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인의 눈물 다리

세상을 여는 잡학

by 최정철 Jong Choi

옛말에 이르길 남자는 일생 중 세 가지 경우에만 울 수 있다 하였다. 태어날 때, 부모님 돌아가실 때, 나라를 잃었을 때다. 오늘날에는 부인이 죽을 때 남편으로서 울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이 거세다. 사랑하는 여인이나 부인으로부터 그런 말 들으면 숨도 쉬지 말고 힘차게 고개 끄덕이며 완전 동조를 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시밭길이 펼쳐지게 됨을 뼈에 새겨야 한다.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통해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한 옛 합동 형장 터인 서소문 역사공원에 현양탑이 세워져 있다. 이 근처에 눈물다리가 있었다. 사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가 대원군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천주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앞의 한강 모래사장은 원래 조선 군인들의 연무장(鍊武場)이었으나 국사범이나 중죄인들이 생기면 그들을 처형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1456년 세조 2년 때 단종 복위 사건으로 몰린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등 사육신도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훗날 천주교인도 이곳에서 처형당했고 사람들은 이곳을 새남터라 불렀다. 새남터 외에 조선 정부의 형조에서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효시 효과를 내고자 서소문 바깥에도 형장을 차리고는 천주교인을 대거 처형했다. 그 자리가 지금의 합동(蛤洞) 서소문 역사공원이다. 마을 이름에 조개 합(蛤)자가 들어간 연유가 있다. 한강에 썰물 때가 되어 배들이 마포 나루에 들어서면 육지 상인들은 배에 실려 온 물품들을 구매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그중 일단의 상인들은 조개를 대량 구매하여 서소문 바깥 마을에 좌판을 내어 판매했다. 그렇게 조개 파는 마을이 되고 보니 합동이라 부른 것이다. 이곳이 점차 큰 어물전으로 발전하여 1975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으로 존속하였다가 1976년 지금의 노량진으로 시장터를 옮기고는 현재는 중림 시장 정도를 그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합동 수산시장이 1976년 이전하여 국내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자리잡은 노량진 수산시장. 사육신 묘가 바로 옆에 있다. 사진 수산업협동조합


이 합동 어물전에 넓은 공터가 있었고 형조에서 이곳을 천주교인 처형 형장으로 활용하였다. 서소문 역사공원에서 합동으로 들어가는 길에 작은 도랑이 흘렀고 그곳에 다리가 놓여있었는데 합동 공터에 형장이 생긴 이래 그 다리는 눈물 다리로 불렸다. 천주교 신자들이 합동 형장으로 끌려갈 때 가족이나 친지들은 슬픔에 젖은 채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 다리에 이르면 형리들에 의해 정지당한 채 형장 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날의 사극에서 보는 조선 시대 참수형 장면을 보면 웃통 벗어젖힌 봉두난발의 망나니가 언월도 형태의 커다란 칼을 들고 춤을 추다가 냅다 소리를 지르며 죄수를 참한다. 잘못된 묘사다. 원형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형리들은 사방 50보 정도 되는 공간을 형장으로 삼아 장막을 친다. 이때 인정 있는 사람들은 장막 밖에서 속참행하(速斬行下)라고 하는, 고통 주지 말고 단칼로 죽여 달라는 뜻으로 망나니에게 엽전을 던져준다. 이제 형리는 죄인의 양쪽 귓바퀴를 각각 접어 관이전(貫耳箭)이라는 짧은 화살로 꿴 후 죄인을 바닥에 엎어뜨린다. 목 아래에는 나무토막을 받쳐 넣어 망나니의 칼을 받도록 한다. 이어서 전옥서(典獄署) 관리가 죄수의 죄목을 크게 읊는다. 그러면 바지저고리 멀끔하게 차려입고 꼬리 긴 붉은 두건 쓴 망나니가 회자(劊子)로 부르는 협도(鋏刀)를 몇 번 휘두르다가 기합 소리도 없이 목을 내려친다. 협도가 죄인의 목을 향해 내치기 전 관리는 죄인에게 몇 마디 말을 시킨다. 그러면 죄인은 뭐라 말을 하다가 부지불식 간에 목을 잃는다. 죄인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지막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이때 망나니가 짧은 칼 대신 긴 협도를 쓰는 까닭은 긴 칼을 휘둘러 얻은 원심력으로 단번에 목을 베기 위함이다. 칼춤 또한 원심력을 얻고자 협도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는 것을 잘못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형이 집행되는 동안 죄인의 가족 친지들은 다리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는데 통곡 소리는 내지 말아야 했다. 죽은 자의 혼(魂)이 통곡 소리에 흔들려 자칫 원귀(寃鬼)나 원령(怨靈)이 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슬픔과 눈물이 밴 그 다리를 눈물 다리라 불렀고, 또 한없는 슬픔으로 터져 나오는 통곡을 억지로 참던 그 모습으로 인해 한자로는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이 아닌, 눈 가장자리에만 머무는 글썽거리는 눈물인 누(泪)를 붙여 누교(泪橋)라 했다.

눈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서양인은 우는 형태로 슬픔을 나눈다. 영어로 tear는 눈 가장자리에 눈물을 고인 채 울기다. wail은 큰 소리로 통곡하며 울기다. cry는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sob은 흐느끼기, weep은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울기다. 한국인은 눈물의 종류를 놓고 슬픔의 강도를 측정한다. 한자로 누(泪)는 눈 가장자리에 고인 채 글썽거리는 눈물이요, 누(淚)는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일직선으로 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은 체(涕)라 하고, 이리저리 갈라져 흐르되 얼굴 면적을 벗어나지 않는 눈물을 사(泗)라고 하고, 콧물과 함께 흘리는 눈물은 이(洟)라 한다.


서양인은 아무리 큰 슬픔을 당해도 대체로 글썽거리는(tear) 정도로 울건만 한국인은 눈물을 솟구치며 소리 내어 울곤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혹은 사별할 때 가장 슬픈 눈물을 흘린다. 서양인은 가족 간에도 뿔뿔이 흩어져 사는 원심적(遠心的) 정서의 민족이기에 누가 죽든지 헤어져 가든지 눈물 박한 것이요, 한국인은 서로 떠나지 않고 함께 살기를 바라는 구심적(求心的) 정서의 민족이라서 이산(離散)을 가장 슬프게 여겨 한 맺힌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 한국인의 눈물이 한때 전 세계를 적신 적이 있다. 1983년 한국방송공사가 장장 135일 동안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특별생방송을 운영했을 때이다. 한국전쟁으로 서로 헤어져 살아온 가족이 기적같이 만나고 있는 TV 생중계 장면에 한반도 이남 땅에 거대한 눈물 다리가 만들어졌다. 이것을 지켜보던 전 세계 사람들 역시 너나없이 손수건을 적셨으니, 노아의 홍수이래 지구상 동서양인의 눈물 홍수가 동시에 일어났던 범인류적 일대 사건이었다.


눈물에는 눈의 점막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주고 라이소자임 D라는 체액으로 멸균까지 해주는 의학적 약효기능뿐 아니라 사람 마을을 정화해주는 힘까지 갖고 있다. 사람은 슬픔이나 화를 속으로만 삭이면 병을 얻기 마련이다. 그 대신 한바탕 울어대면 마음이 안정된다. 사람이 울 때는 옥시토신이라는 성분이 체내에 분비된다고 한다. 이 옥시토신이 천연 마취제이기에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에 겨워 흘리는 눈물도 있다. 그때의 눈물에는 행복 도취감을 증폭하는 아름다운 힘이 들어있음이고.


인간 외 동물 중에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동물이 악어다. 악어는 장시간 물 밖에 있을 때 눈이 건조해져 상해지는 것을 막자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먹이 먹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먹이를 씹자고 턱 움직일 때 눈물 흘리는 이유는 턱 근육과 눈물샘을 관장하는 신경이 같은 것이라 그렇다고 한다. 이런 악어의 눈물을 위선적 눈물이라 하는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 제법 많다. 수상한 DNA를 가진 짐승들이다.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 때 흘렸던 김연아의 눈물은 한국인의 행복 눈물이었다. 사진 gettyimagekorea

한국인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그만큼 눈물 흘릴 일 많았던 한국인이다. 현재의 한국인은 어떤 눈물 다리를 건너고 있을까?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눈물을 수년 동안 흘려야 했다. 영업 제한으로 무너져 내리던 소상공인들의 절망 가득 찬 눈물, 떨어져 사는 노부모를 찾지 못하던 자식들의 안타까운 눈물, 확진된 가족을 졸지에 잃어야 했던 유족의 황망한 눈물, 공연과 행사 중단으로 생계 위협을 받아야 했던 문화예술인들의 절규 터져 나오던 눈물이 곳곳에 내를 이루다 보니 눈물 다리가 지천으로 생겨났다. 한바탕 슬픔과 고통의 눈물 다리를 건넜으니 이제는 행복의 눈물 다리를 건너는 그런 시절이 되기만을 앙망한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 동서고금 역사 신화와 함께 하는 한국인의 인문학『면사포를 쓰는 신화 속 한국 여인』만나기

https://smartstore.naver.com/roadnvill/products/6973681341


keyword
이전 03화다민족 나라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는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