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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Sep 11. 2022

알아두면 쏠쏠하게 재미있는 잡식(雜識)

세상을 여는 잡학3

옛 시절 조상님들은 갓난아기 우는 소리, 학동의 글 읽는 소리, 여인네의 다듬이질 소리는 삼호성(三好聲)이요, 초혼(招魂) 소리, 없는 집 뒤주 바닥 긁는 소리, 마누라 바가지 긁는 소리는 삼악성(三惡聲)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삼호성을 들라면 통장 입금 알림 소리, 배달 기사의 “택배 왔어요!” 소리, 마누라의 “며칠 친정 갔다 올게.” 소리 정도가 되지 않겠나 싶다. 삼악성은 어찌 될까? 자동이체로 계좌 돈 빠져나가는 알림 소리에는 허탈해질 것이요, 마누라 바가지 긁는 소리에는 여전히 진절머리 칠 것이다. 퇴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매일같이 험한 욕 해대는 극우 유튜버들의 악악 소리는 세상 모든 악성 중 분명 으뜸일 것이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책제시보다는 비방과 흑색선전부터 앞세운다. 사진 한국선거방송 TV 화면 갈무리


예전에는 ‘님’을 정인이나 군주를 칭할 때 쓰곤 하였다. 요즘은 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직책 뒤에 붙는다. 그러나 장(長)이 들어가는 직위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장관(長官)에 님을 붙이면 옥상옥 꼴이 된다. 그냥 “장관~” 하면 된다. 사장(社長)도 그리 해야 할 것인데, 실제로 사장을 “사장님~” 대신 “사장~” 하고 부르면 아직은 출세에 지장 생길 수도 있으니 삼가 주의해야 할 것이다. 님은 대통령님, 아버님, 어머님 등 인칭 대명사로 쓰나, 때로는 자연을 의인화하여 하느님, 해님, 달님, 비님 등과 같이 쓰기도 한다. 정삼품 종이품 이상의 당상관에게 붙이던 ‘영감(令監)’ 호칭은 오늘날에는 님이 붙느냐 아니냐로 듣는 사람 기분 확연히 달라진다. 초면인 노인에게 “영감님~”하면 들어서 기분 좋은 존칭이 되지만, “영감~”하고 부르면 억양에 따라 ‘쉬어 터진 노인네’의 뜻에까지 이를 수 있기에 그렇게 되면 듣는 노인 곧바로 눈에 흰자 드러내고 팔 걷어붙이고 다가든다. 예전에 장인 장모에게는 님을 붙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터인가 ‘장인님’ ‘장모님’이 만연으로 불리고 있다. 서툰 방송 작가들이 만든 조어(造語)로 방송 드라마에서 비롯되었다. 공자님과 예수님은 있어도 맹자님과 베드로님은 없다. 맹자, 베드로일 뿐이다. 교주에만 붙이는 것인지, 오랜 관습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어에서는 직위를 놓고 님을 붙이지 않는다. ‘선생님’도 “센세(선생)~”이요 ‘사장님’도 “사쵸(사장)~”다. 광복 직후 학생들이, “센세~ 센세~” 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여 교사들이 이것을 교정하느라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우리의 님을 일본에서는 ‘사마(様)’로 쓴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아직도 일본에서 욘사마로 불린다.   


된장. 사진 나무위키

   

된장 문화의 원류는 콩 심어 먹는 나라에서 찾으면 된다. 만주와 한반도 이북 지역이 지구상 콩 원산지라는 것을 백 년 전 미국 학자들의 조사로 판명되었으니만큼 그 나라는 곧 동이족의 나라다. 한국인은 7세기 말 신라 신문왕 때부터 된장을 먹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으로 알 수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문왕 친부 문무왕의 혼례 때 된장의 원재료인 시(豉. 메주)가 폐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콩을 오래 보관하려면 시로 쑤어 말려놓는 것이 가장 좋다. 3세기 서진(西晉)의 장화는 자신이 지은 『박물지(博物志)』에, “시는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다.”라고 적고 있고, 『삼국지(三國志)』는, “고려가 장양(贓釀)을 잘한다.”라고 하였으며, 『신당서(新唐書)』는, “발해 책성의 시가 유명하다.”라고 하였다. 중국식 된장으로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톈몐장(甜麵醬)이 있다. 소금 절인 콩에 전분을 섞어 발효시키기에 두장(豆醬)보다는 곡장(穀醬)으로 불러야 할 듯하다. 이것의 변형이 지금의 춘장이라 한다. 한반도 된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미소(味噌)’가 되었다. 오츠끼 후미히코의 『대언해(大言海)』에, “미장(味醬) 혹은 미증(味噌)은 한국어다. 『왜명초(倭名抄. 10세기 초 간행)』에 고려장(高麗醬)이라는 호칭이 보인다.”라는 내용이 있다. 왜란 후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江戶) 막부 시대에 ‘수전미증(手前味噌)’ 기록도 등장한다. 일본인은 멀리 보면 10세기 초부터 된장을 먹은 듯하다. 된장과 유사한 청국장 역시 시에서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청나라 사람들이 먹었다 하여 청국장이라고 불렀다는 기원설도 있는데, 고대부터 만주인들이 먹었던 것을 청 군사들이 먹는 것을 보고 편의상 청국장으로 불러 내린 것으로 보면 가할 듯하다.      


요즘은 낯선 젊은 여인을 부를 때 “여보세요~” 식으로 불러야 하나 예전에는 ‘아가씨’ 호칭을 좋아하였다. 아가씨는 조선 시대 어린 왕족을 칭하는 궁중어 ‘아지씨(阿只氏)’ ‘아기씨’를 기원으로 삼는다. ‘왕자 아기씨’, ‘공주 아기씨’라는 호칭은 점차 사대부 집안에 흘러 들어가면서 딸에게만 쓰이는 ‘아씨’가 되었다. 미혼 딸에게는 ‘작은’을 반드시 붙였다. 딸만 둘이면, ‘큰 작은 아씨’, ‘작은 작은 아씨’요, 셋이면, ‘큰 작은 아씨’, ‘둘째 작은 아씨’, ‘셋째 작은 아씨’ 식이다. 아씨에서 발전한 아가씨 호칭은 20세기 초반 무렵부터 ‘귀한 댁 규수’를 뜻하면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널리 쓰였으나, 1970년대부터 술집 작부나 매춘녀들 역시 아가씨 호칭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점차 빛을 잃었다. 이제는 올케가 손 아래 미혼 시누이에게 ‘아가씨’로 부르는 정도로 겨우 유지될 뿐이요, 어쩌다 낯선 여인에게 함부로 아가씨라고 불렀다가는 매서운 눈길만 돌아올 것이다.  


사대부가 형태로 지은 유일한 궁궐 전각인 연경당(창덕궁) 뒤뜰에 반빗간이 있다. 평면도 '한국건축사(주남철 저)' & 연경당 반빗간 '한국의 부엌(김광언 사진)'

    

예전의 큰 가옥에는 안채 뒤뜰 쪽에 반드시 ‘반빗간’이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었다. 궁중으로 치면 수라간 격일 주방 공간이다. 조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식자재나 연탄, 절구, 떡메, 각종 채 등 조리 기구들을 보관하는 광도 두었다. 근처에는 우물이나 수도, 장독대가 있었으며 안방에서는 직통으로 보이도록 했다. 안방마님이 쪽문 열고 반빗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지시하기 편하게 한 것이다. 반빗간에는 방도 여러 개 두어서 갖가지 반찬들을 보관하였다. 반빗간 앞마당에서는 고추나 무말랭이, 호박, 굴비 등을 말리고 떡을 찧고 메주를 쑤었다. 궁중 요리사가 ‘숙수(熟手)’였다면 반빗간 요리사는 ‘반빗아치(반비다치)’였다. 요즘은 요리사를 쉐프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리말로 주방장이라고도 하나, ‘반비다치’ 명칭을 새롭게 조명하였으면 한다. 반비다치는 일반 요리사들의 통칭이었지만 주방장 호칭으로 삼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한국프로야구의 가을 시즌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팀간 순위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 KBO홈페이지


가을이 되매 프로야구도 열기를 더해간다. 미국의 ‘베이스 볼(壘球)’은 1892년 일본으로 건너가 ‘야구(野球)’가 되었다. 20세기 초 무렵의 포지션별 명칭을 보면 이렇다. 투수, 취수(取手. 훗날의 포수), 유격수, 제1루, 제2루, 제3루, 유격수, 좌익, 중견, 우익. 이것이 1920년 무렵 한반도에도 전수되었다. 야구 용어의 영어는 우리말로 바꿔쓰기도 하였는데 재미있는 번역도 가동되었다. ‘번트’는 ‘코 대기’, ‘태그 아웃’은 ‘찍다’, 야수가 흐르는 공을 잡지 못하고 가랑이 사이로 흘리는 ‘터널’은 ‘알 깠다’ 등이 있었다. 볼만 던지는 투수를 ‘피처 베이비’라 놀렸다면 방망이는 휘두르지 않고 그저 볼넷 얻어 나가기만 기다리는 타자는 ‘장승 타자’로 야유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일제가 영어 용어를 금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스트라이크는 ‘직구’, 볼은 ‘안돼’, 아웃은 ‘물러 섯’, 스틸은 ‘탈환’, 선수는 ‘전사’로 불렀다. 그러나 ‘직구’만큼은 문제가 있었다. 커브 볼과 같이 직구 아닌 것을 던져 스트라이크로 만들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이렇게 고쳤다. 원 스트라이크는 ‘좋다 한 개’, 투 스트라이크는 ‘좋다 두 개’. 좋다 세 개면? “물러 섯!”.      


추석도 지났겠다, 더위 스러지고 이제 선선한 바람을 자주 만나는 반가운 계절이 찾아들고 있다. 이 좋은 때, 우리네 옛 풍속을 오늘의 시점으로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여 몇 가지 추려보았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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