빨리 가보고 싶어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색에 파란색 포인트들이 들어간 자전거를 이마트에서 구매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비는 3일 동안 계속해서 왔다.


일요일 아침, 뜨거운 해가 마당을 비췄고 물을 머금은 풀들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잔디밭을 밟자마자 신발은 이미 젖었고 양말 사이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좀 더 기다렸다가 놀러 나가겠지만 자전거를 탄다는 흥분에 이미 젖은 양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나는 어차피 나중되면 비에다가 던져 놓을 자전거였지만 새로 샀다고 애지중지 비닐에 씌워놓은 자전거를 꺼내서 잔디밭 위를 뺑뺑 돌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잔디 죽이지 말라고 혼이 났다.


제일 친한 친구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를 다녀오는 날이었다.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교회가 끝날 시간 때즈음에 읍내에 항상 모이는 친구네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향했다. 매일 3~40분씩 걸어서 가던 길을 자전거로 간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걸어갈 땐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 바로 나타났다. 바로 오르막길이었다. 산골짜기에서 읍내로 나갈 때는 오르막 내리막의 경사가 심한 길을 가야만 한다. 자전거를 타본 건 공원에서 대여해서 평탄한 길을 달릴 때 뿐이었으니 오르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지어 기어가 있는 자전거인데 기어 사용법을 몰랐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었음을 이제와서 되돌아 본다.


내리막길은 좋았지만 오르막길은 죽을 맛이었다. 나는 두번의 고개를 넘고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지쳤다. 엉덩이를 때고 3번 째 오르막을 오르며 입으로 욕을 했다. 다시는 내가 자전거 타고 친구네를 가나봐라 라고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 정상에 올라 이제는 다리를 페달에서 때고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갔다. 거의 눈을 감고 스스르 내려가고 있는데 앞에 기다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느낌이 아닌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밟고 지나간 느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뒤를 돌아봤다.


뱀이었다. 당시 내 팔뚝 만한 뱀이 땡볕의 길가에 길게 널부려져 있었다. 나는 다시 앞으로 똑바로 쳐다보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그 뒤로 남아 있는 산능선은 어떻게 지나왔는 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 와서 이따시만한 뱀을 자전거로 밟고 왔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웃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왔다. 그때 다시 나는 돌아왔던 길을, 그 뱀이 있던 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에 사로잡혔다.


돌아오는 길은 은근히 힘들지 않았다. 아니, 힘들지 않았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나의 지친 몸보다 공포가 절대적으로,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힘듦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천천히 페달을 밟아 내가 뱀을 밟은 장소가 멀리서 보였다. 나는 일단 멈추고 멀리서 그 근처를 확인했다. 뱀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안도를 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페달을 미친듯이 밟기 시작했다. 뱀이 매복하고 있다가 달려들 것 같아 순식간에 지나가기 위해서 였다. 허벅지가 터져라 밟았다.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뱀은 비가 온 다음 날 땅 밖으로 숨쉬기 위해 잠시 나올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풀숲에서도 비 온 다음 날은 조심해서 들어가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할머니는 기겁을 하시면서 혼자 다니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당부하셨다. 어른이 돼서 다시 생각해보면 뱀은 그냥 산책 나온 건데 교통사고 당한 게 아닐까. 뺑소니한 게 살짝 미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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