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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18.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4)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1일 모트릴~프리질리아나~네르하~모트릴     


돌아올 곳을 두고 떠나는 자는 여행자(Traveller).

정처 없이 떠도는 자는 나그네(Drifter).

무슨 여행자요 나그네요 구분할 필요 있겠나? 어차피 우리네에게 돌아올 곳 어드메 있을라구.

그저

너나 나나

나그네이지.     

오늘도 나그네

신발 끈 매며

먼 데 바라보나니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

상념을 쪼아대누나.

(路人憂定處 一鳥琢寸念)  

   

아침이 되자 나그네는 다시 행장 꾸려 시외버스 터미널 가서 모트릴(Motril)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지중해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 사실 모트릴은 관광지 성격의 도시는 아닙니다.

원래 이곳에서 페리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로 들어가려 했던 것인데, 페리 예약을 여유 있게 미룬 채 먼저 모트릴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출국 직전 즈음해서야 모트릴에서 출발, 알 호세이마(Al Hoceima, 모로코 동북쪽 지중해변에 위치한 스페인 땅)에 도착하는 페리를 예약하려고 해당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매진입니다.

원하는 일정에 맞는 페리는 말라가(Malaga)~멜리야(Melilla, 역시 모로코 동북쪽 지중해변에 위치한 스페인 땅) 노선밖에 없습니다. 별 수 있나요? 그것이라도 끊어야죠. 밤 12시에 출발해서 아침 8시에 도착하는 시간입니다. 대신 하루 숙박비 세이브. 어찌 생각하면 잘 되었다 싶습니다. 모트릴에서의 이틀 일정 중 하루는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마을을 찾아가 즐기는 것으로 정신을 추스르기로 합니다. 나머지 하루는 그저 숙소에서 푸욱 쉬면서 진기 잃었던 몸, 운기 조식 좀 해 주고 말이죠.        

아침 11시 즈음 모트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네르하(Nerja)행 버스표를 미리 끊었습니다. 출발 시간은 오후 2시 10분. 버스표도 손에 넣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갑니다. 숙소는 우리나라 모텔 급의 작은 호텔로 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예약한 곳입니다. 걸어서 2분 거리. 체크인 하고 나서 곧바로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섭니다. 호텔 매니저가 이 시간에 문 여는 식당은 찾기 힘들 텐데, 걱정해 왔지만 그래도 차 시간 많이 남아 있겠다, 한 번 돌아보기로 합니다.


모트릴은 아주 작은 해안 마을입니다. 호텔이 위치한 곳은 외곽에 해당되고요. 10분 정도 걷다 보니 나름 도시 태를 띤 거리들이 나타납니다. 호텔 매니저 말마따나 영업 중인 카페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헤매다가 아, 그렇지! 퍼뜩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아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본 실내 카페테리아. 영업하고 있는 것, 분명 봤습니다. 곧바로 호텔로 돌아가 방에서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버스 출발 한 시간 전 즈음 시외버스 터미널 카페테리아에 들러 커피와 샌드위치로 요기 해결. 이제 버스는 오늘의 목적지, 네르하를 향해 달립니다.    

타고 가는 이 버스는 중간 중간 경유지를 들르는 식으로 운행합니다. 그래서 내가 내릴 곳을 혹시나 지나치지 않는지 신경 바짝 써야 합니다. 그런 긴장을 하면서도 내내 해변도로에서 가까이 혹은 멀리 보이는, 한낮의 태양빛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중해와 예쁜 해변 마을 풍경에 넋을 놓습니다.


여정은 네르하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프리질리아나(Frigiliana)를 방문하는 것으로 순서를 잡았습니다. 프리질리아나는 내륙 쪽으로 5km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인지라 그곳을 먼저 맛보고 나서 다시 네르하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야 저녁 식사 후 곧바로 네르하에서 버스 타고 모트릴로 돌아가기 편합니다.

자, 우선 네르하에 도착, 버스 하차해서 다른 버스 잡아타고 프리질리아나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도착한 프리질리아나는 지중해를 멀리 바라다보는 정말 보기 드문 예쁜 언덕마을입니다. 어제까지 머물던 그라나다의 사크로몬테 지구보다 훨씬 더 예쁜, 그래서 안달루시아의 산토리니(Santorini Island)로 불리는 위상을 자랑합니다. 이곳은 원래 이사벨라 여왕이 이 악물고 벌인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 수복 운동) 당시 무어인들이 최후까지 이 악물고 숨어서 버티던 곳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어째 마을이 조용합니다. 원래가 조용한 마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일요일 되면 약국 빼고 웬만한 가게는 거의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관광객들도 일요일 코스를 피하고 평일 코스를 뜁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노천카페에 모여 앉아 먹고 마시고를 즐기는 풍경을 여기저기 풀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 것은 아녀 보입니다. 북적거리거나 소음이 나는 등의 불편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유명 관광지는 새벽같이 달려가 만나고 뒤이어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에 빠지곤 하던 나로서는 낮 시간에 찾아온 이곳, 혹시 관광객들에게 치이나 싶었는데 다행히 너무도 조용합니다(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ㅎ). 덕분에 조용한 마을을 조용하게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렁설렁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에 어느 카페든 들러서 맥주로 갈증 달래 가며 아랫마을 풍경 좀 즐길까나 하는 차에 마침 전망 좋겠다 싶은 작은 카페가 눈에 띕니다. 카페는 기념품도 파는 그런 곳으로 딱 보니 쥔 되는 게을러터진 젊은 처자가 이제야 문을 연 듯해 보입니다. 캔 맥주 하나 달라 했더니 처자는 내가 문 열고 첫손님이었는지라 아주 상냥하게 반겨 줍니다.

이마에 맺힌 땀 식히며 카페 창 너머 보이는 아랫마을 풍경을 감상합니다. 이런 곳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마을 돌아보는 내내 골백번도 더 한 것 같습니다. 한 20분 정도 쉰 후 다시 아랫마을 구경하러 가자고 일어섭니다.

쥔 처자에게 맥주 값을 치르는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어디서 왔느냐, 혼자 관광 왔느냐, 요리조리 애교 떨어가면서 자꾸 말을 걸어옵니다. ······어딜 가도 식지 않는 이놈의 인기, 서유럽 일대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프리질리아나 마을을 떠나 지중해를 머금고 있는 마을,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로 내려왔습니다. 사실 이곳 네르하에는 대단한 유적이 있습니다. 마을 중심에서 약 3km 동쪽에 위치한 푼다시온 쿠에바 데 네르하(Fundación Cueva de Nerja)라는 5백만 년 묵은 동굴이 있고, 또 그곳에는 BC 2만 5천 년경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유골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입장 시간이 오후 5시 30분까지만 가능하기에 이미 늦은 시간, 다른 것은 몰라도 벽화는 보고 싶었으나 결국 포기해야 합니다. 동굴 따위야 가 봤자 남는 것은 남들 다 찍어서 돌리는 사진만 몇 장 남는 것이고요. 깔끔 생략.

깨끗한 상가 거리를 걸어 해변으로 향합니다. 지중해는 어떤 꿈을 꿀까요? 지난여름 즈음 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와 봤더니 녀석은 말이 없습니다. 눈 감은 채 그저 바다냄새 묻힌 바람만 보내줄 뿐입니다.


해가 지면서부터 지중해는 이제 묵직한 목소리로 물결을 일굽니다. 그 소리에 취해 하염없이 바닷가를 거닐다가 네르하의 해물 요리를 기대하며 바닷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어느 레스토랑 노천 자리에 앉았습니다. 핑크 피쉬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13유로.      

지중해 맛을 음미하며 바라보는 바다. 조용히 다가와 부드럽게 부서지고, 물러갔다가 다시 또 다가오는 파도. 파도는 무엇인가를 생각 중인 모양입니다.

  

밤 시간 버스 타고 모트릴로 돌아오는 길에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버스 간에서 잠깐 졸았나 봅니다. 버스가 어딘가에 정차하기에 부스스 눈을 뜨고 바깥을 내다보니 낮에 본 모트릴 시외버스 터미널 모습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가 보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눈 감은 채 오늘 여정의 뒷맛을 열심히 여물질. 그리고 한 20분 정도 후, 아차! 싶습니다. 얼른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까 그곳이 모트릴 시외버스 터미널이었습니다. 식은땀 납니다. 버스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다음 정차하는 곳에서 모트릴로 돌아오는 버스 편이 있냐고. 기사 영감, “없는데?” 해 옵니다. 헐~ 심각한 일이 터졌습니다.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신나게 한참을 달립니다. 나는 숨을 조절합니다. 호랑이 입에 들어가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황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행 중에는 이렇게 생각지 못한 일을 왕왕 겪게 됩니다. 그럴 때는 일단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윽고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고, 나는 어두운 암흑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늦은 밤, 10시. 이곳은 카스델 드 페로(Castell de Ferro)라는 해변 마을입니다. 주위는 아무도 없이 고요합니다. 버스도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불 꺼진 주유소 하나 딸랑 있고 정류장 대합실 문은 굳게만 닫혀 있습니다. 어둠 속 멀리 집들이 띄엄띄엄 보이고 층 낮은 아파트 두어 채가 보이기는 하지만 근처에 호텔은 일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이곳에서의 숙박은 불가. 구글 맵으로 따져 보니 여기서 모트릴까지 걸어가려면 족히 25km. 밤 새워 걸어야 합니다. 최선책이 사라지고 차선책인 이곳에서의 임시 숙박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차악책이라도 꺼내야 합니다. 자, 다시 한 번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핸드폰으로는 우버 택시를 두들깁니다. 불행하게도 택시는 하나도 뜨지 않습니다. 여기는 우버 택시가 다니지 않는 듯합니다. 차악책도 무색해졌습니다. 그렇게 낙심천만, 망연해하는 중에 바다 쪽 멀리 엉성한 콘크리트 가건물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입니다. 잰 걸음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자 노인네 두 분이 안쪽에 앉아 있더군요. 내부를 둘러보니 이 건물은 보트를 관리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보트를 챙기려고 이 늦은 시간에 와서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 사정을 다급이 얘기해 줍니다. 하지만 두 노인네 모두 영어가 소통되지 않습니다. 이제 손짓 몸짓 해 가며 외쳐야 합니다.

“택시! 모트릴! 캔 유 콜 어 택시 포 미?!”

몇 번 반복하자 그제야 한 분이 알아듣고는 기다리라며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다 전화 겁니다. 이어서 뭐라 뭐라 떠들며 통화를 하고 나더니 더듬더듬, 여기서 기다리면 택시가 온다, 를 친절한 표정으로 알려줍니다. 그리고 “럭키~! 럭키~!”라는 말을 연신 외치는 게, 아마 이 시간에 콜택시 운영은 하지 않는데, 하지만 자기가 그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다~ 뭐 그런 뜻인 듯합니다. 어쨌거나, 아이고 스페인 신이시여~! 이제 좀 한숨 돌립니다. “아그라데씨도(고맙습니다)!”를 연신 들려 주고 나서 바깥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한 5분 지나자 드디어 택시가 나타납니다. 택시를 타고는 모트릴까지 요금은 어떻게 되느냐 물었더니 요금기로 돈을 받는데 대략 70유로는 나올 것이다, 그럽니다. 돈 10만 원 훌떡 날아갑니다. ㅠㅠ

어쩔 수 없죠. 앞으로 70유로 아끼면 됩니다. 에라, 렛스 고다!······. 그렇게 30분 정도 달려서 호텔로 무사히 돌아왔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돈 아깝다는 생각 자꾸 할 필요 없습니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으로 빨리 꿀꿀해진 마음을 원상회복시켜야 합니다.

호텔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프런트에 앉아 있던 호텔 매니저가 눈 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봅니다.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오나 하는 눈길입니다. 이 근처에는 이 시간까지 놀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기색 않고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곧 팬티와 양말, 운동화 깔창을 비누로 씻어서 바람 통하는 곳에 널어 두고 샤워를 합니다.      

아~ 오늘 참 징한 날이었습니다. 오후의 행복은 야밤의 황당 사건으로 이어졌고 그 억지스러운 곳에서 억지스럽게 택시를 잡아타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본의 아니게 떨어진 퀘렌시아에서 잘도 생환해 나왔다는 것은 어떤 궁한 상황에 처해져도 헤쳐 나갈 길, 분명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살면서 무슨 일 생길 때마다 당황해서 졸아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새겨 넣습니다.    

잠자기 전 그라나다에서 마시다 남은 와인과 초콜릿(이놈은 열흘 정도 후까지 몇 조각 남았을 만큼 큰 사이즈였음)으로 꺼진 배를 달랬습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와인에 취해서인지, 왠지 모를 웃음이 흐릅니다. 허허······.     


#어려움 닥쳐와도 숨 고르며 정신 차리면 길은 반드시 나타난다


  

12월 2일 모트릴~말라가     


여정 중 일주일 정도 단위로 끊어서 하루씩 쉬어 주어야 운기 조식이 됩니다. 그날이 오늘. 늦은 시간에 일어나 샤워하고 나서 물 한 병 꿰찬 채 호텔을 벗어나 어제 봐 두었던 근처 공원을 설렁설렁 찾아갑니다. 심신 이완 좀 해야겠습니다. 관광이라는 것은 원래 치열하죠. 시간에 쫓겨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광이 아닌 여행에 나선 나그네의 발길은 이렇게 느긋한 맛이 있습니다.  

나그네. 나는 누구 못지않게 이 명칭을 참 좋아합니다. 두보(杜甫)와 김삿갓다운 낭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낭만 좋아하는 김에 옛 시인들 흉내 좀 내 보겠다고 가끔은 되지도 않는 한시를 짓곤 합죠. 한적한 공원 벤치에 남녀 한 쌍이 앉아 눈을 감은 채 접문행위(接吻行爲, 서로의 입을 적당히 포개고 나서 설왕설래하는 남녀상열지사)로 세상사를 잊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생각 들면서 옛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황조가(黃鳥歌)입니다.     

翩翩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한 쌍 族族抱抱

念我之獨(념아지독)  외로운 이 내 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族族抱抱


知氣迷······.     

   

공원을 벗어나 더 한적하고 더 외곽다운 곳으로 길을 내어 발걸음을 따라 걷습니다. 불어오는 완연한 가을바람은 내 머리카락과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멀리 보이는 큰 야자나무들 행렬과 뭉게구름 품은 쪽빛 하늘은 내 마음을 호젓하게 만들어 줍니다. 치열한 쫓김에서 벗어나 있는 이 시간. 여행 떠난 지 일주일 지난 지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오후 2시 넘어서 즈음 상가 거리 쪽으로 돌아와 어느 카페에 들러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 요기를 때웁니다. 그리고는 다시 설렁설렁 상가를 걸어 다닙니다. 괜찮은 모자 하나 눈에 띄면 살까 싶습니다. 한 시간 넘도록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모자는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자, 이제 호텔로 돌아가 그동안 찍은 사진들, 날짜별로 정리도 하고 페이스북도 점검하면서 뒹굴뒹굴 쉴 시간. 그렇게 쉬다가 저녁이 되었고, 이제 저녁 버스 잡아타고 말라가(Malaga)로 이동합니다. 해변을 따라 난 도로이다 보니 버스는 어제 왔던 네르하를 거쳐 계속 달려갑니다.       

    

밤 10시 말라가 도착. 이곳에서 밤 11시 55분발 페리를 타고 아프리카 땅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벗어나 일단 페리 터미널을 찾아가야 하거늘, 가는 길이 어딘지 물을 때마다 이놈은 이 얘기에 저놈은 저 얘기인지라(사실 스페인 사람들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음) 환장하겠습니다.

별 수 없이 택시 타고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주변을 둘러봅니다만 택시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택시를 잡지 못하면 페리 터미널 가는 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15kg짜리 배낭 맨 채 달릴 수도 없습니다. 어제 밤에 이어서 다시 한 번 큰일 나게 생겼습니다!

그러자 생각 하나 퍼뜩 떠오릅니다. 그렇지~! 어제 밤에도 전화로 택시 불러서 모트릴로 무사히 돌아갔잖느냐? 이 늦은 시간에도 문을 여는 어떤 가게든 들어가서 전화로 택시 좀 불러 달라고 하자······. 그렇게 한 10분 동안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도로 변 한쪽에서 불이 켜져 있는 간판을 보게 됩니다. 중식당 간판.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봤더니, 아직도 장사 중입니다! 여기서 나 살 길 생기겠다, 직감 와락 듭니다. ^^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한 테이블에 남녀 커플 손님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나를 맞이하는 라오빤(老板, 사장) 아주머니, 지금 시간에도 식사가 가능한 듯 자리에 앉으시라, 합니다. 어차피 저녁 요기 건너 뛴 상태인고로 나도 뭐든 먹어야 할 참이었습니다. 잠시 후 메뉴를 들고 온 라오빤에게 비록 더듬거리는 수준이지만 중국사람 만났다고 중국말로 물어봅니다.  

“식사 후 페리를 타러 가야 합니다. 여기서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는지요?”

그랬더니 흔쾌하게, “하오(好)!” 답을 줍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요리를 주문했고 잠시 후 계란탕과 볶음밥이 테이블에 놓였습니다.

계란탕. 아~ 뜨끈한 국물아, 너 나 본지 오래 됐쟈?! 그라나다에서의 허망한 우동 사건이 눈앞을 스칩니다. 음식을 두고 고맙다는 생각이 뜨겁게 치솟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스페인 인간들 때문에 개고생해 왔던 것을 생각하자니, 이렇게 중국어로 쉽게 통할 수 있는 라오빤 아주머니가 너무도 고맙게 느껴집니다!     

#나그네에게는 때로 헤매는 길도 나그네 길이다


홀로 여행한다는 것. 늘 심장 쫄깃합니다. 이런 소통난제 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고비되는 일 걸핏하면 생깁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벌써 수차례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스릴을 은근히 즐긴다 싶습니다. 도전이다 여기는 것이죠. 뭐, 여행의 맛은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편한 마음으로 밥 잘 먹고 난 후 전화로 택시를 불러 준 라오빤에게, “씨에씨에(辭辭)~” 인사 건네주고 레스토랑을 나서니, 콜택시가 곧바로 나타납니다. 그렇게도 꽁꽁 숨어 있던 놈들이었건만, 전화 한 통화에 한 놈이 낼름 모습을 보입니다요. 페리 터미널 지도를 보여 주자 기사는 냅다 달려 줍니다.

시간은 벌써 이미 11시를 넘었기에 도착과 함께 곧바로 보딩 들어갑니다. 그렇게 무사히 배를 탔고 이내 몸은 이베리아 땅을 잠시 떠납니다. 배는 어두운 지중해를 건너 내일 아침 8시 즈음에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땅 멜리야(Melilla)에 도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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