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급급여률령사바하 06

시대해학풍자소설

by 최정철 Jong Choi

6

자,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가히 두고 볼 만은 하렸다? 천하건달 주가 놈은 그날부터 콧노래 타령이 절로 나오고,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만 눈알 빠지게 기다리는데, 화개동 김씨녀는 점괘얘기가 괴이하기도 한 고로, 과연 이놈의 점쟁이 말을 믿어야 하나 밤마다 고민이었으나, 그때마다 유월이 달래고 추스르고 하면서 어찌어찌 넘어 갔고녀. 덕분에 곰방대 내려칠 일도 없다 보니 유월이 며칠 동안은 잠 한번 편하게 잤겄다? 그러 저러 구봉사가 일러준 날이 하룻밤 앞으로 다가오매, 김씨녀는 어쨌거나 점괘를 믿어 보자 하여 강집사 시켜 든든한 집안 종놈 몇에 가마까지 잡혀놓고 날 밝기만 기다리는데, 우리의 주가 놈은 기다렸던 밤이 되자 술에 맛난 안주를 푸짐히 싸 들고 두 쪽 방울 소리 요란하게 숭례문으로 달려나가, 수문 군사에게 인정 몇 푼 집어주고 나와 성문 밖 담 자락 밑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하는고녀.

“밤아, 너 참말 길기도 하다. 동지 밤이 길다 해도 오늘 같은 밤 어찌 너에 비할쏘냐? 어서어서 지나가고 새날이 되어다오, 응? ······아무리 하룻밤이래도 이런 한데서 밤을 지새우자니, 참 까마득하구나. ······아니지, 아무렴 어떠냐? 내일이면 내 팔자가 천지개벽을 하는데, 제까짓 놈이 길어봤자 하룻밤에 더하랴? 내가 너무 좋은 일을 앞두고 심심파적으루 걱정 좀 했구나. 자, 긴 밤 지새자면 우선 속이 든든해야하느니······.”

어쩌고 하면서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 술과 안주를 풀어놓고는 슬슬 자작으로 들어가는데.

“커어!······ 거, 술맛 한번 좋구나!······”

그럴 즈음 성문 담 자락 더듬으며 다가오는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주만동이가 고깃점을 아가리에 짓쳐 넣다가 문득 그것을 바라보자니 생긴 것은 사람에다 어울리지 않게 도포 자락 걸쳤으나 형색이 거지 중 상거지 꼴세라, 웬 잡놈이 오늘 밤 흥분되는 자리를 훼방놓는고 하며 지켜 보는고녀. 주만동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거지 사내는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더니 근처 자리를 둘러보고는 곧 한 자리에 주저앉아 벌렁 드러눕는 것이렷다.

“어이고! 드러누우니 만사가 편코녀!”

주만동이가 못내 신경 쓰여 주절대기를.

“저게 사람인가 짐승인가? 시커먼 송아지 새끼 같은 게 꼭 거지가 분명하렸다?······ 그나저나 아마 잠잘 데 찾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나 보다.”

잠시 지켜보던 주만동, 아마도 내일의 복을 생각하니 만사에 여유가 생겼는지 평소 저 답지않게 호탕한 생각을 주워섬기더니.

“잘 됐다. 내 오늘 밤 쓸쓸히 지새울 것이 걱정이더니, 저자와 함께 수작이나 부려보자.”

하고는 거지 사내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지르기를.

“여보! 거기 누운 양반! 기운 차리고 이쪽 좀 돌아보시오!”

그러자 거지 사내가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주만동이를 바라보고는 귀찮다는 듯 몸을 일으키는고녀.

“게 누가 나를 찾노?”

“나요, 좀 봅시다.”

“······노방 생활 수삼 년 동안 날 찾는 이 바이없더니만, 오늘은 북두성이 사당놀이를 뛰었나, 날 찾는 이가 다 있어?”

구시렁거리던 거지 사내가 다 떨어진 도포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시키지도 않은 사설 가락을 뽑는데 주만동이 듣기에도 장히 좋았음이라.

“그 누가 나를 찾나, 그 누가 나를 찾어. 세상천지에 나 찾을 이 어디 있나뇨? 천지조판 연후에 반고씨가 수출하사 천황 지황 인황씨가 분장구주하자 날 찾는가, 복희씨가 팔괘 그리자 날 찾는가, 황제가 간계 만들어 치우 치자 날 찾는가, 전 팔십 후 팔십 위수어옹 강태공이 고기 잡자 날 찾는가,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 고사리 캐자 날 찾는가, 팔 년 풍진 초패왕이 유방 치자 날 찾는가, 석가여래가 불도 의논 차 날 찾는가, 공맹안증이 성현노릇 하자 날 찾는가, 육군자가 도학 논의 차 날 찾는가, 도연명이 국화주 먹자 날 찾는가, 사마천이 사기를 의논 차 날 찾는가, 이태백이 주 일 두에 시 백 편 하자 날 찾는가, 오자서가 병서를 의논하자 날 찾는가, 편작화타가 병 고치자 날 찾는가,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 희롱 차 날 찾는가, 을지문덕이 먹을 풀어 절구 짓자 날 찾는가, 충무공이 거북선 띄워 왜놈 치자 날 찾는가!······”

넋을 놓고 듣고 있던 주만동이 저 정도면 오늘 밤 동석 자리가 즐거우려니 하고 재차 청을 하는고녀.

“거, 입에 물 티눈 박히겠소. 형색은 초라하나 재담 풀이 들어보니, 그녁도 벼루 먹 좀 드셨구랴. 보아 허니 형편이 궁색한 모양인데, 이리 와서 수인사나 트고 같이 대작이나 하여봅시다. 내 맛난 술에 고기가 제법 되오.”

그 말에 거지 사내, 뭘 가리랴 무릎걸음 재게 해서 바짝 다가오더니 수인사를 트는고녀.

“그 양반 날 생각해 주는 뜻이 기특도 하오. 그래, 날 부르신 댁은 뭐 하는 뉘시우?”

“나는 남산골에 사는 주서방이라는 사람인데, 하는 일로는, 에······, 뭐, 특별히 가려 하는 건 없소. 댁 내력은 무엇이오?”

“나는 충청도 내포에 사는 괙천조 괙서방이라 하오그려.”

“괙?”

“내 일찍이 과거 보랴 상경하였다가 과거는 뽑혔으나 괙씨 성이 흉하다 하여 삭과를 당하고, 노자 한 푼 없이 청패골 근처에 유하면서 일 년 동안 외상 밥을 먹으며 지내다가, 급기야는 주인한테서 내침을 당하고 보매 이날로부터 남의 집 굴뚝이 베개가 되고 추녀 밑이 이불이 되었으니, 어느 집에서 내다 버리는 모주 찌끼나 얻어먹으며 사는 신세라, 오늘은 이렇게 남문 성벽 자락에 하룻밤을 의지코자 이러고 있소이다만.”

어쩐지 먹물 냄새 풍기는 작태가 심상찮다 하였더니 알고 보니 유자 출신이로세? 허나 처지가 거지 형색인고로 주만동이 그닥 꿀릴 터가 없는지라 오늘 밤 같이 놀아본다 한들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렷다.

“쯧쯧쯔······. 그나저나 성은 왜 그리 흉허우?”

“내가 본래 성이 없더니, 우리 부모님께서 열심히 날 만드실 제 하늘에 새가 괙 괙 울고 간 뒤에 나를 베고 십 삭 만에 생산하셨소. 날 나시고 우리 부모가 아이 성을 지어야겠다 의논하던 차에, 그때도 하늘에서 새가 괙 괙 울고 가는고로, 괙 괙이라 괙씨요 하늘에 새라 천조. 해서 괙천조가 됐소이다만.”

이런 기가 찰 얘기에 주만동이의 배꼽이 장시간 천둥 지랄 춤을 춰 대는고녀.

“으하하하!······ 거, 사연 한 번 재미있소! 말 많이 하느라고 더 시장하실 텐데, 엣소. 어서 드슈.”

괙천조라는 이 사내, 감격에 겨운지 술과 고기를 잠시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한다는 말인즉.

“술아, 고기야, 너희들 나 본지 참 오래 됐쟈?”

잠시 눈물 뽀새기 조히 뽑고 난 괙천조, 주만동이가 따라 주는 술을 감격스레 받아 마시는데.

“커어!······ 술맛 좋기가 과연 선녀 주둥이 빠는 맛이로다!”

그리고는 곧 죽어도 풍류일진뎌 또 한 자락 타령이 어찌 아까우리오.

“세상공명 부운이라 성현명장도 나는 싫소. 죽장망혜에 단표자로 천리강산 떠돌다가, 황봉백접 지기 삼아 건 술에 쓴 안주 족하리다. 한잔 먹세 또 한잔 먹세 꽃 꺾어 산 놓고 무진 먹세. 얼씨고 지화자 이내 팔자 아니 놀고 무엇허리······.”

송강의 장진주사를 표절했음이 분명한 타령 가사였으나, 그래도 자리가 즐겁기만 하면 될 터. 소리를 마친 괙천조는 바로 고기를 집어 들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고녀.

“참 잘 노시는 양반일세. 그나저나 몹시도 주렸던 모양이오?”

“이르다 뿐이겠소?”

“천천히 드시우. 목 맥히겠소.”

“자, 내가 한잔 올리리다.”

“그럽시다.”

“그런데, 나야 신세가 원래 그래 놓아서 한 데 잠이지만, 주형께선 그런 팔자가 아녀 보이거늘, 어찌 이런 데서 노방취숙이오?”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죠.”

“사연이라?······ 어디 그 사연 한번 들어나 봅시다.”

“어허허허······. 내가 내일이면 광명천지를 얻소.”

“그게 무슨 소리요? 광명천지라니?”

“헤헤헤······. 나처럼 운수 대통하는 놈도 조선 땅 천지에는 없을 거요만.”

“거참 궁금하네!······ 여보, 내가 본시 속에 궁금한 게 들어있으면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놈이요. 허니 어서 그 사연을 말해주오, 주형.”

“실은즉슨, 내가 내일이면 돈 많은 과수댁에게 새장가를 들게 됐다 이거요.”

“거하게 감축드리오. 헌데, 새장가 드는 것하고, 이 노방취숙하고 무슨 상관이라도 있다는 게요?”

“있죠. 허나 그것만은 내가 말 못하지.”

“허! 고이허다.”

“천기에 해당하는 사연인지라, 함부로 입을 열면 내가 급사를 당하오. 그래서 그러는 것이니 괙형이 이해하시오.”

“정히 그렇다면야 내 이해하리다. 그나저나 참 부럽소이다그려!”

“너무 부러워 마시오. 아직 일이 안 끝났는데 남의 시샘에 거리부정 탈까 두렵소.”

“압따, 다 된 밥상에 수저까지 들은 형상인 듯하오만.”

“뭐, 딴은 그렇소이다만. 헤헤헤······.”

“어쨌거나 거듭 감축드리오.”

이러면서 술 몇 순이 돌려지거늘, 주만동이 별 걱정 다 된다고 까불대며 한마디 하는 즉.

“그나저나 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데?”

“무슨 걱정을 또 그리 하시나?”

“그 많은 재산 껴안고 난 후에, 어찌 살까가 걱정이오.”

“허! 가만 보니 고약한 심사로세. 돈 껴안은 사람이 사는 걱정을 하면, 없이 사는 인생들은 아예 내다 죽으라는 얘기요?”

“아아, 그게 아니고, 어디에다 돈 쓰는 재미를 붙일지 헤아림이 안 된다 그 말이요, 내 말인즉.”

“거참 배부른 고민일세그려?”

“우리 같이 의논이나 하여봅시다.”

“돈을 어디에다 쓸지, 그 의논?”

“대사를 앞두고 이런 의논 해 보는 것도 별미 아니겠소?”

“그도 그렇구랴. 허면, 어디에다 돈을 쓰노?······ 옳지, 일단 집 단장을 말끔히 해 봅시다.”

“집 단장이라, 거, 좋지! 그런데, 우리가 시방 술도 한잔했고 허니 집 단장을 소리 가락으로 해 보는 게 어떻겠소?”

이전 05화옴급급여률령사바하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