괙천조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우리의 주만동이, 그동안 양반댁들 원행 놀이에서 조용히나 있었겠으리오? 술잔 얻어 마신 값으로 잡혀주었던 소리 가락 내력이 제법 만만치 않았음이니.
“더 잘 될 것이요. 어서 뽑아나 보시오.”
괙천조의 맞장구 장단에 에헴 하고 목을 틔워 일단 중모리쪼로 들어가는데.
“집 단장을 하여보세, 집 단장을 하여 봐. 아침마다 산보할 앞 뒤뜰을 꾸며볼 제, 팔모연당 육모정안에 석가산을 모셔두고, 추녀 끝에 풍경 달고 양각 등에 앵무새장 걸어놓고, 네모 연못 안에는 대접 같은 금붕어가 수파를 희롱하고, 오리 거위 징경이와 원앙 비취 공작들이 이리저리 왕래하며, 온갖 화초에 화향이 코를 찌르는구나!······”
괙천조라고 어찌 듣기만 하겠는가? 곁들여 한 소리 내는데.
“화초 치레 볼작시면, 이화 도화 향화 방초들로 난만하고, 동에는 청년화 남에는 주작화 서에는 백합 북에는 오목 중앙에는 황국이라. 목단 작약 영산홍 금사 오죽 벽오동 황도 벽도 삼색 되며, 매화로 일러도 백매 황매 천엽매며 노송 반송 분송목과 난초 홍초 파초며, 왜철쭉 진달래 맨도라미 봉선화며!······”
이제 돌아가는 품세가 제대로 잡혔으니,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 바로 자진모리로 달리는고녀.
“석암치자 월사계 석류 동백 백일홍 백영산 자영산 백두견 자두견 백정향 자정향 목부용이며, 황장미 백장미며 옥매 출장화 상단화 연꽃 수국 옥잠화 수선화며!······.”
“동정귤 분수 유자 탱자며 당개나리 금잔화며, 종녀 소철 옥빈 채송화 해당화 만향화 석죽화 취작 계수목과 진흥영춘 산단화며, 여러 가지 괴석들을 이리저리 버텨놓으세!······”
“아따, 어지럽게도 화려하오그려!”
“에, 그 참 생각만 하여도 신명이 솟는구나.”
발동이 걸린 괙천조가 다음을 재촉하는고녀.
“자, 목좀 추기고 이제 방치레로 들어가 봅시다.”
“그럽시다!”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원래가 주책 떨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 술 두어 잔 몰아서 마신 괙천조가 남 잔치에 제 일 인양 설레발을 치는구나.
“주형, 이번엔 내가 앞 수를 뽑겠소.”
“그러시구랴.”
“방치레로 들어가 보는데, 분당지 도배에 색능화 주련에 당유지 굽도리하고, 각장 장판 소라반자에 묵화 난초 혁필이며 용장봉장 쇄금 들미장, 이층 장롱 삼층 화류장 사방탁자 쌍용 그린 옷걸이며!······ 받으시고.”
“침향 홧대 은장식에 주황당사 끈을 하고, 이불 책상 갑계수리 선단이불 대단요에 인문보로 씌워놓고, 유경촛대 광명들이 요강 타구 재털이에, 부산 배련죽에 장죽 객죽 담배초합, 청동화로 백탄 숯에 약탕관 올려놓고!······ 아싸, 넘어가오그려!”
“철침 퇴침 벼루집과 용연 벼루 앵무 연적 무심필을 곁들이고, 화류 책상 반듯 놓고 칠서를 쌓았는데, 수정 필통 양호필에 간지 색지 당주지며, 안경 태경 몸솔이며 면소 총채 갓거리며, 산수병 인물병 모란병 둘러치고, 호렵도 대병은 웃목에 가로 치고, 쌍창에 갑창이며 안문에 봉족자 다각 문에 상산사호 죽림칠현이 한가허네!······”
“얼쑤 좋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달밤에 별 발광 짓 다하며 놀아 제치는 꼴세들이 세상 가관이로고녀.
“자자, 주형. 재미 붙인 김에 또 넘어가 봅시다.”
“응, 이번엔 이러면 어떻겠소, 괙형?”
“일러 보시오.”
“이번엔 내가 어려울 적에 신세 졌던 사람들 죄다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고 싶은데 어떠할지?”
“어려울 거 없소. 어서 내칩시다!”
“그럽시다. 자, 또 시작하여 보는데······. 통영자개 옻칠해 낸 열자 스무 자 너른 상에 팔모접시 대모반에 갖은 음식 담았는데, 대양푼에 갈비찜과 소양푼에 연게 찜, 두귀 발쭉 송편이며 먹기 좋은 꿀 설기 보기 좋은 화전이라······!”
“송기 주악 웃기로다, 청술레 황술레 깎은 생률 접운 준시 전복 염통산적 양복기며, 감자 능금 석류 수박 참외 실백자 개암 비자며, 겨자 생청 틈틈이 끼워 놓고!······”
“침채를 볼작시면 무김치 통김치며 석박지 젓국지며 깍두기 장아찌며, 고기로 일러도 천리찬 붕어조림에 너비아니 섭산적 무생채 초나물이며!······”
“장산적 장포육 약포 어란 북어무침 대하무침 얹혀놓고, 알쌈 전복쌈에 게장 화란이며, 전유어 눌음이며 소라젓이 일품이고!······”
“초자작 앵무배에 천일주 포도주를 부어 권주가가 흥청인데, 게중에 풍류난 자 내 집에 천석지기 마름이나 시켜보자!······”
“아이고, 얘기로 놀아도 배부르고 취하오그려.”
“으헤헤헤헤!······”
실컷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나니 둘 사이가 벌써 십 년 지기는 되고도 남는 듯, 화기가 애애짜로 넘쳐나는지라.
“여보, 주형?”
“왜 그러시오?”
“내 이리저리 빌어먹다 그게 어려워질 땐 가끔 놀러 가리다. 그때 가서 어디서 온 까마귀 새낀고 하지는 마소?”
“거, 무슨 서운한 말씀을! 이렇게 좋은 인연 맺어놓고 내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요? 괙형이 재주가 제법 되는 듯하면 내 뒤까지 보아 드리리다.”
“이거 말씀만으로도 황공무지요. 잔, 한 잔 받으시오.”
“받읍시다.”
이러저러 얘기를 나누며 술 순을 제법 돌리던 터에 밤도 제법 늦은 시각이라, 괙천조가 먼저 부른 배 쓸면서 하품을 길게 하는고녀.
“그나저나 밤이 꽤 깊었네그랴. 어 졸린다! 오늘 밤 술도 들어갔겠다, 이놈의 잠이 오늘 밤 따라 참 달게 오네그려.”
“잠이 된 통으로 올 땐, 눈꺼풀을 서까래로 떠받쳐도 소용이 없다오. 어서 주무시구랴.”
“나야 사는 형색이 일찍 일어나는 것에 달린고로 이제 잠을 청해야 하오만, 주형께선 같이 안 주무시려오?”
“아, 아니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뜬눈으로 지켜야 하오. 내가 원래 한번 잠에 빠지면 들었다 내팽개쳐도 잠을 안 깨는 놈이오. 게다가 이 몸도 내일 새벽에 중요한 일이 있은즉 차라리 요대로 밤을 새우는 게 더 편할 듯하오. 그러니 날랑은 개의치 마시고 시간이 되면 내가 깨워 드릴 테니 어서 주무시구랴.”
“그래 주신다면 더욱 고맙겠소. 그럼 나 먼저 자리다.”
괙천조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데 잠자는 것에도 경지에 이르렀는지 눕자마자 코 고는 소리가 바로 이어지겄다. 주만동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면서 한 마디 붙이거늘.
“허!······ 저런 재주도 다 있구나. 저런 재주 뽑는 알성시라도 있다면 성이 제 암만 흉타 해도 장원은 따놓은 당상이렸다?”
하고 나서는 졸지에 심심해진 기분을 달래보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방정맞게 씨부렁대길.
“어서 해야 솟거라. 해야 어서 솟거라! 이제 몇 식경만 지나면 이 몸이 귀하신 몸이 되느니, 그때에 가서 내 너를 일등공신에 태명공으로 품작을 내릴 것이니라, 으하하하하!······”
뜻하지 않은 유자 출신 괙천조와의 장시간 놀음에다 내일의 광명천지 생각까지 곁들여지니 몸이 들뜰 대로 들뜬 주만동이는 이날 밤이 평생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던지, 생각나면 한 웃음 곱씹고 나서 또 한 웃음이 늦게까지 이어지던 고로 밤늦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인근 청패골과 만리재의 마을 똥강아지들이 ‘어디서 굴러 처먹던 개 뼉따귀 같은 놈이 이토록 지랄 발광을 해 대는고’ 하며 한결같이 이를 갈았다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