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타세요?

행복의 단상 20221219

by 레오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평소보다 더 옷을 많이 껴입고 일을 했다. 저녁이 되자 책방의 예약 손님들은 모두 떠났고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는 사실에 기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서둘러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날카롭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마스크와 털모자 사이에 눈가를 따갑게 했다.


나는 평소 '스마트키'라고 불리는 것들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냥 버튼을 눌러 잠금을 해제하거나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 일까. 그런 나에게도 겨울에 장갑을 벗고 비밀번호를 누를 때 만큼은 스마트키의 절실함을 느낀다. 이 날도 역시 아파트 문 앞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장갑을 벗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안쪽에서 엘리베티어를 기다리던 한 꼬마 소녀가 나를 보더니 졸졸 달려와 자동문 앞에 섰다. 위-잉 하고 열리는 자동문과 함께 소녀는 나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실 나는 그 소녀가 누군지 모른다. 소녀가 건넨 그 아름다운 인사에 나도 존댓말과 함께 감사의 말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열어줘서 감사합니다." 소녀는 나의 존댓말을 듣고는 상당히 어색해 하며 엘리베이터로 돌아갔다. 난 아파트 2층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도 엘리베이터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굳이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소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나같은 아저씨와 같이 탄다고 해서 좋을 게 어디있겠는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녀와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비상등만이 켜져 있는 계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의 네번째 칸에 발이 닿는 순간 뒤에서 큰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안 타세요? 지금 엘리베이터 도착했는데요?"

난 얼떨결에 또 대답과 함께 감사를 전했다.

"전 2층에 살아서 그냥 올라가면 돼요.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두번 째 감사와 함께 존댓말이 어색했나본 지 나를 잠깐 빤히 보더니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넵! 들어가세요!"

소녀의 배려에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평소에는 두칸 씩 올라가던 계단을 한 칸 씩 밟으며 천천히. 미소를 머금으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에게 1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수한 감사를 느꼈다. 남을 배려하는 소녀의 마음씨는 하루종일 힘들고 추웠던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소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내 자신에게도 감사함을 느꼈고 이 모든 일들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소녀의 배려에 감사하고,

그 배려를 감사하다 느낄 수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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