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즈음해서 몸 씻기를 마친 괙천조가 강집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 옷을 입는데 가만 보니 이것이 바로 사모관대에 혼례복이라. 응, 이것이 이렇게 격식을 다 갖추는 걸 보아 허니 일이 끝나고 나면 영락없이 죽을 목숨이겠지, 허허허······.
“내가 과연 오늘부로 이승을 하직할 신세로구나.”
다시 울적해진 심사가 된 괙천조가 이렇게 자탄을 하자 강집사가 바람 빼는 소리로 말을 풀어내기를.
“허!······ 십 년 수절에 장안 대부로 사시는 우리 아씨께서 장차 하늘같은 새 서방님으로 모실 분이시거늘 어찌 그런 말씀을 입에 담으십니까요? 대사를 앞두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아닙니다요.”
월래? 이건 또 무슨 소린고?
“뭐가 어쩐다고? 자네네 아씨가 나를 어떻게 해?”
“저야 긴 말씀 드릴 거 없으니, 그저 국으로 가만히만 계시소서. 나으리께서는 이제 상팔자로 사시게 되었다 이 말씀입죠.”
엥? 내가 돈 많은 이 댁 아씨의 새 서방님이 되고 상팔자로 산다니, 어찌 이런 일이 다 생긴단 말이냐? 그렇다면, 이것이 액씻이 보쌈이 아니라 이 댁에 아예 뿌리 박을 말뚝 보쌈이로구나! 사태 파악을 끝낸 괙천조, 심장은 찌릿찌릿 콧노래 라릿라릿, 찢어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고녀. 어젯밤 주형이 새장가를 가게 되었다고 좋아하더니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그자의 복이 새끼 쳐서 나에게까지 떨구어졌는가,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다? 죽었다 싶은 목숨이 잠시 잠깐만에 상팔자로 회까닥 뒤집기 한 판을 하니 정신이 뽀송뽀송 혼미해지는 즉, 아흐 다롱디리! 무릉이 어듸메뇨, 여기가 긔 아니다, 라는 잡놈 있으면 확 육젓을 담글레라! 떨리는 마음 겨우 진정하며 혼례복 보기 좋게 차려입고 마당에 나서는데 이런 환골탈태가 또 없었으니 아무렴 유자 출신의 기풍이 어디 가겠느냐?
“어허흠!······”
기분 좋은 괙천조의 호탕한 헛기침에 유월이 에그 하면서 돌아서서 머리를 조아리는 즉.
“서방님 다 끝나시었······?”
어찌 차렸는가 올려다보던 유월이 갑자기 말을 놓쳐버리는데, 환골탈태한 괙천조의 외양이 그만큼 눈이 부셨음일레라.
“뜨아잉?!”
“아니, 왜 그리 놀라느냐?”
“여, 여쭙시다. 아까 들어가셨던 분이 서방님 맞소?”
“아무렴.”
구봉사가 얼굴에 인상을 가득 써가면서 이놈의 목소리가 주만동이 것인지를 헤아리는 동안 유월이, 눈을 씻고 다시 보며 묻는데.
“참말 그 서방님이 이 서방님이요?!”
괙천조가 대답대신 폼나게 너털웃음으로 넘기는데 우리의 구봉사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인지라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귓구멍을 있는 대로 벌리고서 괙천조의 음성을 확인하려고 온 신경을 모을 뿐인뎌.
“이상하네?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비슷은 하지만 조금씩 다른 것 같단 말이야?”
어찌 되었든 구봉사가 속을 태우거나 말거나 급해진 유월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아씨를 재촉하는고녀.
“아씨! 아씨! 어서 나오시요! 하늘에서 옥골선풍이 내려오셨소, 옥골선풍!”
그새 원삼 족두리를 차려입은 김씨가 방문을 나서면서 이를 갈며 답하는데.
“이년아, 그렇게도 옥골선풍이더냐? 에휴!······”
하다가 괙천조를 보고는 으억! 소리를 베어 물고는 숨이 돌기를 기다렸다가 겨우 묻기를.
“유, 유월아,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이게?!”
“보시는 대로입죠, 뭐.”
이제 모든 정황을 확신하게 된 괙천조가 먼저 호방하게 웃고 나서 사례를 올리것다.
“내 오늘 칠간 안 병문 모주나 주워 먹을 요량으로 부지럼 좀 떨자고 일찍 숭례문을 들어선 것이 바로 아씨 같은 선녀를 만나는 길이었구료. 내가 어찌 된 셈으로 하늘을 올라왔는지, 요지연에를 들어왔는지, 극락세계를 왔는지 꿈을 꾸는가 싶소이다.”
괙천조의 늠름한 어투와 풍채에 이제는 정신이 아리롱다리롱, 코에는 단내가 솔솔, 샅 짝마저 지려오는 김씨녀였으니, 그런 김씨녀를 보고 유월이가 곁에서 손바람을 날리며 보채기를.
“아씨, 정신 차리시오. 거, 입에 침 새는 것도 좀 닦으시고요.”
“으응? 아, 그래······.”
정신을 수습한 김씨녀, 입가에 흘린 침을 얼른 닦고는 자세를 갖추는고녀.
“뵌 적 없지만 인사드리나이다.”
괙천조 역시 점잖게 사례하기를.
“예, 초면이올시다.”
이렇게 수인사가 오가는 중에 구봉사는 연신 괙천조의 말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얼굴에 인상만 잔뜩 긁어대거늘 육십 평생에 이처럼 멀어 터진 눈을 한탄해 보기도 처음이렷다?
“아씨, 이제 혼례를 올릴 차례이니 마당으로 나서시죠.”
강집사가 나서서 행례를 재촉하는지라.
“그러세나. 영감님도 얼른 자리를 잡으시오.”
“그, 그러십시다.”
대답하고 유월이 이끄는 대로 자리를 잡아 서면서도 미치고 환장할 구봉사였으니.
“이거 참 헷갈리네?!······ 어쨌거나 유심히 관찰해볼 일이렸다?”
일단 시침 떼고 벌어지는 일에나 충실할 일.
“자, 아무튼 두 분 참 좋은 인연 맺게 되었으니 그리들 아시우.”
“고맙소이다, 영감님.”
괙천조가 인사성 있게 한마디 하는 것도 놓치지 않고 귀를 던져서 새겨듣는 구봉사로고.
“그것, 참······.”
“아, 뭐하시오? 여기 애간장 타는 사람 있는 거 모르는 게요? 빨리 시작합시다.”
유월의 채근에 구봉사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집례를 시작하것다.
“어 그려. 시작험세······. 에헴, 원래 혼례라는 것이 초저녘에 올리는 것이나, 댁내 사정이 급한고로 벌건 대낮에 그저 올리게 되오 그려. 두 분이 혼례를 올리는데, 의혼 납채 채단 혼수 친영 전안례라 앞거리는 죄다 생략하는 것이고, 불시에 교배례로 들어가서 그중 중요한 것만 뽑아서 하겠소이다. 자, 부선 재배!”
김씨의 두 번 절에 괙천조의 서답일배라. 다시 부우재배에 서우답일배 후에 서읍부구취자로 잘 넘어가는고녀.
“자, 두 분 다 앉으시고 유월이 자네는 술을 준비하게나.”
“준비되었소.”
“신랑한테 먼저 술을 올리게.”
괙천조가 술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신 후에 그 잔을 유월을 통해 김씨녀에게 돌리니 김씨녀는 그저 잔을 입에만 대기만 하는 것인데도 모질게 잔을 잡더니 그만 냉큼 잔을 비우는고녀. 그 꼴을 지켜보던 유월이, 가히 기가 막힐래라.
“허!······ 신부는 원래 잔 받고 대충 시늉만 하는 거요. 첨 해보시는 것도 아니면서!”
“얘, 옛날에 초례 치를 적에 그거 못 마시게 하니까 서운하더라.”
“아따! 거, 혼례 상 앞에서 너무 기분 내시네그랴!”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자 구봉사가 식을 마치는데.
“자 그럼, 서출 타실 모여부유실중!······ 이것으로 혼례를 마치기로 하고······. 좋은 인연 맺는 날 내 두 분께 어찌 이르는 말이 없을쏘냐.”
그러자 김씨녀, 염치머리고 뭐고 없이 눈 착 내리깔고 한 마디 끼어넣거늘.
“웬만하면, 짧게 합시다?”
김빠진 구봉사, 에헴 헛기침 내고 나서 떫은 입맛 다시며 사설에 들어가는구나.
“짧게 하리다. 오늘 이 자리는 무슨 자린고? 바로 월하노인 적승계족으로 선남선녀가 알몸, 아니, 한 몸 되는 날이렷다! 우리 아씨는 그 피눈물 나는 십 년 수절을 지키시면서 집안 살림 일으키고 부귀를 일구었으니 일러 가로되 가히 여장부라. 그러면 이쪽 신랑은 어떠냐? 신체는 왜소하나 각 다진 기운만은 천하장사에 버금가고······.”
하면서 괙천조의 몸을 더듬어보는데 이것이 주가 놈의 것인가 아닌가 싶고녀.
“그것 참!······”
다시 더듬거려 괙천조의 손을 부여잡고 주물럭거리며 하는 말인즉.
“사내 입성은 손을 보면 아는 즉, 이 사람처럼 거칠고 마디가 굵어야······. 일 열심히 해서 집안 식구 건사에 충실할 것이라······.”
역시 손도 느낌이 묘하니 이를 어쩌랴?
“어라?······”
보다 못한 유월이가 또 나서는구나.
“아니, 시방 뭐 하시는 게요?”
“아, 아닐세. 어쨌든 간에, 두 사람이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으니 한 가지 정을 나누면서 신부는 신랑 내조에 각별해야 하며, 신랑은 가풍을 지키는 데에 유념해야 하는 즉, 특히 신랑은 앞으로 집안의 재물을 잘 관리해서 부귀영화를 일궈야 함이라, 이때에 신부는 그저 서방님 하는 일에 일체 가타부타 말아야 부정을 멀리하는 것이니, 잘 새겨듣고 한번 잘들 살아보시오······. 에헴.”
구봉사가 속셈이 있어서 사설을 이렇게 잘 끌고 왔거늘, 괙천조가 뜬금없이 한 말씀 붙여 구봉사의 속만 뒤집는구나.
“아주 참 훌륭한 말씀 해주시었소. 허나, 나는 원래 유자라 하여 글 읽히며 세상을 논하는 것이 취미인즉, 날랑은 재물에는 관심 없으니 부인께서 잘 알아서 하시는 게 좋겠소이다.”
“염려 마시어요, 서방님.”
성질 같아서는 확 들었다 놓았다 하고 싶지만 어쩌랴, 구봉사로서는 그저 꾸욱 참을 수밖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데?······ 평소 이놈답지 않게 웬 딴청인고? 이놈이 과수댁 앞이라고 허세를 갖추려고 빼는 겐가?”
구봉사가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중에 괙천조가 김씨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끄는지라, 그동안 많이도 굶주렸던 괙천조였음이니 대놓고 김씨녀를 보채는고녀.
“자, 이제 혼례도 끝났고 하니, 어서 안으로 드십시다, 부인.”
김씨녀라고 어찌 급하지 않으리오?
“아잉······. 저야 따르기만 할 뿐이옵죠, 서방님.”
김씨녀가 괙천조에게 이끌려 들어가면서 집 식구들에게 잊지 않고 당부를 하는데.
“강집사, 다들 신접 방 근처에는 얼씬도 말고 멀찍이 물러나서 술들이나 마시도록 하게.”
“예, 아씨.”
두 사람이 방에 들기를 기다렸다가 지켜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어대는고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