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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0.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7)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5일 페스~메르주가     

부스스 눈을 뜨니 아직 바깥은 어둡고 핸드폰은 아침 6시 15분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나 하는 중에 마침 버스가 칙칙 소리를 내면서 정차합니다. 

“메주르가!” 기사의 외침에, 오냐 그래 내려야겠다, 몸을 일으키자니 차문이 열리면서 싸한 새벽 공기가 들어오면서 누군가의 터번 머리통이 따라 들어옵니다. 

“쫑 초이?~” 머리통이 나를 부릅니다. 인석아, 발음 제대로 하거라. 정이다, 정. 쫑이라니? 내가 무슨 메리 메리 쫑이냐!

숙소에서 픽업하러 온 젊은 친구 이스마엘(Ismael)은 내 배낭을 챙겨서 자기가 몰고 온 SUV 짐칸에 실어 주는 등 서비스가 각별합니다.


이스마엘 차로 한 20분을 더 달려야 최종 목적지인 숙소에 도달합니다. 숙소로 가는 도중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메리 메리 쫑, 아니 개 몇 마리가 달리는 차를 지칠 때까지 쫓아오며 짖어 댑니다. 그 소리는 허망하게 황량한 사막으로 퍼지다가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사막. 그렇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나는 사막여정을 겪어 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엊그제부터 비 오지 말라고 내내 빌었던 것이고요. 사하라(Sahara) 초입 즈음에 있는 사막 투어 베이스캠프, 사막낙타 리아드(Riad Desert Camel)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명색이 호텔이지 이것은 단층짜리 흙집입니다. 진정 사막답다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스마엘 이 친구, 인상은 제법 사나운데 예의는 엄청 바르더군요. 역시 모로코 사람들은 착함 그 자체이련가 싶습니다.

이곳에서 두어 시간 쉬고 난 다음 본격적인 사막 투어를 즐길 예정. 호텔 같지 않은 호텔 방에 들어가 보니 어디서 온 친구들인지 몇 명이 담요를 뒤집어쓴 채 여기저기 드러누워 자고 있더군요. 나도 담요 하나를 받았는데 먼지가 폴폴 납니다. 사막이니까요. 밤새 자고 온 놈이 잠 올리는 만무하고 그저 마을 주변이나 둘러봅니다. 이미 날은 밝아졌고 주변 지형이 선연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구경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간단한 아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놈의 빵, 스페인에서부터 참 지겹게 먹어 대고 있습니다. 자고 있던 사람들도 아침 밥 드셔들~ 하는 소리에 부석부석 일어나 식탁 테이블로 모여듭니다. 너 어디서 왔냐, 나는 어디서 왔다, 홍콩에서 온 학생들, 러시아에서 온 중년 사내들, 오스트리아에서 온 커플 등등과 함께 띄엄띄엄 수인사 트면서 념념 찹찹 해댑니다. 

사하라가 곧 사막이라는 뜻이기에 ‘사하라 사막’ 하면 ‘사막 사막’이 됩니다. 그러니 그저 사하라, 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런 사하라가 펼쳐진 풍경을 멀찍이 감상하면서 아침 끼니를 해결하는 이 시간, 참 특별하다 싶습니다.

그렇게 아침 시간을 때운 후 팀을 꾸려서 일단 4시간짜리 지프 투어부터 시작합니다. 이 투어는 지프(실제는 SUV)로 빨리 이동할 수 있기에 들르는 곳들이 제법 많습니다. 코스를 보면, 오아시스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Canal of Water)~오아시스 쉐리즈 호수(lac Sehrij)~모로코 전통 공연단을 만나는 그나와 캄리아 마을(Village Gnaoua Khamlia)~파노라믹 사막 뷰를 즐기는 곳~화석 마을(Fossils Place)~검은 사하라(Black Sahara)~버려진 마을 미피스(Mifis Place)~노마드 가족을 만나는 곳(Nomadic Family)~숙소로 귀환, 이렇게 됩니다.        

사막은······, 아름다웠습니다. 가슴이 적셔졌습니다. 맑은 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 호수같이 커다란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손으로 떠 마시려는 것을 이스마엘이 말립니다. 요즘은 사람 몸에 위험할 정도로 세균이 많다고 합니다. 아쉬웠지만 내 옛 친구 사막여우를 만나서는 기분이 한결 풀어졌습니다. 

여행 계획 짤 때 기대해 보았던 베르베르족 전통 가무악 아히두스(Ahidus)도 만났습니다. 노래도 춤사위도 참 좋았습니다. 언제인가 한국에 초청해서 멋진 공연으로 올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검은 사하라에서는 돌무더기를 만나 돌 한 조각 올려놓았습니다. 소원 하나, 빌었습니다. 버려진 마을의 빈 흙집들을 만났을 때는 세월의 매정함에 가슴 눅눅해졌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목숨으로 지키던 허물어진 기지를 만났습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영화 「라스트 블루맨」이 떠오릅니다. 외인부대의 냉철한 지휘관 진 핵크만, 사막에 묻혀 있는 유물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막스 폰 시도우,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가슴의 여인 카트린느 드뇌브, 여러 부족을 통합해서 모로코 자존을 외치며 외인부대를 공격하는 사막부대장 이안 홀름. 그리고 카트린느 드뇌브를 떠나보내며 라스트 블루맨으로 남아 사막을 지키는 테렌스 힐. 어쩌면 허물어진 이 외인부대 기지가 그런 애틋한 스토리를 우리에게 전해준 것 아닐까 해서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깨끗한 처녀성 같은 사막을 만났을 때는 그 아름답고 순수함에 함부로 걸음 내딛기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사막 우물을 만나 시원한 지하수로 목을 축였을 때는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습니다. 황량한 사막벌판에 생명을 드리우는 우물. 오아시스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우물은 인간이 손수 파내어 만듭니다. 그 깊은 땅 속 심연에 숨어 있는 물줄기를 찾아내는 인간의 지혜란! 생존을 위해 우물을 파내는 인간의 본능이란!

사막을 떠돌며 사는 노마드들을 만났을 때는 몇 가지 단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습니다. 일체의 관념과 정해진 틀을 벗어던지고 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을 대개 노마드 정신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극히 일부의, 상징적 묘사일 뿐입니다. 노마드 정신. 그것은 결코 유랑만을 두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유목민은 불,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품목을 고안했다. 반면 정착민이 발명한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 뿐이었다.’는 자크 아탈리의 유명한 정의를 비롯해서 인류학자들은 동서고금 온 세상 문화와 문명은 바로 노마드 정신에 기인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몽골족, 투르크족, 아랍족, 유대족, 바이킹족. 이 대표적 노마드들은 집단을 이루어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가는 곳마다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문화와 문명이 생겨나고 발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도시의 문화와 문명이 향락 사치로 퇴폐되면 노마드들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찾아간 곳에서 또 도시를 개척해서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또 문화와 문명이 생겨나고 발전했습니다. 노마드들의 그런 족적이 바로 오늘 날의 모든 문화와 문명의 뼈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작금에 와서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있죠? 과거 2G였던 핸드폰이 이제는 5G로 발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마드 정신 구현의 일종인 것입니다. 또 호모 노마드(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창조인의 전형으로 21세기를 열어갈 새로운 인간형)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노마드 정신의 중요성이 21세기 들어서 새삼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막의 노마드들에게서는 그런 개척정신, 창조정신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집단도 이루지 못한 채 한 두 가족 무리 정도로 그저 정처 없이 사막을 떠도는, 문화문명 구축과는 결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제는 말 그대로 유랑인만으로서의 쓸쓸한 존재로 가여운 관광 상품 취급이나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끝내 박제가 되어 갈 것입니다. 현대판 노마드들의 딱한 실체에 마음 한 쪽이 아련해집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딴에는 노마드처럼 치열하게 살아 보겠다고 자처했건만 지금까지의 내 실체 또한 저들마냥 그저 쓸쓸하게 유랑만 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어금니 꽉 물립니다.  

착잡한 심정 달래 가면서 그들이 쳐놓은 천막을 돌아보는 중에 무엇인가 앙증맞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허접해 보이지만 분명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휴대용 태양광 발전기. 또 발전기 밑으로는 핸드폰 충전케이블과 한두 개의 전기선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이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유랑자 신세로 살고 있는 이들일지언정 이들에게도 적응력이라는 것이 노마드의 DNA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사실 적응력은 노마드 정신에 있어서 필수 요소가 됩니다. 적응력이 바로 창의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옛 노마드들은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현지 상황에 적합한 생존 코드부터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적응력입니다. 그렇게 적응한 후 이제 창의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창의가 바로 그 지역 문화문명에의 출발점이 되었고 말이죠. 적응력은 곧 경쟁력이요 전략이 됩니다. 인간 주류 사회를 벗어나 떠돌이로 살면서도 휴대용 태양광 발전기로 전력을 확보한다는 것. 창의 정신까지는 기대하기 힘들어도 눈물겨운 그들만의 적응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마드와의 만남으로 나는 두 개의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정한 노마드 정신의 끝자락도 좇은 적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그 하나. 어디에 묶이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유랑자처럼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왔으니 형태는 노마드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남들에게 뒤쳐진 고단한 인생인지라 노마드 정신의 치열함을 입에 담는다는 것, 분명 언감생심입니다. 곱씹자니 씁쓸합니다만 그렇다고 한숨만 내쉴 것 아닙니다. 까짓 것, 이제부터라도 좀 치열해야겠습니다. 

생각 그 둘, 생존 전략으로서의 끈끈한 적응력이 내게는 부족했다는 것. 이제라도 새로운 길 걷기에 대한 적극적 적응력 갖추기와 창의적 감각 연마에 더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져 봅니다. 

노마드와의 만남으로 그렇게 내적 환기를 해 본 것, 참 좋았습니다. 호흡이 길어진다는 느낌 듭니다.      

사막에서의 여러 만남 중에서도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만남은 따로 있었습니다.    

‘얄라(Yalla)’ 

북아프리카의 노마드 베르베르족들이 쓰는 말입니다. 이스마엘이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외치던 말이 있었는데 바로 ‘얄라!’였습니다. 얄라는 ‘가자(Let’s go)’입니다. 이스마엘로부터 그 뜻을 들어 알게 된 후, 뿌옇던 어떤 것이 내 눈앞에서 단박에 사라지고 세상 달리 보이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습니다. 

‘얄라라!······.’ 갑자기 나도 모르게 크게 외쳐 보았습니다. 

“얄라!” 

황량한 사막 가운데에서 이 얄라를 외쳐 보는 것. 이 외침에 내 마음은 사뭇 뭉클해집니다.    

열심히 차 운전하던 이스마엘이 잘 가고 있고만, 뭔 또 얄라여? 하는 눈길로 조수석의 나를 돌아보더니 웃음 머금은 채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있는 내 표정을 보고는 저도 곧 씩 웃으면서, “얄라!” 외쳐 줍니다. 

이스마엘과 나의 기분 좋은 얄라 외침은 몇 번 더 반복되었습니다. 

이 여행을 촉발시켰던 것이 바로 황량하기만 했다 싶은 내 그동안의 삶과 앞으로도 여전히 황량하게 될 것이 뻔하다 싶은 자괴감이었습니다만, 이제 나는 이 소중한 말을 이 사하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내 인생. 그래, 얄라다. 그저 가 보는 것이야! 

내일,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어떻게 나를 맞이할지는 모르는 일. 내일이라고 해서 오늘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변화야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탄력에서 벗어날 확률, 낮습니다. 그저 가 보는 것입니다. 가 보면 알게 됩니다. 미리 겁먹고 걱정할 일 절대 아닙니다. 노마드 정신 좀 장착하고 씩씩하게 거침없이 가는 것입니다. 내 인생 치열하게, 내일도 거침없이 얄라~! 

노마드 정신을 일깨워 주고 얄라를 선물해 준 사하라. 그 고마움에 기분 좋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프 투어 후 이제 낙타 투어에 들어갑니다. 내 물건들이 들어 있는 큰 배낭은 호텔에 맡기고 페스 까르푸에서 사 두었던 것들을 꺼냅니다. 작은 배낭과 캔 맥주, 플래시, 생수, 간식. 그리고 가지고 다니는 세면도구와 속옷, 양말 등등도 챙겨서 전부 작은 배낭에 쓸어 담아 등에 매고 나섭니다. 

지금부터 낙타를 타고 사막에 마련되어 있는 캠프로 향하는 것입니다.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스마엘은, “캠프에서 봐유~”라는 말을 남기고는 차를 타고 먼저 캠프로 출발합니다.

개를 데리고 나타난 길라잡이 한 명이 나를 맨 앞 낙타에 태운 채 낙타 여섯 마리 캐러밴 행렬을 출발시킵니다. 꼴랑 나 혼자 가는 길인데 어째 빈 낙타 다섯 마리가 뒤에 달라붙어 가노?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집니다.

낙타 등엔 특별한 안장은 없고 그저 담요 한 장만 걸쳐 있습니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요놈 등짝에 튀어나온 육봉(Hump)에 얹힌 채 앞뒤로 꺼떡꺼떡 흔들리는고로 사타구니 아래쪽이 무척 고역입니다.

30분 정도 가니 이제 완연한 사막입니다. 주변은 온통 노랗습니다. 아까 보았던 검은 사하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망망대사(茫茫大沙), 어딜 돌아보아도 사막 구릉뿐입니다. 구름이 어두운 색을 띠기 시작하자 사막도 구름 빛에 물듭니다.

한 시간 정도를 그렇게 가고 있자니 뒤에서 SUV 한 대가 달려와 캐러밴 옆에 정차합니다. 곧 그 안에서 검은 베르베르족 의상을 걸쳐 입고 머리에 터번까지 두른 사내 셋과 여자 두 명이 꼬물꼬물 삐져나옵니다. 지프 투어가 늦어져서 이제야 뒤늦게 쫓아와가지고 낙타 투어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아하~ 내 뒤 낙타 다섯 마리는 이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구나. 

나에게 헬로우니 하이니 하면서 인사해 오는 것이, 옷차림은 베르베르족이지만 생긴 것을 보면 어린 여인 한 명만 생김새가 달라 보이고 나머지는 분명히 백인 친구들입니다.

어쨌거나 어서 오너라, 니들은 내 뒤에 타고 앞장은 내가 서련다. 이 시컴둥이 녀석들을 이끌며 다시 또 뒤뚱뒤뚱 흔들리며 나아갑니다.

터번. 이슬람계와 인도 남자 사람들 머리에는 이것이 쓰여 있습니다. 왜 기다란 천을 머리에 둘둘 말아 쓸까요? 신에게 절할 때 모자를 써야 하는데 모자에 챙이 있으면 우아한 절 자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챙이 있는 모자 대신 천으로 머리통을 둘둘 말아 쓰고서 머리를 바닥에 바짝 대 가며 신에게 절을 올리는 것입니다.


사막 캠프에 도착하니 이스마엘이 묻습니다.

“아이구~ 오느라고 고생 많았쥬?”

껄껄껄, 인자하게 웃고 나서 대답 줍니다.

“내 두 쪽 불알 다 터져나갔다, 쨔샤~”

이스마엘은 낄낄대고 동행했던 사내놈들, 저네들 것 잘 있나 확인 들어갑니다. 여인네 둘은 서로 어깨를 쳐 대며 깔깔 대고.

사막 투어에 행운이 따릅니다. 알고 봤더니 나와 캐러번을 같이 했던 친구들 중 사내 셋 모두 대단한 뮤지션이었습니다. 탈라로브스키(Talarowski), 마크(Mark), 파스칼(Pascal). 셋은 캐나다에서 왔다는데 온 세상 돌아다니면서 버스킹하는 친구들이랍니다. 사막에는 잠시 쉬러 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처음 봤을 때 외양이 조금 달라 보인다 싶었던 처녀 리나(Angelina)는 미국 유학 중에 잠시 귀국한 모로코 여인. 또 다른 처녀는 나디아(Nadia)라고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합니다. 

요 다섯 인간이 이날 밤 캠프파이어를 아주 그냥 맛깔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크와 파스칼, 탈라는 아주 묘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네 줄짜리 브라질 기타 까바낑유(Cavaquinho) 비슷한 작은 기타를 치고 잼베 형태의 북을 두드립니다. 아무래도 남미 원주민 음악 쪽 아닌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아마존 토속 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저네들이 만든 음악이라는군요. 아, 이 친구들이 사막을 찾은 이유가 있구나. 음악적으로 어떤 영감을 얻고 싶었던 게지.

각 나라 민족의 전통음악, 즉 월드 뮤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신나기만 합니다. 팀을 이끄는 마크에게 내 명함을 주고는, “내가 말이다, 실은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 언제고 한국 오면 꼭 연락해라. 너희들과 재미진 일 좀 하고 싶으니까.” 했더니, “알았어요~” 착한 눈매로 대답합니다.

리나도 만만찮은 기타 연주솜씨를 자랑합니다. 나디아는 음악이 흐를 때마다 몽환적인 춤을 추어 댑니다. 모로코 토속 연주를 하는 베르베르족 사내들은 흥겨운 타악 리듬을 쏟아냅니다. 캠프의 불은 꺼지듯 다시 살아나고 노래도 연주도 춤도 꺼지듯 다시 살아납니다. 모로코 남쪽 사막 벌판에서의 이 잊지 못할 멋진 캠프파이어.

열기가 줄어들 즈음 플래시 불빛을 앞세운 채 혼자 캠프를 나와 어둠에 묻힌 사막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넓게 퍼져 있지만 그 사이사이로 영롱한 별들이 툭툭 떨어질 듯 말 듯 맑게 빛나고 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가 아니라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저 별들을 고스란히 다 담을 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그나저나 내 고향 B612는 어디에 있을까 이리저리 찾으며 나의 연인 장미는 잘 있을까도 상상해 봅니다. 

사실 내가 사하라를 찾고자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7년 내가 연극 작가로 처음 데뷔한 작품이 바로 쌩 떽쥐베리(Saint Exupery)의 『어린 왕자』였습니다. 그 작품을 각색한 것이죠. 

어린 왕자는 사랑하는 장미를 자기별 B612에 남겨 둔 채 떠나서 여러 별들을 거친 끝에 지구의 사막에 도착하죠? 그리고는 사막에서 친구들 만나기. 뱀과 여우, 조난당한 비행조종사. 비행조종사와 어린 왕자는 사막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우물을 찾습니다. 각색할 때 가장 마음에 두었던 대목이 바로 우물 찾는 부분이었습니다. 한창 목말라 할 청춘이었을 그때, 우물에 방점을 두었던 나. 그리고 이제 3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나. 여전히 목은 마르고 그래서 우물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사하라를 찾아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낮에 만났던 우물 앞에서 감정이 복받쳤던 것입니다.  

사하라에서의 찰나와 같은 여정에 감히 우물을 찾네 어쩌네 얘기하는 것. 글쎄요, 어쩌면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파스칼의 아련한 노래 소리가 사막의 밤하늘을 간지럽히고 있습니다.    

 

#우물은 찾는 것이 아니라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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