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음 날 새벽, 숭례문을 사이에 두고 성안에서는 김씨녀의 하명을 받잡은 유월이 집안의 종놈 몇을 데리고 가마를 대령한 채 득달같이 쫓아 나와 어서 파루 쳐지기를 고대하던 중에 이윽고 멀리서 파루가 쳐짐에 수문 군사가 숭례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곧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만사가 끝날 일이라. 시간이 이쿵저쿵 흐르고 나니 과연 웬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성문 안으로 들어서는 즉, 지켜보니 꼴세가 사내임이 분명한지라 유월이 엄지손가락을 척 아래로 꺾어 보이는 것을 신호로 종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정 볼 것 없이 바로 보쌈을 한 후에 가마에다 짓쳐 넣었겄다. 가마를 들쳐 멘 종놈들이 숭례문에서 화개동 댁까지 발이 땅에 닿을 새도 없이 초고속 논스톱으로 달려 무사히 집안에 도착했으니, 이날의 대사는 예상외로 너무 쉽게 끝났던뎌. 김씨녀는 유월과 종놈들에게 치하한 후 보쌈해 온 사내를 일단 광에다 잘 모시라고 하였겄다. 어느덧 날이 밝아 해가 제법 솟은 시각이 되자 사내에게 아침밥을 근사하게 차려 내려주라는 김씨녀의 명이 떨어지거늘 유월이 종놈들을 앞세워 밥상을 들고 광에 들어가 사내를 알현하는데, 종놈들 손에 이끌려 푸대 자루에서 풀려난 사내를 보니 뜻하지 않은 남루 형색에 얼굴이고 팔이고 온몸에 땟국 물이 졸졸 흐르는지라 다들 입을 벌린 채 기절초풍을 하는 즉, 그래도 어쩌리오? 천기에 따라 모시기로 한 서방님 짜거늘, 어찌 타박을 하겠느냐? 유월이 속을 달래며 인사 말씀을 올리는데.
“서방님, 장시간 고생이 크셨사옵니다. 어서 아침진지를 드시죠.”
이 서방님 짜, 두 눈을 껌벅대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무 대답 없이 와락 밥상을 끌어안고는 정신없이 퍼먹어대기만 하는 즉, 기가 막힌 유월이가 김씨녀에게 상황을 보고하니 얘기도 끝나기 전에 김씨녀가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고녀.
“어이고, 내 팔자야! 하늘도 나를 괄시하는구나. 그놈의 봉사 영감이 나하고 무슨 철천지 원수질 일이 있기에 이다지도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고? 어이고, 흐흐흑······.”
“아씨, 어쨌거나 성문 열리고 첫 번째 남정네 분이셨으니 어쩌겠소? 이렇게 된 마당에 그저 심성 하나 착하기만 바래시오.”
“이년아, 거지 중에 상거지를 어찌 내 서방으로 모셔?”
“아씨께옵서야 돈이 궁하시오, 쌀이 없으시오? 그저 아씨 한 분께 정 주고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밤마다 생난리 굿을 지겼잖소? 암말 말고 지켜나 보자구요, 예?”
유월이가 우겨 맥이고 풀어 맥여서 김씨녀를 달래 놓고는 목욕물이 준비된 욕탕으로 사내를 데리고 가니 이번에도 사내는 따지는 법 없이 조롯이 몸 씻기에만 열중하는지라. 그런데 이놈의 목욕물이 한 통으로 끝나질 않거늘 사내 몸에 엉겨 붙은 시꺼먼 땟 덩어리들이 그만큼 흔천이었던가 보뎌라. 진작에 눈치를 챘을 터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괙천조였던 것이렸다? 이렇게 된 사연인즉, 새벽 파루 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괙천조는 성안 주막집을 찾아가 주모가 내어주는 모주찌기라도 얻어먹을 양으로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섰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의 성문 안 출입에 첫 번째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라, 구봉사의 말을 철석같이 따른 유월이에게 제대로 걸려 들은 것이었음이니.
그리 허면 우리의 주가 놈은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고? 밤새 흥겨워 술을 마셔대었으니 제깟 놈이 술에 취해서래도 잠이 안 왔겠느냐? 그런즉 괙천조가 일어났을 즈음해서는 벌써 댓자로 뻗어 자고 있던 것이었고 괙천조가 암만 흔들어 깨워도 제 놈 말대로 들었다 놓아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형국이니, 괙천조야 자기 볼일도 급한고로 간밤의 고마웠던 대접에 재회 기약을 속으로만 새기고 자리를 뜰 수밖에. 그러다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괙천조는 처음에는 어찌 된 일인지를 분간 못하였으나 불현듯 이것이 사내 보쌈임을 알고는 낙심천만이었겄다? 당시의 풍습으로 볼 때 서방 몇 놈 잡아먹을 드센 팔자로 난 여자가 일면 부지 사내를 보쌈하여다가 거짓 혼례 올리는 것으로 액 씻음한 후 그 사내를 죽여 없애기도 하는 일이 왕왕 있었던지라. 그러니 보쌈질 당한 괙천조로서야 이제 내 명도 이것으로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니.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매 걸행 짓으로 구차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따뜻한 금침이나 한번 기분 좋게 덮어 써보고 죽는 것이 어쩌면 더 나으리라 여겨지기도 한 즉, 원래가 배포가 있던 괙천조였던지라 심란했던 마음도 점차 평온을 찾게 되었던뎌. 사람 목숨 한번 살지 두 번 사랴 싶은 모진 생각에 까짓 자기 입장에서 볼 때 기름진 밥을 먹여주질 않나 더운물에 목욕까지 하게 해주니, 죽기 전에 이런 대접도 썩 유쾌한 것이었겄다?
“서방님, 비누 열 갑에 양잿물 한 덩이, 양치하실 소금 한 대빡이면 서방님 옥체 어느 정도 소지는 될 것이요. 물도 그쯤이면 되겠나이까?”
오랜만에 더운물로 몸을 씻어내느라 콧노래가 셀셀 세어나오는 중에 종년이 자기에게 서방님 짜를 붙여가며 깎듯이 해주니 괙천조의 기분이 일견 호탕해지기까지 하는고녀.
“오오냐.”
“서방님? 거, 지금 벗기지 마시고, 물에 푸욱 담갔다가 제법 불거졌을 때 벗기시오. 그러면 한결 수월하리다.”
“오오냐.”
“그러실 거 없이 저 행길 가 설렁탕 집 식칼을 하나 갖다 드릴 테니, 한 벌씩 깎아내시겠소, 서방님?”
“아니다아.”
“그럼 어서 부지런히 몸을 씻으옵소서, 서방님.”
마당으로 돌아 나오는 유월의 입에 탄식만이 앞서는고녀.
“어찌 저리 때가 나오나 어찌 저리 때가 나와? 일 년 열두 달을 물하고 원수지간이었나, 한 번 득 긁어 한 사발이요, 두 번 득득 긁어 두 뚝배기요, 세 번 네 번 득득득득 긁어내어 양푼 서너 개 가득이로다. 서방님 옥체에서 분가한 저것들을 한데 모아 근수 따져보면 너댓 관은 족히 나가리. 가마니에 쓸어 담아 동네 개천 방둑으로 세워두면 장마철 큰비 나릴 때 한몫 단단히 해내겠고나······.”
그때 김씨녀가 방문을 열어젖히고는 답답하다는 말투로 하문하기를.
“아직 멀었더냐?”
이에 유월이 장한 목소리로 아뢰거늘.
“양이 제법 나오다 보니 해거름은 걸릴 것이요!”
“어이고!······ 아예 공장에 가서 비누를 달구지 째로 실어다 드려라!”
“진즉에 그리 했으니 그런 염렬랑은 붙들어 매시오!”
그러자 욕탕 안에서 괙천조가 유월을 불러 세우는데.
“얘, 나 좀 보자!”
김씨녀로서는 처음 듣는 서방님의 옥성이요, 그 소리가 제법 통 큰 바리톤인지라 귀가 솔깃해 지는고녀. 유월이가 쪼르르 달려가 여쭙기를.
“왜 그러시오, 서방님?”
“그러지 말고, 어디 가서 금 조갑지나 하나 얻어 오너라.”
“아니, 금 조갑지는 어디다 쓰시려굽쇼?”
“이거야 원 귀찮고 시간만 걸리고 허니, 그걸로 고갱이(여기서는 남자의 신체 일부로 능대능소하는 별난 재주를 지닌 부위를 뜻함. 가끔 무골 장군이라는 별호로 불리기도 함)하고 밑천(무골 장군의 좌청룡 우백호)만 남기고 벅벅 긁어 낼란다.”
그 듣기 좋은 음색으로 기껏 한다는 말이 이러니 김씨녀, 더 기가 찰 수밖에. 유월이 돌아서서 소리를 죽여 웃는데 김씨녀도 쓴웃음을 머금으며 한 마디 덧붙이기를.
“천신님 전 여쭈나이다, 저 몰골이 내 천생배필임이 정녕 참말이오니까? 지긋지긋하여라 이년 팔자!······ 가서 금 조갑진지 은 조갑진지 어김없이 대령해 올리거라!”
“아씨, 그만하시고 기다리시오. 내 얼른 혼례 준비 마치리다.”
김씨녀가 방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고 난 후 강집사의 지휘로 유월과 종놈들이 차양을 친다, 멍석을 깐다, 혼례 상을 차린다, 술을 내 온다, 어쩌고 하면서 준비를 다 마쳐가니 시간은 어느덧 설핏 정오(正午)를 막 지나고 있던가 보더라. 그때 즈음해서 대문 안으로 지팡이를 더듬으며 들어서는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구봉사렸다.
“여기가 과수댁이 맞나?”
“영감님, 시간 잘 맞추어 오셨소. 어서 이쪽으로 오시오.”
“응, 제대로 찾아 왔구먼.”
구봉사가 더듬대며 유월에게 다가들더니 급한 숨 넘기고 나서 묻기를.
“그래, 어떻게 잘 되었는가?”
“잘이야 모셔 왔습죠.”
“제일 첫 번째였던 게 분명허지?”
“분명했습죠.”
일이 잘 돌아가는구나 싶어 입이 함지박만 해진 구봉사, 어깨춤이 절로 움씰거리는고녀.
“옳지! 그렇담 만사 땡이로구나. 그놈이나 나나 이제 복 터질 일만 남았으렷다?”
“뭔 소리를 하시는 게요?”
“아, 아닐세. 그건 그렇고 일을 어찌하였는지 설명이나 좀 듣세.”
“시간 맞추어 숭례문으로 나가 이 두 눈으로 괭이 쥐 노려보듯 지켰더랬죠. 파루 치자 곧 문이 열리는데 처음에는 강아지 새끼 하나 아니 들더니, 잠시 후에 먼빛으로 웬 검정 송아지를 몰아오는지, 진상 가는 도야지를 몰고 오는지, 굴뚝 막은 덥석이 떠오는지, 대완구 방망이가 굴러오는지, 아무 소리도 없이 새까만 고약 덩어리가 차차 가까이 오더이다. 생신 꼴세가 분명코 사내이거늘 다짜고짜로 잡아채어 집으로 모시고 왔습죠.”
“시커멓던 허여멀겋던 수월히 잘 되었구먼. 에헤헤헤······.”
“헌데 집에 와서 살펴보니 이런 가관이 없더란 말이오.”
“가관이라니?”
“처음엔 내 눈이 두옥시니한테 홀렸나 하고 눈을 씻어보기도 하였는데, 아 형색을 살피자니 꼭 빌어먹는 거지꼴이오. 얼굴은 병신 같지는 아니하나 여러 날 세수도 못한 모양에다 다 떨어진 거적 대기에 입성은 참, 고옵습디다.”
“뭐가 어째? 거, 이상하다? 그놈이 씻는 건 별로 좋아 안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거지행색으로 다니는 위인은 아닐 텐데?······ 오호라, 그놈이 어쩌다 어두운 밤길을 놓쳐서 진창에라도 빠졌던 모양이려니.”
구봉사가 주만동이를 염두에 두고 씨부렁대는데 유월이가 알아들을 말이겠느냐?
“뭘 그렇게 고깃점 빠진 시주밥 든 중처럼 구시렁거리시오?”
“아, 아닐세. 어디, 혼례 상 준비는 다 됐고?”
“혼례 상 준비야 이레 전부터 쓸고 닦고 하면서 해놓았습죠. 벌써 다 차려 놓았소.”
“신랑 신부는 지금 뭐하구?”
“새 서방님 되오실 양반은 지금 욕탕에서 몸에 들러붙은 때를 분가시킨다고 고갱이하고 밑천만 남기고 금 조갑지로 벅벅 긁어내고 있굽쇼, 우리 아씨는 천생배필 장한 꼴에 지금 안방에서 방바닥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고 있습죠만.”
구봉사는 유월의 하는 얘기가 못내 이상스럽지만 암만 생각해 보아도 천하의 날건달 주만동이가 이런 횡재 볼 일에 허투루 하지 않았을 터인즉, 그저 그러려니 하고 기다려 보는 수밖에.
“허어!······”
“그래도 우리 새 서방님, 물에 몇 번씩 들어갔다 나올 적마다 시꺼멓던 게 조금씩 뽀얘지기는 합디다? 허우대도 멀쩡하굽쇼.”
“아, 허우대야 멀쩡한 위인이지, 암.”
“예? 봉사님이 그분을 꼭 보신 듯이 얘길 하시오?”
“잉? 보긴 뭘 보아? 자네 시방 내 눈을 두고 놀리려고 하는 말인가?”
“아는 듯이 얘길 하시니 안 그럽니까요?”
“시끄럽네. 그나저나 이놈이 그놈이어야 할 터인데······.”
“영감님? 왜, 뭐가 잘못된 거라도 있는 게요?”
“잘못되긴? 하늘이 맺어준 연분인데 잘못될 일이 있으려고?”
말이야 이렇게 주워섬기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은 떨칠 수 없는 구봉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